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맛이야!" 광고 발주한 '동물 사진가' 박찬원씨 별세
[라의눈 출판사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탤런트 김혜자 씨의 "그래, 이 맛이야!" 다시다 광고를 발주한 기업인으로 활약한 뒤 퇴직 후 동물 사진가로 변신한 박찬원(朴贊元) 전 코리아나화장품 사장이 21일 오전 2시 30분께 강원 철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2일 전했다. 향년 만 81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철원에 닭을 찍으러 갔다가 불귀의 객이 됐다.

1944년 11월 30일생인 고인은 서울상고,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기자를 꿈꿨지만 1971년 제일제당에 입사했다. 마케팅실장과 생활화학사업본부장을 거쳐 삼성물산·삼성전자 전무,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 코리아나화장품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한국마케팅클럽회장, 아시아태평양마케팅포럼의 전신인 상공회의소 마케팅연구회 초대 회장, 성균관대 겸임 교수로도 활동했다.

제일제당 마케팅실장이던 1980년대 후반, '고향의 맛, 고향의 소리 시리즈 광고'를 발주했다. "그래, 이 맛이야!"는 이 시리즈 가을 편에 들어갔다. 고인은 저서 '당신이 만들면 다릅니다'에서 "광고안을 결정하고 마무리할 무렵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박승순 팀장이 조심스럽게 '팀원 중 한명인 신입사원이 맛을 (계절을 상징하는) 소리와 연결하면 어떠냐고 했다'고 말을 꺼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다시다 여름 소리 편'이었다"고 썼다.

"여름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여름에는 맛이 있습니다"라는 멘트로 시작한 다시다 광고는 '가을 소리 편'으로 이어지며 TV 광고 최초로 동시 녹음을 시도했다. 김혜자 씨가 새를 쫓으며 "훠∼어∼이, 훠∼어∼이"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여기에 더한 것이 "그래, 이 맛이야!"였다.

고인은 저서에서 "사실 '그래, 이 맛이야!'는 처음부터 콘티에 있던 멘트가 아니었다. 촬영 중 김씨가 보글보글 끓는 국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며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 군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를 한 것을 반영했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제품을 살렸다"고 적었다. 또 "김씨가 제일제당 모델을 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 2년 동안 공백 기간이 있었다. 다른 회사로 가지 않고 기다려줬다. (판매부장으로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마케팅실장으로 돌아오니) 마침 '김씨가 S식품과 전속계약을 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고, 병이 나서 서교동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씨를 찾아가 타사 이동을 만류하고 다시 계약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게토레이 광고를 발주한 것도 고인이었다. 새로운 마케팅 조사 기법 도입, 광고 중계방송, 비교 광고 등 여러 시도를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시절에는 서비스정보 시스템을 만들고, 사이버 서비스센터를 개설했다.

68세 때 대학원에 들어가 사진을 배운 뒤 작가로 변신했다. 한 가지 주제를 '100일간 촬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쉬다가 다시 하는 기간을 더하면 실제로는 한 주제를 평균 2∼3년 찍었다. 대부도 염전에 빠져 죽은 하루살이를 시작으로 거미, 돼지, 말, 젖소 등을 촬영한 뒤 사람의 손과 발을 찍었다. 2022년 9월 젖소 사진만 모아서 '이렇게, 아직도, 그러나' 사진전을 열었다.

저서로 '당신이 만들면 다릅니다'(2009)와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2016), '꿀젖잠'(2016), '어떤 여행'(2017), '말은 말이 없다'(2018), '사진, 울림 떨림'(2022), '박찬원의 두근두근'(2026) 등 사진에세이가 있다. 아들 상우 씨는 "하나의 일에 몰두하면 집중하는 게 남달랐고, 남과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봤다는 점에서 시각이 창의적이었고, 항상 기록하는 습관이 있으셨다"고 돌아봤다. 철원에 간 것도 새로운 사진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아들 박씨는 전했다.

유족은 부인 유창희 씨와 1남1녀(박형지·박상우), 며느리 황윤정 씨 등이 있다. 빈소는 보라매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발인 24일 오전 6시 30분, 장지 이천 대포리 선영. ☎ 02-836-6900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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