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상봉쇄로 중동사태 장기화 조짐…산업계 위기 전면화하나

단기 처방에 한계…정유·석화·항공업계 비용 급등 불가피

해운업계 안전 확보도 비상…운임 상승에 수출 부담도 커져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김보경 임성호 김민지 강태우 기자 =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가운데 미국이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에 나서면서 산업계의 위기감이 또다시 고조되고 있다.

한 달 반 가량 이어져온 전쟁이 더 장기화할 경우 현재와 같은 응급 대책으로는 버티기 힘든 진짜 위기가 전방위로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원유 하역 운반선
[연합뉴스 자료사진]

13일 산업계는 미군이 한국시간으로 이날 밤 11시부터 이란의 모든 항구에 대한 해상 봉쇄에 들어가면 휴전 이후 긴장이 오히려 고조되고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이 이번 조치를 휴전 위반으로 간주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휴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작아지고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중동산 석유와 나프타 재고분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는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는 최악의 경우 연쇄 가동 중단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져 비상이 걸렸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전날 비축유 방출 없이 4~5월을 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나, 이미 사태가 한 달을 훌쩍 넘기고도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데 따라 향후 상황을 예단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추후 비축유를 풀어 설비 가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해도, 치솟는 국제유가와 원재료 가격 탓에 비용 부담이 급등하고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3주째를 맞으면서 정유사들이 원료비와 수송비 등 손실을 보고 있는 데다, 수출 제한 조치까지 도입되면서 위험 회피 수단도 극히 제한된 상태다.

3차 최고가격제 셋째날 기름값 상승세 둔화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3차 석유 최고가격제 실시 셋째 날인 12일 전국 주유소 평균 유가 상승세가 대폭 둔화한 가운데 서울 경유 가격은 전날 대비 보합세를 보였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윳값은 L당 1천992.3원으로 전날보다 0.7원 올랐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 모습. 2026.4.12 jin90@yna.co.kr

정유업계 관계자는 "종전 기대로 유가 안정을 예상했으나 협상 결렬과 긴장 고조로 시장 실망감이 큰 상황"이라며 "우회 경로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대체 유종으로 수요가 몰려 가격이 폭등하면 부르는 게 값이 될 수 있어 5∼6월 이후의 원유 수입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대체 선적과 비축유 스와프(교환) 등을 통해 4월 수입 절벽은 어느 정도 해소하겠지만, 5월 이후 물량 확보가 걱정"이라며 "중동산 원유 비중이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수입 다변화만으로는 100% 물량을 커버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석화업계 역시 단기 대응으로 상황을 버티고 있지만 사태 장기화에는 속수무책이라는 반응이다.

최근 정부가 확보한 미국산 원유 등이 국내에 도착하면 나프타 수급에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이번 이란 해상봉쇄로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해상봉쇄로 이란산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긴 중국이 스폿 물량 확보에 뛰어들 경우 그렇지 않아도 높은 가격이 어디까지 오를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 아프리카, 유럽 등에서 스폿 물량을 끌어모으고 있는데 여기에 중국까지 합세하면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며 "나프타 가격이 전쟁 전보다 80%가량 오른 상황에서 추가 부담 확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추경 예산에 8천691억원을 편성해 나프타 수입단가 차액 일부를 보전하기로 했으나, 어디까지나 일회성 비용일 뿐 사태 장기화에 대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중동발 고유가에 유류할증료 급등
(영종도=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와 환율이 오르면서 오는 4월 국제선 항공권에 부과되는 유류 할증료가 전달과 비교해 급등하며 여행객들의 항공권 요금 부담이 가중되게 됐다.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4월 유류할증료 기준이 되는 올해 2월 16일∼3월 15일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값(MOPS)은 총 33단계 중 18단계에 해당한다. 사진은 이날 인천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국제공항 계류장 모습. 2026.3.16 cityboy@yna.co.kr

항공업계 역시 이번 전쟁 장기화 조짐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업계 중 하나다.

항공유는 항공사 영업비용의 가장 큰 30% 내외를 차지한다.

글로벌 에너지 리서치 기관 S&P글로벌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아시아 항공유 가격은 휴전 직전인 548달러대보다 낮은 갤런당 507달러대였으나, 이번 해상봉쇄로 항공유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대한항공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항공유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으로 두 자릿수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사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은 약 3천50만배럴로, 유가 1달러 상승 시 약 3천50만달러(약 450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현재 수준 유가가 연중 지속될 경우 연간 손실 규모가 수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기도 평택항에 쌓여있는 컨테이너
[연합뉴스 자료사진]

해운업계는 당장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해수부 등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선박은 총 26척, 선원은 173명으로, 이번 봉쇄로 인해 장기간 해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상 운송을 이용해야 하는 수출업체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해상운송 항로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0일 1890.77로 전주의 1854.96 대비 35.81(1.93%)포인트 오르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해상운임 상승은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선복(선박 적재 공간) 이용 시 장기계약이 아닌 스폿 계약을 맺기 때문에 운임 상승에 따라 받는 영향이 크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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