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조+α 미래기금, 재정 파킹통장 역할…국회 견제 약화 우려도

청년·성장·지방·교육에 집중투자…100조대 여유자금 둬 필요시 신속대응

지출 30% 국회 심의 없이 증액 가능…세수결손 보전은 한도 없어

전문가 "빚부터 갚아야" vs "속도가 중요…국회서 안전장치 고민"

2027년 예산안 브리핑 나서는 박홍근 기획처 장관
(세종=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7년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 계획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브리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6.9.1 utzza@yna.co.kr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추가세수'를 따로 떼어내 '미래대응기금'(이하 미래기금)을 만들고 첫해인 내년에 최소 162조원을 넣는다.

세수가 들어오는 대로 모두 지출하는 대신 역점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여유자금은 필요시 신속대응하는 데 투입하는 방식으로 재정의 근본 틀을 바꾸는 시도다. 일종의 '파킹 통장' 혹은 '재정 저수지'를 두는 것이다.

정부는 미래기금을 청년·성장·지방·교육 등에 투입하고 나머지 100조원 이상을 여유자금으로 둘 계획이다.

다만 정부가 30%까지 지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감시 기능이 약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력이 있을 때 나라 빚을 갚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 첫해 최소 162조 적립…4대 분야에 45조 투입

정부가 1일 발표한 '2027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미래기금'을 신설해 162조3천억원을 적립한다.

이는 내년 내국세 세입예산 중 10년 추세선을 넘어서는 '추가세수'다.

정부는 운용 첫해인 내년에 적립되는 기금 중 45조4천억원을 4대 분야에 쓸 예정이다.

분야별로는 청년 13조3천억원, 성장동력 14조2천억원, 지방 10조3천억원, 교육·인재 분야 7조6천억원이 쓰인다. 프론티어급 인공지능(AI) 개발 4조7천억원, 보편형 공공임대주택 1조4천억원 등이 신규 편성됐다.

각 사업 선정은 자본축적(New-capital)·과감한 투자(Enterprising)·탄력적 집행(fleXible)·시급성(Timely)을 딴 'NEXT 원칙'이 기준이다.

여기에 내년 국채 신규발행 물량 축소에 12조5천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정부는 세수가 많이 들어왔다고 해서 국채를 대거 상환해버리고 발행을 급격히 줄이면 국채 시장에 혼란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남은 104조4천억원에 이달 중 세입 재추계로 확정될 '초과세수'가 더해져 여유자금이 된다. 관가에서는 첫해 적립액 총액이 2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 "일반회계론 세수 저장 안 돼"…단년도 예산주의 탈피

정부가 미래기금을 만드는 명분은 '단년도 예산주의'의 한계 극복이다. 우리 경제 구조상 3∼5년 주기로 요동치는 세수와 재정투입의 엇박자를 해소하자는 취지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은 지난달 28일 사전브리핑에서 "일반회계로 돈이 들어오면 저장할 여지가 없어 단년도에 소진을 해야 한다"며 "재정안정화 댐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금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금은 예측 못 할 재정지출 소요뿐만 아니라 세수결손기에도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조 차관은 "세수 결손이 발생했을 때도 세입 경정을 하려면 추경으로 국회에 가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기금을 통해) 신속하게 재정 보강을 해서 안정적인 재정 운용이 이뤄지게 하겠다는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총수입은 880조8천억원으로 30.4%(205조6천억원) 늘지만, 총지출은 820조9천억원으로 12.8% 증가에 그친다. 104조4천억원 기금 적립은 총지출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처 박창환 예산총괄심의관은 "104조4천억원을 기금 여유재원으로 적립하지 않았다면 지출 증가율은 27%가 넘었을 것"이라며 "그후 중기적인 총량 관리에서 후폭풍이 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7년 예산안 브리핑
(세종=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7년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 계획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영규 미래전략기획실장, 조용범 차관, 박홍근 장관, 박창환 예산총괄심의관. 2026.9.1 utzza@yna.co.kr

◇ 지출 30%는 정부 임의로 변경 가능…세수결손 보전은 한도 없어

쟁점은 국회 통제력 약화다.

정부가 이번에 마련한 미래기금법 제정안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따르면 미래기금 사업지출액의 30% 범위에서 국회에 기금운용계획변경안을 내지 않고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법령상 자율변경 한도는 금융성 기금은 30%, 사업성 기금은 20%인데, 개정안은 미래기금을 별도 조문에서 30% 적용 대상으로 올렸다.

이론적으로는 내년 사업지출 45조4천억원의 30%인 13조6천200억원을 국회 승인 없이 증액해서 여유자금에서 옮겨올 수 있다는 의미다.

조 차관은 "미래기금은 사업성 기금 성격도 있고 금융성 기금 성격도 있는 하이브리드 기금"이라며 "비중만 보면 여유재원이 재정안정 기능을 하기 때문에 금융성 기금에 가깝게 30%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30%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 기금 사용처도 있다. 일반회계 세수결손 보전이다.

내년 여유자금 104조4천억원 전액을 세입예산 부족을 이유로 일반회계로 옮기더라도 국회의 승인을 받을 의무가 없다. 전출 즉시 국회에 내역을 제출하도록 한 규정이 전부다.

언제 전출할지 요건도 불확실하다. 조 차관은 "어떤 게 세수결손이냐에 관한 객관적 기준은 없다"며 "기존 제도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안정적 재정운용이 힘들 때 지원하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법률상 미래기금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 등 이외 분야에 사용할 여지도 존재한다. 미래기금법 제정안은 총괄계정의 용도에 '그 밖에 재정운용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를 포함시켰다.

기획처 관계자는 "일반적인 위임 규정일 뿐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며 "아무 데나 쓸 생각이라면 포괄 규정을 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국고채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 "빚부터 갚아야" vs "속도가 중요"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회의 감시권을 회피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돈이 남는다면 재정적자와 부채 부담을 줄이는 데 먼저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채무비율이 개선되는 것은 분모인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기 때문으로, 분자인 부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분자인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성장률이 둔화해 분모가 줄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기금이 특정 분야 지출을 맡으면 해당 분야 일반회계 예산이 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채를 다 갚으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한데 그런 신호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재정을 쓰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입을 보수적으로 전망할수록 초과세수가 늘며 미래기금에 적립되는 액수가 늘어나는 구조도 자의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입 규모를 보수적으로 전망하면 초과세수가 늘어나고, 좋게 표현하면 유연하게, 나쁘게 표현하면 자의적으로 사용할 우려가 있다"며 "세금을 걷을 때 사용처도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조세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여유자금을 전담기관에 맡겨 국고채 3년물 금리 이상의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인데, 그는 "기금 운용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국채를 갚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국회를 거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나중에 어떻게 썼는지는 감사를 받게 된다"며 "쌈짓돈처럼 이상한 곳에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과 새로운 산업에 빨리 투자해야 한다. 지금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의 자의적 사용 우려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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