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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어 미국 여행객 사이에 '득템 리스트'에 올라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미국 가시면 트레이드 조 가방 하나만 좀 사주시면 안 돼요?"
최근 미국 여행을 떠난 직장인 김모 씨에게 출국을 앞두고 뜻밖의 '미션'이 떨어졌다.
회사 동료 한 명이 "트레이더 조 가방을 몇 개만 사다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트레이더 조? 그게 명품 브랜드야?"
알고 보니 명품은커녕 미국 슈퍼마켓에서 파는 장바구니였다.
정확한 이름은 트레이더 조(Trader Joe's).
한국에서는 흔히 할인점이라고 부르지만, 자체브랜드(PB) 식품과 독특한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미국의 수퍼 체인이다.
그런데 김 씨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검색해보고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트레이더 조 에코백 득템.'
'미국 가면 무조건 사야 하는 쇼핑리스트.'
'오픈런 성공.'
평범한 캔버스 장바구니를 들고 활짝 웃는 사람들의 사진이 줄줄이 나타났다.
중년 여성부터 젊은 직장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미국 현지에서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섰다는 한국인 블로그 후기까지 있었다.
김 씨도 결국 렌터카를 몰았다.
관광지가 아니라 슈퍼마켓을 찾아서였다.
그런데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바로 앞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매장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늦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인기 색상의 가방까지 앞선 관광객들이 싹쓸이하고 난 뒤였다.
자유의 여신상도 아니고 그랜드캐니언도 아니다.
미국까지 와서 3달러짜리 장바구니 앞에서 한국인끼리 희비가 엇갈렸다.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최신 스트라이프 미니 캔버스 토트백 [독자 제공]
◇ 2.99달러짜리가 만든 '희소성'
사실 가격을 알면 더욱 재미있다.
트레이더 조가 올해 6월 내놓은 스트라이프 미니 캔버스 토트백의 공식 가격은 2.99달러다.
기존 캔버스 토트백 역시 대체로 몇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인기 상품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캘리포니아 일부 매장에서는 개점 전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서자 번호표를 나눠주고 1인당 최대 4개로 구매를 제한하기도 했다.
이는 전 매장 공통 규정은 아니고 재고 상황에 따라 매장이 시행한 제한이다.
이쯤이면 장바구니가 아니라 공모주 청약 같다.
트레이더 조는 해외에 매장이 없고 자사 상품을 기본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판다.
바로 이 조건이 '미국에 가야 살 수 있다'는 희소성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소셜미디어(SNS)가 불을 붙였다.
미니 캔버스백은 계절마다 색상이 바뀌고 한정판이 나오면서 운동화나 캐릭터 상품처럼 희소성 있는 상품이 됐다.
선물용으로 여러 개를 사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그러니 김 씨에게 "몇 개만 사다 달라"고 했던 동료만 유별났던 것도 아니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의 트레이더 조 매장 [사진/성연재 기자]
◇ 가방이 아니라 이야기를 사는 것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미국 슈퍼마켓 장바구니가 이토록 인기일까.
가방만 놓고 보면 설명하기 어렵다. 캔버스 천에 손잡이를 달고 'Trader Joe's'라고 적어 놓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 가방을 드는 순간 의미가 달라진다.
'나는 미국에 다녀왔다.'
혹은 최소한,
'미국에 다녀온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
몇 달러짜리 가방 하나에 여행 경험과 해외 네트워크, 유행 감각이 압축된다.
명품 가방이 가격으로 지위를 설명한다면 트레이더 조 가방은 거리와 희소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감자와 우유를 넣는 장바구니가 서울에서는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가는 패션 아이템이 된다.
해외 언론도 이 현상을 주목했다. 트레이더 조 가방은 서울뿐 아니라 도쿄와 런던 등에서도 일종의 '여행 인증 아이템'처럼 소비된다.
온라인에서는 몇 배의 가격에 되파는 재판매 상품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인터넷의 터무니없는 호가는 실제 거래가격과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신제품 가방을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 [독자 제공]
◇ 미국인 관광객은 올리브영 가방을 산다
그렇다고 이 부분에서 한국인들이 의문의 1패를 당한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반전도 있다.
우리가 미국까지 날아가 트레이더 조 장바구니를 챙기는 동안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올리브영 쇼핑백을 사 간다.
3천원대 타폴린 백이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국 여행 기념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미국 슈퍼마켓 가방을 들고 서울을 걷고, 미국인은 한국 드러그스토어 가방을 들고 뉴욕으로 돌아간다.
참으로 공평한 세계화다.
김 씨는 결국 다른 트레이더 조 매장을 또 찾아 나섰다.
이제 그의 미국 여행 일정표에는 박물관과 전망대, 맛집 사이에 'Trader Joe's'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여행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물건의 가격만을 사지 않는다. 어디에서 구했는지, 얼마나 구하기 어려웠는지, 그것을 SNS에 올렸을 때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지까지 함께 산다.
3달러짜리 장바구니가 300달러짜리 가방보다 더 자랑스러울 수도 있는 시대다.
가방은 싸다.
다만 '나도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가치를 높였을 뿐이다.
미국을 자주 가는 모 관광청 관계자는 "트레이더 조 가방의 인기는 현지에서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면서 "미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올리브 영 쇼핑백이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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