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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훈련·조선업 특화교육 갖춘 우즈베크…한국행 급선회하는 키르기스
카자흐, 2028년 본격 송출 새로운 변수…중앙아 인력 공급망 재편
한·중앙아 정상회의서 E-9 비자 쿼터 확대 중요 의제 전망
(타슈켄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공적개발원조(ODA)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 타슈켄트 직업훈련원 2026.9.3. phyeonsoo@yna.co.kr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중앙아시아의 '코리안 드림'이 전환점에 섰다. 수십 년간 한국행 인력을 내보내며 직업훈련과 숙련공 양성 체계를 다져온 우즈베키스탄은 한국 제조업의 안정적인 인력 공급처로 자리 잡았다.
반면 러시아에 집중됐던 노동력 이동의 방향을 한국과 유럽 등으로 돌리는 키르기스스탄은 신속하고 투명한 송출을 앞세워 새 기회를 찾고 있다.
고용허가제(EPS)는 국가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민간 개입 없이 외국인력(E-9 비자)을 도입하는 제도다. 현재 인력 송출 MOU가 체결된 국가는 필리핀과 몽골, 베트남, 태국, 우즈베키스탄, 네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17개국이다.
여기에 카자흐스탄이 최근 18번째 송출국으로 추가돼 2028년부터 한국 산업 현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서로 다른 궤적과 카자흐스탄의 신규 진입은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이제 인력의 양적 확보를 넘어 숙련도와 언어교육, 선발의 공정성, 귀환 이후까지 아우르는 정교한 관리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를 던진다.
(타슈켄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월 5일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은 107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을 보기 위한 응시자들로 이른 아침부터 붐볐다. 2026.9.3 phyeonsoo@yna.co.kr
지난 7월 5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은 107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이 치러지는 날 이어서 이른 아침부터 응시생들로 붐볐다. 이날 1만 명 가까이가 시험에 응시했고, 오는 10월 치러지는 108회에는 1만2천여명이 지원했다.
이영웅 한국교육원장은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토픽 시험 응시자가 지난해 약 4만5천명에서 올해는 5만명이 훌쩍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험의 높은 응시 열기만큼 고용허가제에 대한 관심도 높다. 다만 합격이 곧 취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합격은 한국행의 출발선일 뿐이다.
김현성 우즈베키스탄 EPS센터장은 "시험에 합격해 구직자 명부에 올라도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한국 사업주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 인원의 3배수를 명부에 올리는 구조여서 구직자 대기기간이 길어지거나 알선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취업을 향한 열망과 제도가 허용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다.
(타슈켄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월 6일 우즈베키스탄 EPS센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김현성 센터장. 2026.9.3 phyeonsoo@yna.co.kr
◇ 현지서 특화훈련 마친 뒤 한국 조선소로…우즈베크 '축적의 힘'
우즈베키스탄의 강점은 오랜 송출 경험만이 아니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로 뿌리내린 직업훈련 체계가 한국 산업 현장과 연결되며 숙련인력 공급망을 떠받치고 있다.
타슈켄트 직업훈련원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400만 달러 무상원조로 세르겔리구 1만7천㎡ 부지에 세워져 2012년 문을 열었다.
자동차 정비와 정보통신(IT), 전기·전자 및 자동화, 기계 제조·용접 등 4개 분야에서 이론과 최신 장비 실습을 병행한다. 자동차 진단과 프로그래밍, 로봇공학, 컴퓨터 수치제어(CNC) 가공 등 산업 현장에 필요한 기술이 교육과정에 담겼다.
이 훈련원을 비롯해 코이카가 지원한 직업훈련원은 우즈베키스탄에 모두 5곳이 있다. 이 모델을 본뜬 현지 정부 주도 훈련원까지 합치면 전국에 80여곳이 운영되고 있다.
훈련과 송출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단계'를 넘어 '한국 현장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단계'로 진화한 셈이다.
성과는 조선업 현장에서 확인된다. 2025년에는 366명이 조선업 특화훈련을 마친 뒤 울산 등 국내 주요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에도 80명이 특화과정을 이수 중이다.
국내 조선 현장에서는 이들의 기술 숙련도와 적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게 김 센터장의 설명이다.
훈련원 자체 성과도 쌓였다. 자동차 정비 2천28명, IT 991명, 전기·전자 868명, 기계·용접 941명의 전문인력을 배출했다. 졸업생 가운데 1천450명은 해외에 취업했고 1천720명은 창업했다.
우즈오토모터스 등 현지 주요 기업과 실습·채용 협약도 맺었다.
(비슈케크=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월 9일 CEC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키르기스스탄 노동사회보장이민부 산하 해외고용센터 쿠다이베르디에프 박티벡 센터장. 2026.9.3 phyeonsoo@yna.co.kr
◇ 키르기스, 러시아서 돌아온 노동자들 한국행 기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의 풍경은 달랐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키르기스스탄 EPS센터는 규모보다 속도와 접근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E-9 비자로 한국에 가는 인력은 연평균 300∼500명 수준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연평균 약 2천500명과 비교하면 아직 적다. 전체 인구가 약 700만명으로 우즈베키스탄보다 적고, 러시아와 유럽, 중동, 튀르키예 등 선택지가 다양한 것도 배경이다.
그러나 노동 이동의 물길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노동사회보장이민부 산하 해외고용센터(CEC)에 따르면 해외 체류 노동자는 약 100만 명이다. 2023년까지 이 중 85만 명이 러시아에 몰렸으나 최근 34만 명으로 줄었다.
러·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자리가 감소하고 이민법이 강화된 데다 임금 체불과 강제 추방을 둘러싼 민원이 이어진 영향이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노동자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 CEC 문을 두드린다. 센터를 통한 합법적 해외 취업자는 2025년 2만5천 명으로 5년 전보다 3배 늘었다. 공식 송출 대상은 28개국에 달한다.
[키르기스스탄 EPS센터 제공]
한국 시장은 숫자로는 아직 적지만 현지에서 받는 평가는 높다. 쿠다이베르디에프 박티벡 해외고용센터장은 "한국은 임금 체불 없이 근로자의 권익이 보호되는 가장 안전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근면 성실한 키르기스스탄 청년들을 한국 기업들이 많이 채용해 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업주에게 낮은 국가 인지도는 발목을 잡는다. 김은지 키르기스스탄 EPS센터장은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명에서 오는 이질감과 정보 부족 때문에 한국 사업주가 채용을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김 센터장은 그러나 "사업주가 근로계약서를 제시하면 근로자가 공장과 지역을 확인한 뒤 수락하는 구조여서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가 적고, 불법 체류 예방에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신흥 송출국의 약점으로 꼽히는 관리 경험 부족을 정부 간 투명한 계약과 빠른 행정으로 보완하겠다는 전략이다.
(비슈케크=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월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김은지 키르기스스탄 EPS센터장. 2026.9.3 phyeonsoo@yna.co.kr
◇ 코이카, 디지털 청년 창업 대표 ODA사업 '팹랩'
한국의 ODA 사업도 키르기스스탄 청년의 직업 역량과 산업 기반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코이카는 현지에서 청년 창업, 에너지 효율화 등 18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은 전력 중앙 집중 관리 시스템(CAS) 구축과 함께 서울국제친선협회(SIFO·회장 이순주)가 현지 국립기술대학교에 구축한 디지털 제작 교육시설 '팹랩'(FABLAB)이다.
2019년 문을 연 팹랩은 레이저 커터와 3D 프린터 등을 활용해 청년들의 디지털 제조 역량을 키우고 있다.
코이카는 SIFO를 통해 시민협력사업의 일환으로 1단계부터 3단계까지(2019-2027) 9년간 팹랩 비슈케크를 운영하고 있다. SIFO는 현재 3단계(2025-2027)에 들어서면서 현지 지부를 설립했고, 교육 및 인증시험 운영을 통해 자체 수익 마련에 안정적인 기반이 되고 있다.
임소연 코이카 키르기스스탄 사무소장은 "사업이 끝난 뒤에도 현지 기관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사업 기간 중 파트너 기관과 공동으로 운영 계획·인력·예산을 수립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팹랩의 경우 법인 설립을 통한 수익 모델 구축이 성공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슈케크=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월 9일 코이카 키르기스스탄 사무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임소연 코이카 키르기스스탄 사무소장. 2026.9.3 phyeonsoo@yna.co.kr
미르란 코이추베코비치 치니바예프(48) 키르기스스탄 국립기술대(KSTU) 총장은 "학생들은 팹랩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시제품을 제작하고 최종 제품까지 완성하는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며 팹랩을 기반으로 매년 열리는 기술 경진대회 '메이커톤'은 가장 성공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꼽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론을 학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습을 통해 직접 제작하고 적용하는 과정이 교육 현장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코이카가 팹랩뿐만 아니라 전자의회 구축과 선거 시스템 현대화, 신분증 시스템 도입 등 키르기스스탄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해왔다"고 평가했다.
주선정 SIFO 키르기스스탄 지부장은 "팹랩의 일부 교육과정은 대학 정규 학점으로 인정되고, 시설은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디지털 제조 인증센터로 지정됐다"며 "졸업생들은 창업하거나 국제 창업대회에 참가해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졸업생 가운데 고려인 5세인 김막심(22) 씨는 스마트 AR(증강현실) 글라스를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최근 러시아에서 개최된 국제 학술대회에서 사이버 보안 관련 프로젝트를 발표해 1위를 차지했다.
(비슈케크=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월 9일 국립기술대(KSTU)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미르란 코이추베코비치 치니바예프 총장. 2026.9.3 phyeonsoo@yna.co.kr
◇ 숙련공은 나이에 막히고, 합격한 청년은 3배수로 기다리고
두 나라 현장에서 공통으로 나온 호소는 좁은 제도의 문이었다. 비전문취업(E-9) 고용허가제 시험의 응시 연령은 만 18∼39세다. 한국에서 4년 넘게 일하며 기술과 현장 경험을 쌓았더라도 귀국 후 40세를 넘으면 다시 시험을 치를 수 없다.
타슈켄트 직업훈련원 출신인 주마노프 라힘(49) 씨도 연령 제한에 가로막힌 숙련 귀환자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집에서 70㎞ 떨어진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그는 2013년부터 6년간 경남 진주 등에서 근무했다. 그는 "다시 한국에서 일하고 싶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갈 수 없다"며 "연령 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에서 쌓은 경험을 고국의 인재 양성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타슈켄트 직업훈련원 출신인 루스타모브 다니요르(45) 씨는 2019년부터 4년간 경기 평택의 태성자원 등에서 근무한 뒤 귀국해 현재 이 훈련원 공과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귀환 근로자 모두가 경력을 살릴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차를 마련해 얀덱스(Yandex) 호출 택시를 모는 이들도 있다. 한국에서 익힌 기술을 현지 산업에서 활용할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젊은 지원자들은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힌다. 시험에 합격하고도 사업주의 선택을 받기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숙련자는 나이에 막히고, 청년은 3배수 구직자 명부에서 선택을 기다리는 엇박자가 빚어지고 있다.
연령 제한 완화는 국내 노동시장과 체류 관리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다만 이미 한국 근무를 통해 기술과 적응력을 검증받은 숙련 귀환자를 활용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일 만하다.
고용허가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두 갈래다. 하나는 우즈베키스탄처럼 오랜 기간 축적된 송출 체계를 토대로 산업 수요에 맞는 숙련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관리 효율화'다.
다른 하나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새롭게 한국 노동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국가에서 인력 공급을 넓히는 '공급망 다변화'다.
(타슈켄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월 6일 우즈베키스탄 EPS센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후 기념촬영한 루스타모브 다니요르(왼쪽) 타슈켄트 직업훈련원 공과장과 주마노프 라힘 씨. 2026.9.3 phyeonsoo@yna.co.kr
◇ 한국 사업주, 인력 선택 폭 확대 속 촘촘한 인력 관리 중요 과제
중앙아시아는 고려인 공동체가 강제이주의 아픔을 딛고 삶의 터전을 일군 땅이자, 오늘날 수많은 청년이 국경을 넘어 생계를 개척하는 노동 이동의 현장이다.
현지에서는 오는 16∼17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비전문취업(E-9) 비자 쿼터 확대를 비롯한 취업 제도 개선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이들의 '코리안 드림'을 한국 제조업의 일손 부족을 메우는 숫자로만 바라봐서는 지속 가능한 인력 협력을 이루기 어렵다. 시험 전 언어·기술 교육부터 사업장 적응과 체류 중 권익 보호, 귀환 후 기술 활용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순환 구조로 잇는 정책이 필요하다.
타슈켄트에서 축적된 숙련 인력과 비슈케크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송출망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 서 있지만 지향점은 같다. 한국 산업에 필요한 준비된 인력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제때 일터에 배치되고, 안전하게 일한 뒤 축적한 경험을 고국의 자산으로 돌려주는 선순환이다.
중앙아시아발 인력 공급망의 성패는 문을 얼마나 넓히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 문을 통과하는 사람과 산업을 얼마나 촘촘하고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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