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러, 30년 전엔 "北과 실용관계"라며 동맹 폐기…韓도 일조

공로명 외무장관, 러 차관에 '한러관계 발전위해 조약 폐기' 촉구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둘러싸고 남북 간 외교전도…1995년 외교문서 공개

김정은, 푸틴과 회담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 하기위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회담을 가졌다고 4일 보도했다.2025.9.4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러시아 정부가 소련 시절부터 북한과 맺었던 군사 동맹을 1995년 폐기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한국 정부의 설득 노력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매개로 북러가 다시 '혈맹'으로 밀착하며 한러관계가 얼어붙은 오늘날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31일 외교부가 공개한 1995년도 외교문서를 보면, 한국 정부는 1996년 만료되는 북러 간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의 폐기를 위해 북러 사이의 틈을 벌리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북한과 러시아는 1961년 김일성 주석의 소련 방문 계기에 상호 우호 조약을 체결했다.

효력 만료 1년 전까지 일방이 폐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면 5년간 자동으로 연장되는 이 조약의 핵심은 사실상 군사 동맹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었다.

공로명 당시 외무부 장관은 1995년 5월 한국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파노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으로 해석되는 북러 우호조약 제1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러 관계 발전을 위해 조약의 개폐를 위한 러시아 측의 조치를 촉구한 정황이 면담요록에서 확인된다.

한국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집요했는지 러시아는 그해 6월 주러 한국공사를 초치해 한국이 "조약 개폐문제에 대해 간섭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다만 러시아도 한국과의 협력에 무게를 두며 호응하는 분위기였다.

1995년 7월 개최된 한러 정책협의회에서 러시아 측은 "현재의 러북 관계가 과거의 이념적 관계에서 실용적 관계로 변화됐다"고 설명하고 "군사 조항이 더 이상 실천 불가능한 조항임은 공개된 비밀"이라고 언급했다. 해당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1990년 한국과 수교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방러 당시 "남북 대화 추이를 보아가면서 (조약의) 효력 연장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어 조약 폐기에 무게가 실리던 상황이었다.

(서울=연합뉴스) 1995년 5월 방한중인 알렉산드르 파노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 공로명 외교부 장관 간 면담 요록. 2026.3.31. photo@yna.co.kr

조약 폐기 직전 북러 간 이상기류가 감지되는 에피소드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8월로 예정됐던 러시아 태평양함대 함정의 원산 방문 제의를 북한이 거절한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주변국가들이 우리를 향해 전쟁을 준비하는 사정 하에서 러시아 군함의 방문이 상황을 격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약의 향배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지하게 해주는 측면"이라며 조약 연장 여부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에서 비롯된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결국 러시아는 그해 9월 북한에 조약을 폐기하겠다고 통보했다. 대신 새로운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자고 북한 측에 제의했으나, 북측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서 이듬해인 1996년 조약은 공식 폐기됐다.

홍범도 장군 유해 입장
(대전=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의장대가 홍범도 장군의 영정과 유해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2021.8.18 jjaeck9@yna.co.kr

한편,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둘러싼 남북 간 치열한 외교전을 엿볼 수 있는 문서도 공개됐다.

1994년 정부는 북한이 카자흐스탄에 있는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추진하려는 동향을 포착하고 저지에 나섰다.

정부는 현지 교민을 동원해 카자흐스탄 외교 당국에 유해를 서울로 봉환하거나 카자흐스탄에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북한은 홍 장군 증손녀라고 주장하는 '홍비화'라는 인물을 내세워 눈물로 유해 송환을 호소하는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남북이 '연고권'을 주장하며 각축전을 벌였던 홍범도 장군 유해는 2021년 한국으로 봉환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됐다.

a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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