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건물 뒤덮은 대형 선거 현수막…전국 곳곳 '몸살'

유권자·입주자 피로감 호소…크기ㆍ개수 관련 규정 없어 안전사고ㆍ신경전까지

후보들 "얼굴 알리기 불가피" 볼멘소리…'디지털 시대'에 난립 막을 대안 찾아야

대전시장 예비후보들의 현수막. 왼쪽 더불어민주당 허태정 오른쪽 국민의힘 이장우.
[촬영 박주영]

(전국종합=연합뉴스) 6·3 지방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국 번화가 주요 건물이 대형 선거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거사무소 건물에 거는 현수막은 별도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인데, 본격적인 선거기간인 오는 21일부터는 거리 곳곳에도 현수막이 걸릴 예정이다.

얼굴을 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의원 후보들 사이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면서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건물 '뒤덮고·두르고'…선전 공간으로 변한 번화가

9일 충북 청주 한 사거리 4층짜리 상가 건물에는 9m 길이의 가로 현수막이 4층 전면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후보자의 전신이 나온 비슷한 크기의 세로 현수막이 바로 옆에 나란히 내걸렸다.

울산시 공업로터리 인근 건물에는 7명의 후보가 대형 현수막을 게시했다.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상가 건물 7개 층 높이의 대형 현수막을 외벽에 부착했고, 한 교육감 후보는 마치 건물을 포장하듯이 건물 4개 면 모두에 이름을 도드라지게 표기한 원색 현수막을 빙 둘렀다.

공업탑로터리에서 이어지는 삼산로 인근 구역까지 포함하면 총 10여명의 후보가 현수막을 내건 상황이다.

6·3 지방선거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전국 곳곳 번화가는 '대형 선전 공간'으로 변했다.

건물마다 여러 개 층을 덮는 현수막이 걸린 이유는 공직선거법에 후원회 사무소와 선거사무소 간판, 간판 형태의 현수막의 규격과 수량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건물주와 상의만 됐다면 건물 전체 크기의 초대형 현수막을 게시해도 되고, 여러 개 달아도 문제가 없다.

지방선거 특성상 지방자치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의원에 교육감까지 지역마다 여러 후보가 나서다 보니 주요 도로 건물이 대형 현수막에 몸살을 앓는 것이다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까지 가세하면서 현수막이 여느 때보다 더 많이 눈에 띈다.

본격적인 선거기간이 시작되면 현수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선거기간인 오는 21일부터는 후보자마다 선거구 내 읍·면·동 수의 2배 이내의 현수막을 거리에 게시할 수 있다.

인천시장 예비후보 현수막
[촬영 황정환]

◇ 유권자들 "피로감만 쌓여"…현수막 원인 된 안전사고에 후보간 '신경전'까지

현수막이 난립하면서 유권자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큰 현수막이 여러 개 붙어있는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일대를 지나던 한 60대 시민은 연합뉴스 기자에게 "같은 건물에 비슷한 현수막이 너무 많아 도시 미관을 해치고 오히려 헷갈리고 피로감만 쌓인다"고 말했다.

현수막이 설치된 건물의 입주자들도 못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청주시 한 건물 입주자는 "후보자가 입주 업체들엔 양해를 구하지 않고 건물주에게만 허락받아 현수막을 달았다"며 "현수막이 거의 건물 절반을 뒤덮고 있어서 차량 통행이 잦은 곳인데도 저희 간판이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쓰이지만, 세입자 처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대구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철만 되면 현수막과 관련해 불만 민원이 들어온다. 특히 대형현수막이 내걸리는 장소 부근 입주민으로부터 들어오는 민원도 상당하다"면서도 "법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현수막은 선관위에서 제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수막 관련 안전사고도 발생했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11살 초등학생이 현수막을 고정하는 줄에 목이 걸려 119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다.

현수막을 고정한 줄이 아이 키 높이와 비슷한 위치에 낮게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 원주에서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가설 건축물이 강풍에 휘어지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지난 8일 정오께 원주의료원 사거리에 국민의힘 원강수 원주시장 예비후보의 대형 현수막이 걸린 가설 파이프 구조물 일부가 초속 12m의 강풍에 50도가량 휘어졌다.

다행히 보행로가 아닌 차고지 방향으로 휘어지면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

현수막 설치를 두고 후보자 간 신경전도 펼쳐졌다.

국민의힘 소속 서철모 대전 서구청장 예비후보 측은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전문학 예비후보가 건물주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채 현수막을 달았다"는 성명을 냈다.

국민의힘 이장우 대전시장 예비후보가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이미 건물주와 협의를 먼저 마쳤다는 주장으로, 결국 전문학 예비후보 측이 현수막을 뗐다.

해당 건물은 주요 나들이 장소인 갑천생태호수공원과 인접해 있는 '목이 좋은 곳'에 있다.

전문학 예비후보 캠프 관계자는 "공천 경쟁을 벌였던 예비후보에게 사무실을 승계받으면서, 해당 후보가 현수막을 달았던 곳에 똑같이 게시했던 것"이라며 "우리는 사무실 주인에게 허락받은 상태였으나, 이장우 예비후보 측은 전체 건물관리단과 계약한 것으로 파악돼 일단 현수막을 우선 뗐다"고 해명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내 남구청장 예비후보가 입주 건물에 철골 구조물까지 세워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가 위법 논란을 빚었다.

현직 남구청장으로 이번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는 김 후보는 선거사무소가 입주한 3층 건물 옥상에 철골 구조물을 설치하고 대형 현수막을 게시했다.

남구는 법률 검토를 거쳐 건축법과 옥외광고물 관련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김 후보 측에 자진 철거를 요구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김 후보 측은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에야 해당 현수막을 철거했고, 불법 논란이 제기된 철골 구조물도 정리했다.

전국동시지방선거 한 달 앞으로
(과천=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3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2026.5.3 cityboy@yna.co.kr (끝)

◇ 후보들 "얼굴 알릴 유일한 기회"…전문가 "다른 홍보 방법도 고민할 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지방의원 예비후보들은 건물에 큰 현수막을 거는 홍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충남도의원 예비후보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방의원들은 평상시에 길거리 현수막으로 본인의 정책 홍보를 할 수가 없어, 본인 얼굴이 새겨진 외벽 현수막을 게첩할 수 있는 시기가 선거할 때밖에 없다"며 "후보들이 큰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자 노력해왔고, 일부는 연초에 얘기를 끝낸 후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시민분들이 보기에 불편하시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지방의원 입장에서는 4년 중 딱 한 번, 내 얼굴이 담긴 현수막을 건물에 마음껏 달 유일한 기회"라고 토로했다.

대전지역 지방의원 출신 한 기초단체장 후보 캠프 관계자도 "특히 현역이 아닌 후보자들은 얼굴을 알릴 방법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들이 다 하는데 상황에서 혼자만 안 할 수가 없다"며 "선거법과 옥외광고물법이 충돌하는데도 제대로 정비는 안 되니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면서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제언한다.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인 이재현 배재대 자율전공학부 교수는 "정치권의 양적인 경쟁이 유권자의 질적인 선택을 방해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저비용 고효율의 현수막 전략을 사용하면서, 장기적으로 지방정치 선거 정치 발전에 도움 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어르신 유권자를 위한 아날로그 현수막 홍보의 필요성은 일부 인정한다"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다른 차원의 홍보 방법을 고민해 보면서 현수막 난립을 막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자들 차원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는 목소리 나온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의 현수막을 신속히 철거하지 않는 등 일부 관리가 되지 않는 모습도 보이고, 건물 한쪽을 덮을 만큼의 대형 현수막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법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우선 소속 정당에서 자율적으로 정비에 나서는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송원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도 "후보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대형 현수막이 유권자 선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후보자들이 공개 토론 등에서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견과 해법을 설명하는 것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박영서 박정헌 황수빈 우영식 변지철 전창해 황정환 허광무 박철홍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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