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 업고 '脫탈원전'서 더 가는 정부…"원전 추가 검토"

정부 고위급, 尹정부 때 계획 원전 더해 원전 더 짓는 방안 거론

전기 필요한 것은 맞지만…'장밋빛 전망'에만 기댄 속도전 우려

울산 새울원자력본부 새울원전 3,4호기
[새울원자력본부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용인과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에 필요한 전기 수요를 반영한 중장기 수급 계획이 올해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 제시될 전망이다.

정부 내에서 최근 부지를 정한 원자력발전소 외에 원전을 더 지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반도체 산업 호황이 장기적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만 기대 정부가 지나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이 다른 구조를 개선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는 정부가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용인·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원전 15기 전력 필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정기국회 전후로는 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차 전기본엔 2040년까지 전력을 어떻게 생산하고 공급할지 계획이 담긴다.

앞서 4월 12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는 2040년 전력소비량은 657.6∼694.1TWh(테라와트시), 연중 최대 전력 수요는 131.8∼138.2GW(기가와트)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발전소 등 전력설비 규모를 결정하는 연중 최대 전력 수요는 현재보다 최대 1.4배 정도 늘어난다고 본 것이다.

이 전망은 서남권 반도체 산업단지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공개되기 전 추산돼 상향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2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 수요계획소위원회 위원장인 허진 이화여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국회기후변화포럼 주최 토론회에서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에 따라 (전력수요 전망치를) 개선하고 보완할 예정"이라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제시하는 지역별 전력수요 전망에도 메가프로젝트를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15GW, 서남권 반도체 산단에는 6.3GW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2곳의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발전량 1.4GW 한국형 원전 APR1400 기준, 원전 15기가 생산할 정도의 전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AIDC 필요 전력은 2035년 18.4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원전 20기를 더 지어도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 기후장관 "원전 추가로 지을지 빨리 검토해야"

산업장관 "서남권 반도체에 800조…충청권에 81조 투자"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정부가 대한민국의 대도약을 이끌고자 서남권에 800조원,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하는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서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할 것"이라면서 "총 800조 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통해 4기의 메모리 팹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의 모습. 2026.6.29 dwise@yna.co.kr

김 장관은 이날 방송에서 '현재 계획된 수준'까지는 서남권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전기를 호남권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 충남권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후 들어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반도체 산단이 확대될 경우엔 "만만치 않다"면서 "반도체 공장엔 24시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이는 재생에너지 발전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감당하기 만만치 않아 원전을 추가로 지어야 할지를 빨리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서남권 반도체 산단이 들어설 전남은 전기 자급률(2025년 1∼7월 기준)이 경북과 함께 200%를 넘는 지역이다. 반도체 산단이 조성되기에 지역 내 발전량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발전이 이뤄지다 보니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점이 문제다.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BESS)나 양수발전댐 등 '유연성 자원'을 추가하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발전량이 외부요인에 따라 달라지는 '간헐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아니다.

이에 '발전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발전원'으로 원전을 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 김 장관에 앞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직후 브리핑에서 원전 추가 도입 가능성 질문에 "12차 전기본에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다.

출범 초기 '지을 곳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원전 건설에 신중했던 현 정부가 '반도체와 AI 등 첨단산업에 전기가 필요하다'는 다른 현실적인 이유를 내세워 전 정부 때 계획된 원전 건설 계획을 확정하며 스스로 빗장을 풀더니, 같은 이유로 더 나아가려는 모양새다.

◇ '속도전' 하려면 원전 밀집지에 또 원전 지어야

후쿠시마의 방치된 주택 마당이 잡초로 뒤덮인 모습
[촬영 조성미]

반도체나 AI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기를 원전으로 공급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시간적 불일치'이다.

국내에서 원전을 짓는 데는 부지 선정 등의 절차를 포함해 14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데이터센터는 사실상 당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조기 완공을 추진하는 점을 고려하면 10년 안팎 내 대량의 전기가 공급돼야 한다는 점에서 원전을 더 지을지 논의를 생략하고 바로 추진해도 시기를 맞추기 빠듯하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이재명 대통령도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에 기반시설이 갖춰진 기존 원전 옆에 새 원전을 짓는 방식이 거론된다.

김 장관도 이날 방송에서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 부지와 울산 울주군 (새울)원전 부지에 각각 2기씩 원전을 더 지을 땅이 있다고 보고받았다"면서 기존 원전 부지를 활용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최근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대형 원전 2기를 지을 곳으로 선정된 경북 영덕군 부지도 전체 면적이 원전 6기를 지을 수 있는 수준으로 넓다.

이것까지 고려하면 원전 8기를 더 지을 땅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원전 밀집지에 원전을 추가로 짓는다면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복합재난이 발생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점이 문제다.

한빛원전을 뺀 모든 원전이 영남에 있어, 기존 원전 옆에 또 원전을 지으면 남부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서 소비하는 구조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영남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과 호남에서 소비하는 구조로 바뀌기만 한다는 문제도 있다.

원전 추가 건설 시 방사성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문제다.

현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없으며, 이제 겨우 부적합 지역을 배제하고 기본조사를 실시할 후보지를 선정하는 데 착수한 단계다.

◇ 송전선 빠르게 확충될까…'동서울변환소' 문제도 해결 못 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작년 11월 22일 경기도 하남시 소재 동서울 변전소를 방문해 전력설비 옥내화 건설현장 등을 살펴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어떤 발전소를 추가로 짓든, 송·변전 설비를 확충해야 하는데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전력은 2038년까지 6만1천183C-㎞(서킷킬로미터)의 송전선로를 구축한다. 작년 기준 전국 송전선로 길이가 3만6천184C-㎞로 송전선로를 1.6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해마다 2천C-㎞의 송전선로를 깔아야 한다.

최근 5년간 구축된 송전선로가 연평균 300C-㎞라는 점을 고려하면, 속도를 6배 넘게 높여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반도체 공장도, 발전소도 들어서지 않아 지역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없지만 송전선로만 지나가는 지역의 주민을 어떻게 설득할지다.

정부는 마을 가까이 지나는 송전선로는 땅에 묻는 '지중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장 정부는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한 동서울변환소 증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동서울변화소 증설은 정부가 국가 기간 전력망 구축 사업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사업인데, 행정심판 등에서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음에도 주민 반대에 따라 여당 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중단된 상태다.

◇ 전력·용수 공급만 골몰…'본령' 잃은 기후부

정부가 장밋빛 전망만 제시하며 속도전을 벌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서 국회기후변화포럼 토론회에서 12차 전기본 총괄위의 2040년 전력수요 전망에 대해 "(반도체산업이나 데이터센터 등의 전력수요는) 과거 추세를 토대로 한 모형 수요에 일정 부분 반영됐을 수 있다"면서 반도체산업과 데이터센터 등에 필요한 전력수요를 '추가수요' 명목으로 반영하면서 전력수요가 과도하게 전망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같은 토론회에서 "전력수요가 계속 늘어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이 없다"면서 "어디서 무엇을 위해 전기를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 사무총장은 "첨단산업과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대단히 낙관적으로, 기업이 한다는 것 다 받아서 모두 반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면서 "반대로 설비계획은 비관적으로만 전망해서 반드시 더 지어야 한다는 쪽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와 관련해 기후부는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와 환경은 도외시하고 전력과 용수 공급만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출범 취지를 잃고 ''에너지·수자원부'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도체 산단과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에 '화력발전'을 동원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후부는 반도체 산단 등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안 중 하나로 LNG 발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LNG 발전도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한다. LNG 발전은 채굴, 정제, 액화, 수송, 기회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를 80배 더 일으키는 메탄을 배출한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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