지방선거 앞두고 '주민소환제' 재소환…유명무실 오명 벗나

선출직 해임 사례 19년간 시의원 2명뿐…대부분 요건 미달로 무산

"실효성 확대" 법 개정 움직임 속 "제도 악용 가능성" 신중론도

주민소환 찬반 묻는 투표용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올해는 주민소환제가 시행된 지 19년째 되는 해이다.

주민들이 선출직 지방공직자에 대해 소환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임기종료 전에 해직시킬 수 있는 주민소환제는 직접민주주의의 꽃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엄격한 시행 기준 등의 이유로 여태껏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주민소환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는 등 주민소환제 강화 목소리가 나오면서 유명무실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19년간 직위 상실 단 2명…153건 중 141건 투표도 못해

8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주민소환제는 2007년 7월 도입됐지만 이 제도로 직위를 상실한 선출직은 기초의회 의원 2명에 불과하다.

도입 첫해 12월 광역화장장 유치 문제로 경기 하남시장과 시의원 3명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돼 이 중 시의원 2명이 직을 잃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후 주민소환제는 서명자 부족, 개표 요건 미달 등으로 성공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선출직 지방공직자를 소환하려면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는 주민소환투표 청구권자 총수의 10% 이상, 시장·군수·구청장은 15% 이상, 시·도의회 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을 받아 소환투표를 실시한 뒤 유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총수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확정된다.

제도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153건의 주민소환이 추진됐지만 이와 같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92%에 해당하는 141건이 투표조차 하지 못하고 종결됐다.

나머지 12건의 경우 투표는 이뤄졌지만, 하남시의원 2명을 제외한 10건은 투표율이 부족해 투표함도 열지 못했다.

하남시 주민소환 투표용지 모형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에는 성 비위 의혹 등으로 김진하 강원 양양군수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지난해 2월 이뤄졌지만, 가결 요건 투표율인 33.3%에 1.05% 포인트가 모자라 부결됐다.

앞선 2021년 6월에는 정부 과천청사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것을 골자로 한 부동산 정책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이유로 경기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진행됐지만 같은 이유로 미개표 마무리됐다.

◇ 주민소환 투표 연령 하향 방침…법 개정안 잇따라 발의

주민소환 제도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과 함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안부는 올해 안으로 주민소환법 개정을 통해 주민소환 투표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하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회의원들은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현재 발의된 개정안은 모두 6건으로 이 가운데 3건이 올해 접수됐다.

투표 절차 및 요건 간소화,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인 경우 투표 청구 제한 규정 삭제, 지방선거 선거권을 가진 외국인에 한해 투표 참여 가능 등 대부분 주민소환제 강화를 골자로 한다.

지난 6일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의원은 "청구 건수는 많지만, 해임으로 이어진 사례가 극히 적어 주민소환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며 "개정안은 투표 연령을 18세로 낮추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집에서도 서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서명 요건을 인구 규모에 따라 차등화하는 방안과 온라인 전자서명 청구제도 도입의 필요성 등을 담은 '지방행정 책임성 확보를 위한 주민소환제도 재설계' 연구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양양군수 주민소환투표 개표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천시장 선거에 나서려다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김교흥 의원은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시민을 두려워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기존 주민소환법을 더 완화하고 안 되면 조례로라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 "권력의 감시 역할 가능" vs "님비현상 관철 도구"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현재 주민소환 투표가 청구된 사례는 없다.

지난해 6월 세금낭비, 특혜의혹, 독단적 행정 등으로 서울 서대문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추진된 게 가장 최근 사례로 서명부 미제출로 종결 처리됐다.

주민소환을 추진한 측은 투표로 이어지거나 해당 공직자를 해임하지 못하더라도 추진만으로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직무 유기와 전횡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김진하 양양군수 주민소환을 추진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주민소환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수직으로 세워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며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2023년 8월 김영환 충북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을 진행한 단체의 이현웅 대표는 "비록 소환에는 실패했지만 책임을 방기하는 선출직 지방공직자들에게는 충분한 경고가 됐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치가 유권자를 배신할 경우 주민소환 운동에 다시 나설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제도의 오남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주민소환제 추진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로 진행된 사안도 많아서 자칫 님비현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대책 없이 요건만 완화할 경우 우리 동네는 왜 재개발하지 않느냐는 이유로 주민소환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과천시장 주민소환 투표용지 받는 유권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북대 행정학과 하동현 교수는 "주민소환 투표 요건 완화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보다 시민단체 조직화를 비롯한 사회적자본의 격차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등 지역별로 크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성식 김용민 김준범 류호준 박건영 이정훈 장덕종 차근호 최종호 기자)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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