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시위 '윤어게인'에 선 그은 청년들, 제3의 공론장 개척

부정선거 구호에 본질 흐려지자 SNS 등서 독자세력화 시도

전문가 "기성세대 정치적 이용 반발한 자발적 목소리"

개표소 봉쇄 시위 계속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진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12 pdj6635@yna.co.kr

(서울=연합뉴스) 윤민혁 정지수 기자 =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 청년들이 온라인에서 새로운 공론장을 개척하고 있다.

'부정선거'와 '윤어게인' 등 기성 정치권 구호로 치우친 기존 시위에 선을 긋고, 참정권 침해라는 본질에 집중하려는 '제3의 목소리'가 세력화에 나선 것이다.

14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지난 10일 당파적 갈등을 배제한 시위를 추진하는 '참정권 갤러리'가 신설됐다.

현재 갤러리엔 공지글만 올라와 있지만, 공지글로 입장을 권유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현재까지 2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스스로 밝힌 '운영 기조'에서 "참정권은 특정 정파나 계층을 넘어 모든 국민에게 보장돼야 할 헌법상 권리"라며 "당파적 갈등과 분열 대신 헌법 수호의 정신으로 단결해 6·3 지방선거 사태 책임을 회피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규탄하고 정상 작동하지 않는 사법부의 정상화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채팅방의 '필수 규칙'도 "좌파·우파 색채 언어 금지", "윤석열 전 대통령·이재명 대통령 등 특정인 비하 및 혐오 구호 금지", "특정 국가 및 외국인 폄하 금지" 등이다. 위반 시 즉각 퇴장당한다.

이 채팅방에서는 "국민 참정권을 이야기하는데 좌우가 어딨냐는 식의 분위기 형성이 필요하다"거나 "더 이상 진영 문제로 넘어가기 힘들게 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때 '멸공'이나 '재선거' 등을 아이디로 한 이용자가 입장해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의 부정선거 주장 영상 등을 올리기도 했으나, 다른 참가자들이 반응하지 않자 이런 주장을 이어가지 못하는 중이다.

참정권 갤러리뿐 아니라 '정치성향없는 참정권 수호'를 표방한 오픈채팅방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전국 대학의 성명과 대자보를 모아두는 아카이빙 사이트 '한 표의 기록'이 개설되는 등 대학가에서도 자발적인 움직임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핸드볼경기장에 투입된 경찰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빚어진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경찰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6.6.11 ksm7976@yna.co.kr

이처럼 독자적인 논의 창구가 생겨난 것은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특정 세력 주도로 과격화하면서 순수한 규탄의 장이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개표소인 핸드볼경기장에 출입하려는 핸드볼 주니어팀 선수들의 소지품을 뒤지거나 취재진을 폭행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8일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린 서강대 학생은 "국민의 박탈당한 참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시작한 시위가 변질하고 말았다"며 "지금의 시위를 보라. 부정선거, 윤어게인을 외치고 있다. 더 이상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진 것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에브리타임에 글을 쓴 고려대 학생 역시 "투표용지 부족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맞지만, 시위가 무질서하고 폭력적"이라며 "반발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너무 멀다"고 선을 그었다.

대학원생 박모(26)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과격한 부정선거론자들 때문에 선관위를 지적하면 윤어게인으로 몰리니 정당한 규탄도 어려워지고 있다"며 "본질이 가려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유모(27)씨는 "윤어게인 세력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있다면 참여할 생각이 없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직장인 김모(27)씨도 "시위대가 계속 과격한 행위를 하니 오히려 선관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 부정선거 규탄"
(청주=연합뉴스) 이성민 기자 = 11일 오후 청주 패트리어츠 회원이 충북대학교 앞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26.6.11 chase_arete@yna.co.kr

전문가들도 기성 정치세력에 반발해 자발적인 행동에 나선 청년들의 움직임이 이번 사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종희 교수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투표라는 소중한 행위가 침해당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좌우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켜온 기성세대가 들어와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꼴"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정치에 참여하는지 얼마 안 된 이들이 이번 사태로 느꼈던 황당함을 지적했더니 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라며 "청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온라인이든 무슨 방법이든 독자적으로 내고자 하는 건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m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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