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친구가 자랑하길래 부러웠다"

생성형 AI 유료 버전 사용 여부에 'AI 수저론' 고개

월 수만~수십만원 구독료 → 'AI 빈익빈 부익부'

고교 동아리 가입·대입 생기부·논문까지 'AI 찬스'

"고성능 AI 활용, 새로운 형태 사회적 불평등 문제로"

지난 2월 신입생들로 붐비는 서울대 정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클로드의 고성능 유료 모델을 쓰려면 한 달에 거의 30만원을 내야 하는데, 제가 과외로 버는 돈이 딱 그 언저리예요. 사실상 버는 돈 전부를 내야 하는 건데, 어떻게 쓰겠어요. 유료 모델 쓰는 건 'AI 금수저' 같은 거죠. 저는 흙수저고요."

마케팅 분야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김모(26) 씨는 지난 8일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무료 모델만으로는 취업 포트폴리오 제작과 대학교 과제 수행에 한계가 있었다"며 "어쩔 수 없이 유료 구독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과제도, 입시도, 취업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해야 살아남는 세상이 되자 'AI 수저론'이 고개를 든다.

이미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월 수십만원짜리 최상위 모델을 구독해 긴 논문과 보고서, 포트폴리오, 수행평가 안내문을 한꺼번에 분석하는 학생은 'AI 금수저', 무료 모델의 용량 제한에 막혀 문단을 쪼개 넣고 답변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학생은 'AI 흙수저'로 나뉘고 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성능 AI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경쟁력 차이가 벌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AI) 앱 딥시크, 챗GPT, 제미나이의 아이콘을 보여주는 휴대폰 디스플레이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과제 속도·질에서 모두 차이가 나 유료 버전 구독"

지난해 9월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경험한 대학생의 76.4%가 학업이나 일에 활용하고 싶다고 답했고, 91.7%는 과제·프로젝트 자료 검색에 이미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챗GPT는 월 20달러(플러스 모델·약 2만9천원)부터 최대 200달러(프로 모델·약 29만원), 구글 제미나이는 국내 기준 월 1만1천원부터 36만원까지 구독료가 책정되어 있다. 환율과 세금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은 더 커진다.

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정모(26) 씨는 월 200달러(약 29만원)짜리 챗GPT 유료 구독 모델을 쓰고 있다.

정씨는 "주변 친구들이 모두 챗GPT를 사용해서 안 쓸 수가 없다"며 "과제의 속도와 질 측면 모두에서 차이가 나 유료 버전을 구독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는 월 20달러(약 2만9천원)짜리 플랜을 썼는데, 지금은 더 많은 과제와 프로젝트를 위해 200달러짜리 플랜을 구독 중"이라며 "처음에는 비싸다고 느꼈지만 확실히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져 계속 사용할 것 같다"고 밝혔다.

생명과학과 대학생 이모(25) 씨는 지난 3월 월 20달러(약 2만9천원)짜리 챗GPT 유료 모델 구독을 시작했다.

이씨는 "생명과학 과제 특성상 영어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무료 모델로도 번역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논문 전체 흐름을 잡거나 실험군·대조군, 사용한 분석 방법, 결과의 한계를 정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유료 모델은 어려운 논문을 읽을 때 어디를 먼저 봐야 하는지도 잡아준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비용이 부담돼 과제 많은 학기에만 쓰고 방학에는 해지할까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캠퍼스 오가는 대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독료 부담 때문에 AI 무료 모델만 쓴다는 조모(23) 씨는 "간단한 문장 수정이나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에는 괜찮지만, 학회 팀 프로젝트처럼 자료를 많이 다뤄야 할 때는 확실히 한계가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대학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 발표를 준비하며 기사, 증권사 리포트, 기업 IR 자료, 통계자료를 전부 분석해야 하는데 무료 모델의 용량 한계 때문에 자료를 조금씩 넣어 물어봐야 했다"며 "유료 모델로 30분이면 할 일을 며칠씩 붙잡고 있는 게 답답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유료 모델 계정 공유'가 이뤄진다. 친구들끼리는 물론이고, 특정 강의 수강생들끼리 공공연하게 유료 구독 계정을 나눠 쓰자는 논의가 오가기도 한다.

AI 최적화 기술 스타트업 스퀴즈비츠의 정연준 머신러닝 엔지니어·리서처는 "최신 유료 모델은 단순히 더 긴 문맥을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추론 정확도와 복잡한 지시 수행 능력, 코드·문서 분석 등 모델 자체 성능에서 무료 모델보다 강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무료 모델은 상대적으로 성능이 제한적일 수 있고, 리밋(모델 사용량 제한)도 낮아 반복적인 작업이나 긴 시간의 업무에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유료 모델, 30분만에 A4 5장 보고서 만들어줘"

'AI 격차'는 중고등학생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4년 청소년 생성형 AI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중·고생 5천778명 중 67.9%가 생성형 AI 사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수원의 한 고등학교 2학년생 이모(18) 군은 "챗GPT 무료 모델로도 수행평가 보고서 주제 추천은 받을 수 있었지만, 너무 흔한 주제가 많았다"며 "유료 모델을 쓰는 친구는 안내문과 전공 희망을 함께 입력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주제와 목차를 바탕으로 30분 만에 A4 다섯 장짜리 보고서를 만들어줬다고 자랑하길래 부러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2학년생 심모(18) 양도 "요즘은 거의 다 AI를 활용하고 있고 유료 모델을 구독하는 친구들도 있다"며 "고등학생은 대학 입시 때문에 시간이 굉장히 부족한데, 유료 모델을 사용하면서 수행평가나 생기부(생활기록부) 준비 시간을 단축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학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반영되는 탐구 활동, 보고서 작성, 발표 준비 과정에서 AI 활용 수준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 동아리 모집에서도 AI를 활용하지 않은 지원서를 찾기 어렵게 됐다.

지난 3월 딸이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모 씨는 "딸이 1순위로 원하던 동아리 가입에 실패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 딸만 빼고 대부분 AI로 가입 지원서를 썼다고 한다"며 "2순위 동아리 지원 때는 AI 유료 버전을 활용해 지원서를 썼더니 깜짝 놀랄 수준의 지원서가 만들어졌고 딸은 붙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AI를 쓰지 않으면 경쟁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며 "이제는 AI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를 배워야 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입시 시장에는 이를 겨냥한 AI 서비스도 등장했다.

한 AI 기반 생기부·탐구 프로그램은 연간권 가격이 39만9천500원이다. 학생이 생기부에서 심화하거나 확장하고 싶은 활동을 선택하면 연계 탐구 주제를 추천하고, 이를 바탕으로 AI 모델을 활용해 심층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금수저ㆍ은수저ㆍ흙수저 (PG)
[양온하 제작] 일러스트

최병호 고려대 휴먼 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연구교수는 "AI 무료 버전은 속도와 비용을 고려해 경량화된 모델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전체 성능의 일부만 활용하는 수준"이라며 "유료 버전은 최신 모델과 다양한 기능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사실상 '경량 모델과 풀버전 모델'의 차이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할수록 더 높은 성능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새로운 형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학생들은 별도의 지원 없이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AI는 전기나 통신처럼 사회 인프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토큰 역시 하나의 인프라인 만큼 정부와 대학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큰은 AI모델이 처리·생산하는 데이터의 최소 단위를 가리키며, 이용자에 대한 요금 부과와 AI 모델의 생산량 측정을 위한 지표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영어 단어 하나가 1토큰에 해당한다.

서울대 이 교수는 "현재 챗봇 형태의 AI는 검색 엔진처럼 활용되는 수준이라 학생 간 큰 격차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이를 넘어 코딩, 데이터 분석 등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형'으로 발전하면 상황이 달라진다"며 "이 경우 토큰 사용량, 즉 비용에 따라 활용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격차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정부가 AI를 활용해 공공 서비스를 지능화하는 것이 격차 해소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AI를 직접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 필요하며, 이용자들의 AI 리터러시를 높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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