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또 확성기?…끝없는 남북 심리전
아직은 조용한 북한 대남확성기
(파주=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19일 군사분계선(MDL) 침범에 대응한 한국군의 경고사격 등 조치에 반발하며 군사력 증강 배치와 대남 확성기방송 재개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20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임진강변에 설치된 북한 대남 확성기. 2026.10.20 ksm7976@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군 복무 시절 GOP(일반전방소초) 일대에선 매일 인기 가요와 함께 남한 체제에 관한 홍보 방송이 확성기를 통해 북녘땅에 울려 퍼졌다. 날씨가 맑은 날엔 그 소리가 개성까지 닿는다는 과장된 소문도 있었다. 전역을 몇 달 앞두고 GP(감시소초)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확성기 방송을 운용한 적이 있다. 2인 1조로 교대 근무하며 방송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게 임무였다. 방송은 여러 개의 나팔형 혼스피커를 한데 묶은 '확성기 유니트'에서 흘러 나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1962년 대남 방송을 시작하자 이듬해인 1963년 맞대응 차원에서 시작됐다. 확성기는 남북 관계의 '주파수'에 따라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로 중단된 방송은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을 계기로 11년 만에 재개됐다. 북한은 확성기 시설을 겨냥해 포격했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남북은 고위급 접촉을 통해 '8·25 합의'를 도출했고, 우리 군은 방송을 다시 중단했다. 이후 4차 핵실험(2016년)에 확성기가 켜졌고, 남북 정상회담(2018년)을 앞두고 꺼졌다. 그러다가 오물풍선(2024년) 사건으로 확성기 방송이 재개됐다.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가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도 방송을 멈췄다. 8월엔 고정식 확성기 20여 개가 철거됐다.

확성기 방송은 남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쟁점이었다.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가 폭발해 간부 3명이 다쳤다. 국방부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 매설한 지뢰로 판단했다. 야당은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진영승 합참의장은 국정감사에서 확성기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고, 접경지역 단체장들도 방송 재개에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북한군의 월선에 대응한 한국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문제 삼아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처럼 확성기 방송은 상대를 압박하는 군사적 수단이자, 강경 대응 의지를 과시하는 정치적 상징이기도 하다.

심리전의 본질은 상대방의 인식과 신념을 바꾸는 데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신념과 충돌하는 정보를 접하면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해소하려고 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군이 교육받은 남한의 모습과, 방송에서 접한 정보 사이에 괴리를 느끼도록 해 북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하려는 심리전의 한 요소다. 하지만 적대적 선전으로 치부한다면 기존 신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이 체제 비판보다 K팝에 더 귀를 기울였다는 증언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북한에선 USB와 메모리카드에 담긴 영상·음악 등 디지털 콘텐츠가 새로운 정보 유입 경로로 안착했지만, 확성기는 별도의 수신 장비 없이 북한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다.

확성기 방송은 남북 관계의 긴장을 높이거나 낮추는 스위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확성기를 켠다고 북한의 행동이 달라지고, 끈다고 대화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건 아니다. 확성기 방송이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의 빌미가 된다면 전략적 득실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방송 재개 여부는 기대할 수 있는 심리전 효과와 군사적 긴장에 미칠 영향 등을 헤아려 결정해야 한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