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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투르크멘 '키얀리 폴리머' 가동 중단…발칸조선소는 현지화 확대
카자흐선 중국계 태양광 활발…원전 수주, 러·중 사이 현실적 한계
ESS·스마트그리드·가스화학·플랜트 운영 등 건설 이후 공략 필요
(투르크멘바시=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6월 30일 투르크메니스탄 서부의 대형 가스화학단지 '키얀리 폴리머 플랜트'의 모습. 2023년 4월 이후 가동이 중단돼 현재 재가동을 위한 점검과 정상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26.9.2 raphael@yna.co.kr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메니스탄]·알마티[카자흐스탄]=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카스피해 연안 투르크메니스탄 서부의 '키얀리 폴리머 플랜트'는 현대엔지니어링·LX인터내셔널 컨소시엄과 국내 중소기업 124곳이 함께 건설한 대형 가스화학 단지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조성돼 2018년 10월 가동을 시작했다. 중앙아시아 고부가가치 플랜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시공·기술 역량을 보여준 대표 사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취재진이 찾은 현장은 정상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거대한 배관과 생산시설은 그대로였지만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마지막 정상 가동은 2023년 4월이었고, 현재 재가동을 위한 점검과 정상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도브란 알라베르게노프 키얀리 폴리머 플랜트 수석 엔지니어는 "설계상 결함은 아니고 기계 운용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며 "약 300명이 근무하며 바닷물을 처리하는 일부 공정만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수를 활용하는 냉각수 계통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바닷물의 성분 변화가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해결하고자 바닷물 성분을 24시간 온라인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세계 4위 천연가스 자원국이 가스 수출국을 넘어 가스화학 산업국으로 전환하기 위해 구축한 시설이다. 하지만 가동 중단은 자원을 보유하는 것과 이를 안정적으로 가공해 산업으로 연결하는 것이 별개의 과제임을 보여준다.
(투르크멘바시=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6월 30일 투르크메니스탄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발칸조선소. 한국 고려조선산업기술이 현지에서 건조 중인 6천100톤(t)급 다목적 화물선 2호선은 현재 탑재 공정률 77%를 기록하고 있다. 2026.9.2 raphael@yna.co.kr
◇ 멈춘 키얀리, 움직이는 조선소…투르크멘서 찾는 전략
키얀리에서 카스피해 연안을 따라 차량으로 약 30분 이동하면 도착하는 발칸조선소의 분위기는 달랐다. 넓은 작업장에서는 한국 고려조선산업기술(KSIT) 소속 직원 50여명을 포함해 약 700명이 선박 건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과 투르크메니스탄이 공동 건조한 6천100톤(t)급 다목적 화물선 1호선은 지난 5월 인도를 마쳤고, 취재진 방문 당시에는 2호선 건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탑재 공정률은 77% 정도다.
손광목 KSIT 전무는 "다목적 화물선과 화물·여객 겸용선 등 후속 선박 건조에도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로봇 용접 시스템과 자동화 생산 방식을 적용해 발칸조선소의 현대화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트디예프 에지스 발칸조선소 부소장은 "한국의 조선 기술을 현지인들에게 가르쳐준 것이 사업에서 얻은 큰 기회 중 하나"라며 "현지 인력들은 한국 전문가들에게 3개월간 교육을 받고 선박 건조 현장에 투입됐다"고 소개했다.
다음 단계는 기자재 현지화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배관 등 상당수 기자재는 현재 한국에서 제작해 운송하지만, KSIT와 발칸조선소는 향후 배관 제작과 아연도금 공정을 현지에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배관 생산 기반이 갖춰지면 장기적으로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 등 카스피해 주변 조선산업에 기자재를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키얀리의 과제가 재가동이라면 발칸조선소의 과제는 자립이다. 두 현장은 현지에 시설을 짓는 것뿐 아니라 준공 이후 운영과 기술이전, 현지 공급망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다르바자=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천연가스 매장량 전 세계 4위인 투르크메니스탄을 상징하는 꺼지지 않는 불길, 지난 7월 초 카라쿰 사막의 다르바자 가스 크레이터 모습. 1971년부터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이 거대한 구덩이는 '지옥의 문'으로 불린다. 2026.9.2 raphael@yna.co.kr
◇ 투르크멘 천연가스 수입 난제…현실적 대안은 현지 가공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는 한국에도 매력적인 자원이지만 국내로 들여오는 것은 쉽지 않다. 내륙국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한국까지 천연가스를 운송하려면 기존 파이프라인과 주변국, 카스피해를 포함한 수송 경로와 경제성까지 검토해야 한다.
이에 한국 입장에서는 천연가스 자체를 가져오기보다는 현지 가스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바꾸는 가스화학·비료·플랜트 산업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우건설이 현지에서 추진하는 비료공장 사업도 이런 관점과 연결된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비료 등 산업제품을 생산하면 원료를 그대로 수출하는 것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현지에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키얀리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공장을 짓는 것으로 사업이 끝나지는 않는다. 원료 공급과 운영·정비, 부품 조달, 전문인력, 생산제품 판로 관리 등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지속 가능하다.
현지에서는 한국 기업도 설계·조달·시공 전 과정을 일괄해서 수행하는 EPC 수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유지 보수와 기술 이전, 현지 인력 양성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알마티=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6월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북쪽 캅차가이 수력발전소와 인공 저수지 모습. 일리강을 막아 건설된 핵심 수자원 시설로, 알마티주 관개용수와 수력 발전, 도시·산업 용수 공급 등 다목적 기능을 담당한다. 2026.9.2 raphael@yna.co.kr
◇ 수력 옆 태양광 돋보인 카자흐…곳곳 중국 그림자 '어른'
카자흐스탄 알마티주 코나예프(옛 캅차가이) 일대에 들어서면 중앙아 에너지 산업의 또 다른 변화가 보인다.
일리강 물줄기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 발전시설이 오랫동안 전력망을 떠받쳐왔지만, 최근 주변에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취재진이 둘러본 코나예프 지역 '누르기사 100메가와트(MW) 태양광 발전소'도 그중 하나다. 270헥타르(ha)에 이르는 광활한 부지에 330와트(W) 용량의 태양광 패널 30만3천여개가 설치돼 있었다.
중국 신재생에너지 기업 유니버설 에너지가 소유·운영하는 이 발전소는 중국이 중앙아 에너지 시장에서 단순한 장비 공급자를 넘어 발전 사업과 운영 단계까지 깊숙이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카자흐스탄은 풍력 자원도 풍부하다. 기존 수력과 화력 중심의 전력 생산 방식에 최근 들어 태양광과 풍력이 빠르게 더해지고 있다.
문제는 변동성이다.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을 저장했다 필요할 때 공급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발전량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스마트그리드의 중요성이 커진다.
(알마티=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6월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인근 코나예프 지역의 '누르기사 100메가와트(MW) 태양광 발전소' 모습. 중국 신재생에너지 기업 유니버설 에너지가 소유·운영한다. 2026.9.2 raphael@yna.co.kr
카자흐스탄 에너지부 관계자는 "2035년까지 전체 발전설비를 26.3기가와트(GW) 추가 확충하고, 이 가운데 약 31.4%를 수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동·조정 가능한 발전 설비에 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에는 총 3기가와트시(GWh) 이상의 배터리 저장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며 "일부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에는 발전설비 용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저장 설비로 갖추도록 하는 제도도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한국 기업에 관심을 보이는 분야도 이 지점이다.
에너지부는 한국의 스마트그리드와 ESS 기술을 높게 평가하면서 전력망 디지털화와 재생에너지 기자재, 저장장치 분야에서 기술 현지화와 상업적 기업간거래(B2B) 시범사업 추진 의향을 밝혔다.
중국 기업이 태양광 발전 자체에서 이미 입지를 확보한 만큼 한국은 패널 가격 경쟁보다는 ESS와 스마트그리드, 전력망 디지털 운영 등 재생에너지 확대 이후 필요한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스타나=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바실리 라브레노프 카자흐스탄 원자력청 부청장이 지난 6월 22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원자력청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9.2 raphael@yna.co.kr
◇ 기술력만으로 '원전' 공략 어려워…협력 가능성은 여전
카자흐스탄의 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업은 원자력 발전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시장이다.
카자흐스탄은 원전 건설 수요뿐 아니라 세계 핵연료 공급망에서도 비중이 크다. 국영 우라늄 기업 카자톰프롬 관계자는 "카자흐스탄이 세계 1차 우라늄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카자톰프롬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치는 기존 북부 수송로와 함께 카스피해 횡단 국제수송 노선(TITR), 즉 '중간 회랑'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로 수주뿐만 아니라 핵연료와 물류까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한국형원전 APR1400을 앞세워 카자흐스탄 시장에 공을 들여왔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정해진 공사 기간과 예산 내에서 건설한 경험은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바실리 라브레노프 카자흐스탄 원자력청 부청장은 첫 원전 사업인 발하슈 주관사 경쟁에서 한국이 러시아에 밀린 것과 관련해 "한국이 경쟁국보다 안전성이나 기술 측면에서 뒤처져 선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원전 사업은 원자로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금융 조건과 현지화, 인력양성, 공급망, 장기 유지관리와 국가 간 전략적 관계가 함께 작용한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세계적인 원전 공급국인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있다. 두 국가는 지리적 접근성에 더해 금융, 공급망, 기존 산업 협력까지 묶어 제안할 수 있어 한국이 APR1400의 기술력만으로 이 구조를 넘기는 쉽지 않다.
현지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이 원전 핵심 설비 수주 여부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안전·제어시스템, 보조기기, 전력망, 인력교육 등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운영·유지관리의 중요성은 현지 연구진의 연구 방향에서도 확인된다.
자나트 마하타예바 나자르바예프대 스마트 시스템·인공지능 연구소(ISSAI) 수석 데이터 과학자는 고온·위험 작업장 점검에 로봇과 센서를 활용할 수 있다며, 에너지 인프라의 경쟁력이 상시 감시와 예방정비 기술로 확대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아스타나=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학교 스마트 시스템·인공지능 연구소(ISSAI) 소속 연구진들이 지난 6월 23일 아스타나 연구실에서 카자흐스탄 에너지·산업 정책에 관한 의견을 전하고 있다. 왼쪽부터 암가드 살라마 교수, 아킬벡 막수토프 수석 과학자, 자나트 마하타예바 수석 과학자. 2026.9.2 raphael@yna.co.kr
◇ '수주'보다는 '건설 이후'…안정적 운영·상생이 경쟁력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천연가스가 있지만 한국으로 가져오는 데 한계가 있다. 가스화학 플랜트를 건설하더라도 안정적인 운영이 뒤따라야만 산업화로 이어진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중국 기업이 이미 재생에너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원전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정학적·금융적 우위를 넘어야 한다.
한국이 이들 국가와 대규모 자본이나 지리적 접근성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
대신 플랜트 설계·시공 경험에 금융, 운영·유지관리, ESS·스마트그리드, 디지털 기술 등을 결합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키얀리에서는 이미 완공된 시설의 재가동이 과제였고, 발칸조선소에서는 현지에서 선박과 기자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이 화두였다.
중앙아 에너지 시장에서 한국의 자리는 가스전 한 건이나 원전 한 기를 따내는 데만 있지 않다. 시설을 지은 뒤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그 과정에서 현지 인력과 산업을 함께 키우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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