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 망망대해 솟은 53m 동해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바다위 연구실'

수심 23m 해저 암반에 928t 철골구조물…태양광·담수화·수중카메라 등 설치

한류·난류 만나는 해양생태계 변화 추적…어장 변동·기후변화 대응 자료 제공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촬영 박성제]

(울진=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동해 한복판에서 해양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전초기지가 바로 이곳입니다."

지난 28일 경북 울진군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후포항에서 1시간 남짓 뱃길을 달리자 망망대해 한가운데 거대한 철골 구조물인 왕돌초 해양과학기지가 위용을 드러냈다.

수심 23m 해저 암반에 세워진 기지는 4개의 파일을 해저 암반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설치됐다.

총 높이 53m에 달하는 철골 구조물의 무게는 자그마치 928t에 달한다.

동해 최초이자 이어도, 가거초, 소청초 해양과학기지에 이은 국내 네 번째 해양과학기지다.

왕돌초 기지의 CTD
[촬영 박성제]

◇ 동해 한복판 928t '바다 위 연구실'

왕돌초 기지는 선박 접안시설, 중간 갑판(인터데크), 설비갑판(셀라데크), 주 갑판(메인데크), 상부 갑판(루프데크) 등 5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선박에서 내려 중간 갑판에 올라서자 바다 위에 매달린 캡슐 모양의 장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발아래로는 뻥 뚫린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장비는 이곳에서 수중을 오르내리며 바닷속 환경을 관측한다.

바닷속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이 장비는 CTD(Conductivity Temperature Depth)로, 해양의 전기전도도와 수온, 수심 등을 측정한다.

기지 곳곳을 앞장서 안내한 정진용 KIOST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은 "왕돌초 수심은 23m로, CTD 장비가 수심 20m 정도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수온, 염분 값을 측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취재진과 KIOST 관계자들
[촬영 박성제]

계단을 따라 20m 높이의 설비갑판으로 올라가자 태양광 발전 시설과 담수화 장치 등 기지를 움직이는 각종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바다뿐인 이곳에서는 전기와 생활용수처럼 육지에서라면 당연하게 여겨질 것들도 스스로 만들어 써야 한다.

관측 장비와 드론 스테이션, 내부 서버 등을 구동하는 전력은 기본적으로 태양광으로 생산해 배터리에 저장하는데,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디젤 발전기도 갖췄다.

정 본부장은 "필요한 전력량을 다 계산해서 디젤 발전기를 설계했다"며 "아직까지 디젤 발전기가 돌아간 적은 없으며, 오늘도 날씨가 흐리지만 디젤 발전기가 지금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머무는 동안 필요한 물은 바닷물을 역삼투 방식으로 처리하는 담수화 설비를 통해 공급한다.

왕돌초 기지 내 실험실
[촬영 박성제]

설비갑판 한쪽에는 바다 위 작은 실험실도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닷물을 끌어올려 수온과 염분, 형광, 생지화학 등 여러 변수를 관측하고 생물·화학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장에서 근무하던 연구원은 "해수에 섞인 이물질이나 큰 물질을 200마이크로미터(㎛) 메시로 걸러낸 뒤 보관하고, 이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해 산성화와 영양염 등 다양한 분석에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속에 있는 실제 플랑크톤은 현미경이 아닌 장비를 활용해 모니터에서 직접 확인할 수도 있다"며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해 플랑크톤이 어떤 종인지 분석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왕돌초 기지 내 관측제어실
[촬영 박성제]

계단을 따라 한 층을 더 올라가 주 갑판인 메인데크에 들어서자 연구원들의 생활공간과 관측제어실 등이 나타났다.

기지에 들어온 연구원들은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며 필요할 때 아래 갑판으로 내려가 관측 장비를 설치하거나 해수를 채취한다.

관측제어실은 기지 곳곳의 관측 장비를 한눈에 들여다보는 일종의 '두뇌' 역할을 한다.

각 장비의 작동 상태부터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해양·기상 자료까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 본부장은 "오늘 파도가 몇 미터인지,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등의 데이터도 나오고 있다"며 "CCTV로 기지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장비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도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왕돌초 기지 내 주방 및 회의실
[촬영 박성제]

겉모습만 보면 왕돌초 기지는 앞서 건설된 해양과학기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기지 안에는 이전보다 다양한 관측 장비가 들어서면서 바다를 들여다보는 '눈'이 한층 정교해졌다.

정 본부장은 "중요한 건 안에 있는 시스템들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관측 장비도 과거에는 해양물리 관측 장비를 중심으로 구성했는데 요즘에는 생지화학, 산성화 측정 장비 등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왕돌초 기지 내부 모습
[촬영 박성제]

◇ '국내산 참치'시대…변하는 동해를 기록하다

왕돌초 기지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바다 위 연구시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동해의 변화를 장기간 관측할 수 있는 전초기지이기 때문이다.

KIOST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축적되는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동해의 아열대화와 갯녹음 등 해양생태계 변화는 물론 어장 변동까지 추적할 계획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닷속을 들여다보기 위한 '눈'도 설치돼 있다.

기지 수중에는 카메라 2대가 달려 있어 주변에 어떤 물고기가 나타나는지 지속해서 관찰할 수 있다.

과거에는 촬영된 영상을 사람이 직접 확인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영상 속 어종을 판별하는 연구도 이뤄진다.

정 본부장은 "최근 기후변화로 동해안에서 참치가 잡히는 등 어종들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새로운 물고기가 포착되면 실시간으로 알림을 주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이 해역의 어종을 판별하기 위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 것은 아니다.

그는 "아직은 이 해역에 대한 물고기 정보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데이터가 더 많이 쌓이면 기존에 서식하던 어종과 새롭게 유입되는 어종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왕돌초 기지 내부 모습
[촬영 박성제]

왕돌초에는 다른 해양과학기지에는 없는 인공 구조물 'ARM'도 설치돼 있다.

일종의 어초 역할을 하는 구조물에 서식하는 생물을 주기적으로 채집함으로써 주변 생태계의 변화를 관찰한다.

정 본부장은 "어초에 붙는 생물들을 주기적으로 샘플링해서 생물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정량적으로 생물상의 양이 어떻게 바뀌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돌초 기지
[촬영 박성제]

수온과 염분부터 물고기와 생물상까지 관측 대상은 제각각이지만 목적은 하나로 모인다.

시시각각 변하는 동해의 모습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장기간 축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쌓인 자료는 해양생태계의 위험을 탐지하고 어장 변동을 예측하는 것은 물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에도 활용된다.

아울러 후포·죽변 지역 어민들이 실제 조업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도 제공될 예정이다.

정 본부장은 해양과학기지에서 쌓이는 데이터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변화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지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알게 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재미있다"며 "오늘 날씨가 왜 이런지, 내일 날씨가 어떨지 이런 것들을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터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