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호르무즈'…아부다비 왕세자의 3천억달러 승부수

국부펀드 활용해 해협 우회 물류 프로젝트 적극 추진

셰이크 칼리드 아부다비 왕세자(왼쪽)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주종국 기자 = 이란 전쟁으로 물류에 어려움을 겪는 아랍에미리트(UAE)를 구하기 위해 아부다비의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알나하얀 왕세자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3천억달러(약 407조원) 규모의 국부펀드 리마드홀딩스를 활용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잘 돌아갈 수 있는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가 이란 영향권에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며 국부펀드가 UAE의 이른바 '제로 호르무즈(Zero Hormuz)' 전략의 핵심 주체라고 30일 보도했다.

제로 호르무즈란 UAE에서 이 해협의 영향력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는 이란 전쟁 발발 수주전에 리마드 국부펀드의 운영을 맡게 됐다. 전쟁 이후 이 국부펀드는 UAE의 인프라를 재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부펀드는 최근 시가총액 90억달러(약 12조2천억원)의 아부다비항만공사를 상장 폐지해 통째로 사들이면서 소유권을 장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국부펀드는 호르무즈 해협 외부에 새로운 항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수십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와 그 측근들은 아직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세계 최대 규모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 국제 원자재 시장, 월가 주요 인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로 부상했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40대인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는 외교적으로도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인도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만나 양국 간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왕세자와 아부다비 관리들은 블랙록의 래리 핑크와 같은 월가 거물들과도 만나 국가 기반 시설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 5월에는 왕세자와 자심 부 아타바 알 자비 리마드 CEO를 비롯한 당국자들이 블랙록, 싱가포르 테마섹, UAE의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아드녹·ADNOC)와 함께 에너지 수송·물류·수자원 분야에 최대 300억달러(약 40조7천억원)를 투자하는 데 합의했다.

인프라가 성공적으로 구축되면 원유에서 석유화학, 알루미늄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해 원활하게 수출할 수 있다.

UAE의 타니 알 제유디 대외무역부 장관은 지난 6월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든 아니든 호르무즈에 대한 의존도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새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건 글로벌 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상당한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지역 인프라에 대한 이란 군부의 위협은 여전히 우려스러운 요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 연안 항구로 연결되는 송유관을 확장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최근 친이란 민병대의 공격을 받은 후 일시 폐쇄되는 등 어려움을 드러낸 게 그 증거다.

런던정경대(LSE)의 슈테펜 헤르토그 교수는 "왕세자는 안보 분야 경력을 갖고 있고 최근 몇 년간 외교 임무까지 맡아왔다. 따라서 핵심 인프라를 관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며 "다만 결정적인 문제는 UAE의 동부 항만들조차 이란과 가깝다는 점이다. 드론과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다"고 말했다.

아부다비 국부펀드는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1천100억달러로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를 인수할 때 이 투자에 참여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후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는 씨티그룹의 제인 프레이저 최고경영자(CEO)와 브룩필드의 브루스 플랫을 비롯한 경영진들과 만나는 등 보폭을 넓혔다. 그전에는 아부다비 포뮬러 1 경기가 열리던 당시 억만장자 사업가 토드 보엘리와 블랙록 산하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스의 아데바요 오군레시 CEO를 접대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연초에는 숙부 셰이크 타흐눈 빈 자예드 알나하얀이 이끌던 국부펀드 ADQ가 리마드에 통합되면서 왕세자의 존재감이 더 부각됐다.

소식통들은 왕세자와 UAE 고위 관리들이 현재 호르무즈 해협 바로 바깥쪽에 위치해 오만만으로 통하는 해안 도시 푸자이라의 항만 확장에 특히 집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아드녹과 두바이의 항만 대기업 DP월드도 호르무즈 해협 우회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 중이다.

아드녹 이사회 집행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왕세자는 지난 5월 회의에서 푸자이라로 통하는 두 번째 송유관 완공을 앞당기도록 지시했다.

사남 바킬 채텀하우스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국장은 "'노 호르무즈' 정책은 해협의 추가적 불안정으로부터 UAE를 지키는 데 더없이 중요하다"며 "다만 새로운 전쟁 양상과 이란 및 대리 세력의 사정권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UAE는 호르무즈 바깥의 인프라까지 표적이 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at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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