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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4명 이상이 질색… 추석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 1위’ 뭐길래

연합뉴스
1931.5.16∼2026.9.21
[KD운송그룹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21일 별세한 허명회(許明會) KD운송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 중 KD운송그룹 18개 계열사의 전현직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수십명 눈에 띄었다.
그중 한명인 임준순 대원고속 노조위원장은 "KD운송그룹 계열사는 한 번도 파업한 적이 없어요. 다른 노조는 '대표이사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는 저녁에 '번개' 약속도 할 수 있는걸요. 말이 통하는데 왜 파업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렇다고 고인이 녹록한 경영자는 아니었다.
[KD운송그룹 제공]
매일 첫차가 출발하는 오전 4시 30분이면 운송사업소에 들러 버스 청소를 제대로 했는지까지 챙겼다. 주말이나 연휴에도 쉬지 않았다. 첫 회사인 대원여객을 창업한 1972년 1월부터 아들(허상준 회장)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2024년까지 52년간 쉰 날은 단 14일. 부모상, 부인상과 본인 눈 수술한 기간이었다. 골프도 안 쳤고, 해외는커녕 제주도에도 간 적이 없었다. 임 위원장은 "제주도 한 버스회사가 인수를 제의한 적이 있었는데요. 결국 무산됐죠. 그때 다들 '우리 회장님이 드디어 비행기를 타보겠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까요"라고 회상했다. 송진화 평안운수 노조위원장은 "숫자에 밝은 카리스마 경영자였다"고 기억했다.
[KD운송그룹 제공]
어떻게 돈을 벌었길래 계열사를 늘릴 수 있었을까.
이상도 그룹 상무는 '허명회류 경영'을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서 직원에게 돌려줬다"고 요약했다. 운수회사 비용 중 가장 비중이 큰 게 인건비와 연료비이고, 인건비 중에는 운전기사들이 배차시간 맞추겠다고 급발진하다가 버스 내 각종 사고를 일으킨 탓에 지출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걸 줄이려고 운전기사를 가족처럼 대우하고, "배차시간 안 맞춰도 좋으니 급발진, 급정차하지 말라"고 강조했다는 소리다. 급발진 운전 습관을 고치겠다고 여성 등 무경력자를 채용해서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정도다. 이은주 그룹 홍보과장은 "끊임없이 안전운전을 고민하셨다"고 했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 도입에도 앞장섰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에 시도했다가 반발에 부닥쳐 실패했지만 2022년 이태원 참사 직후 다시 시도해 결국 현실화했다.
[KD운송그룹 제공]
그 결과는 버스공제조합과 보험사에 내는 보험료 절감으로 이어졌다. 이 상무는 "우리보고 인수해달라고 하는 회사는 보험료율이 200∼300%에 이르렀다. 우린 60%대였다"고 했다.
직원 월급과 상여금, 퇴직금 지급은 하루도 미루지 않았다. 2006년 KD운송그룹에 인수된 의정부 평안운수의 송진화 노조위원장은 "인수 전에 12년, 인수 후에 20년 근무했다"며 "그전에도 월급은 안 밀렸지만, 상여금은 밀리는 일이 있었는데 KD는 그런 게 없다. 월급날 새벽 6시면 통장에 어김없이 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버스 바퀴 휠 소재를 강철에서 알루미늄으로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연료비도 줄였다. 허 명예회장이 회사에서 가져가는 돈은 월급이 전부였다. 회사에서 만들어준 액자조차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지 말라며 개인 돈을 지불했다. 임 위원장은 "공사 구분이 철저한 분이셨다. 우린 고인을 사주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기'는 직영 식당 56곳을 운영하고, 해마다 김치를 담가서 15㎏씩 나눠주는 일로도 이어졌다. 운전기사가 쓰는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한 건 10년도 더 지났다.
임 위원장은 "상급노조 협상에 참여해서 노조 측 요구를 들어보면 '식당 직영제'도 그렇고, '화장실 비데 설치'도 그렇고 전부 'KD운송그룹처럼 해달라'는 거더라"라고 자랑했다.
임금인상률을 노조에 백지 위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얘기였다. 임 위원장은 "회장이 그렇게 노동자들 생각해주고, 회사가 얼마나 벌었는지 뻔히 아는데 우리가 10%, 20% 올려달라고 쓸 수 있겠느냐"고 했다. 최고 높게 쓴 숫자가 '3.8% 인상'이었고, 코로나 때는 0%로 적어냈다. 노조가 요구안을 봉투에 담아서 건네면 고인은 그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승인한다는 의미로 도장을 찍었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쳤을까.
이 상무는 "사업가에는 '돈을 버는 사업가'랑 '경영하는 사업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인은 경영하는 사업가였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남이 안 볼 때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의 '신독(愼獨)'을 강조하는 분이었다"고 했다.
이 과장은 카리스마 경영자의 마음속에 식당 조리원이나 청소 미화원까지 모두 정직원으로 고용하는 '임시직 없는 회사'가 있었다고 했다. "명예회장님은 '불안한 고용 형태가 싫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1명이 벌어서 (가족) 5명이 먹고 사는데 돈 버는 사람이 신분이 불안하고, 배차시간에 쫓기면 안 된다는 거죠. 평소 강조한 '운수보국'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노동자를 쥐어짜서 이윤을 내'는게 아니라 '노동자를 가족처럼 대'하는 '신독' 경영을 52년간 관철한 '버스왕'은 중부고속도로를 오가는 소속 버스가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광주 선영에 묻힐 예정이다.
[네이버 블로그 캡처]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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