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선에 선 김길리 "꿈꾼 것 같아…세계 1위 탈환하겠다"

넘어짐 트라우마 이겨낸 비결은 '100회 이상 갈아낸' 스케이트 날

작년 5월부터 준비한 계주 작전…"석희·민정 언니가 신경 많이 써"

"민정 언니가 도전한 단거리, 나도 도전…"다시 세계 정상에 서겠다"

세리머니 펼치는 김길리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길리가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뒤 메달을 목에 걸고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우승 당시 펼쳤던 세리머니를 다시 펼치고 있다. 2026.2.25. cycl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마치 꿈을 꾼 것 같아요."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 김길리(21·성남시청)는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지난 3주의 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날 오후 귀국한 그는 여독이 풀리지 않아 보였으나 올림픽 이야기가 나오자 금메달의 감격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가 다시 사준 '두 번째' 오륜기 금목걸이를 목에 걸고 인터뷰에 임한 김길리는 "목걸이 사연을 비롯해 이번 올림픽에선 소름 돋는 순간이 정말 많았다"고 했다.

김길리는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오륜기 금목걸이를 분실했고, 대회 직전 어머니가 똑같은 목걸이를 다시 선물했다.

그는 메달 레이스를 앞두고 "액땜했다고 생각하겠다"며 "금메달 2개를 딸 징조 같다"고 했다. 실제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김길리는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은 대회였다"며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하는 김길리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길리가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2.25. cycle@yna.co.kr

◇ '넘어짐'의 트라우마…이를 이겨낸 '장비 정비 기술'의 힘

사실 김길리는 올림픽을 트라우마 속에 임했다.

그는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가 넘어져 금메달을 놓쳤고, 이번 대회 첫 메달 레이스였던 혼성 2,000m 준결승에서도 미국의 커린 스토더드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자신의 실수로 동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자책은 컸다. 충돌과 넘어짐에 두려움도 생겼다.

그러나 김길리는 개인전과 여자 3,000m 계주에서 이를 극복하며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따냈다.

그 뒤에는 대표팀 장비를 책임진 변우옥 코치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올림픽이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는 유독 빙질이 무른 탓에 넘어지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특히 여자 1,500m 준결승에선 코트니 사로(캐나다), 산드라 펠제부르, 쉬자너 스휠팅(이상 네덜란드) 등 유력 메달 후보들이 주행 중 스스로 넘어져 탈락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충돌 외에 홀로 미끄러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변 코치는 시간대별로 빙질을 분석해 스케이트 날 두께를 세밀하게 조절했고, 특히 빙질이 더 무뎌지는 오후에는 100회 이상 날을 갈아 최적의 상태를 만들었다.

김길리는 "대회 초반 빙질이 좋지 않아서 힘들었다"며 "특히 혼성 2,000m 계주 이후엔 두려움이 컸는데, 다독여준 동료들과 장비를 잘 관리해준 변우옥 코치님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3개 메달 목에 건 김길리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길리가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딴 3개의 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2.25. cycle@yna.co.kr

◇ 네 번의 눈물…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계주'

감수성이 풍부한 김길리는 올림픽에서 네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충돌한 뒤 미안함에 울었고, 여자 1,000m 동메달을 딴 뒤엔 첫 올림픽 메달 획득에 감격해 두 번째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고 벅찬 마음에 펑펑 눈물을 흘렸고, 여자 1,500m 결승에서 우승한 뒤엔 함께 뛴 최민정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김길리는 '가장 뜨거웠던 순간'으로 여자 계주 우승을 꼽았다.

김길리에 따르면,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진천선수촌 합숙 훈련을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역할을 세분화했다.

스타트 능력이 좋은 최민정이 1번, 마지막 스퍼트 능력이 좋은 김길리가 최종 주자인 2번, 베테랑 이소연(스포츠토토)과 노도희(화성시청)가 3번, 밀어주는 능력이 좋은 심석희(서울시청)가 4번을 맡았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고의 충돌 의혹으로 소원했던 심석희와 최민정은 대표팀 훈련 시작부터 밀어주고 내달리는 훈련을 함께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서 대표팀 분위기를 조율했던 김길리는 "두 언니가 신경을 많이 썼다"며 "석희 언니에서 민정 언니로 넘어가는 작전이 이번 대회에서 큰 효과를 봤는데, 훈련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나와 깜짝 놀랐다"고 돌아봤다.

그는 "그동안 함께 노력했던 것들이 결과로 나왔던 순간"이라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하는 김길리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길리가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2.25. cycle@yna.co.kr

◇ 최민정과 여자 1,500m 마지막 레이스 "경쟁자 아닌 동반자 느낌…경기 직전까지 서로 응원"

올림픽 마지막 메달 레이스였던 여자 1,500m 결승도 잊지 못한다.

당시 김길리는 마지막 바퀴에서 인코스를 파고들어 1위로 달리던 최민정을 제치면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2관왕에 올랐다.

경기 직후 최민정은 올림픽 은퇴를 선언했고, 김길리는 최민정과 함께한 마지막 올림픽 레이스였다는 얘기를 듣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김길리는 "그날은 경쟁자라기보다 동반자라는 느낌이 강했다"며 "계속 함께 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올림픽 맞대결이었다는 것을 알고 많이 울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경기 직전 서로에게 '파이팅'이라고 응원했다"며 "언니는 마지막 레이스라는 것을 알고 뛰었을 텐데 나를 응원해줬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울컥했다"고 했다.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인코스를 노려 최민정에게 역전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언니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공간을 만들면서 탔다"며 "내가 금메달을 땄지만, 언니는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라고 했다.

이제 김길리는 최민정의 뒤를 이어 한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을 이끌어야 한다.

그는 "많이 부담되는 자리지만, 언니가 이룬 것을 본받아 그 길을 차근차근 따라가겠다"며 "그동안 장거리에만 집중했는데, 이젠 언니가 도전했던 단거리 종목도 열심히 훈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한국 대표팀은 단거리 종목이 약했는데, 스타트와 순간 스피드 능력을 끌어올려서 한국 선수들이 단거리에 약하다는 편견을 깨겠다"고 다짐했다.

'람보르길리' 김길리, 스포츠카 타고 집으로
(영종도=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 김길리가 2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 뒤 스포츠카를 타고 공항을 출발하고 있다. 김길리는 이번 대회에서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폭발적인 가속력을 뽐내며 스포츠카 이름에 빗대어 '람보르길리'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2026.2.24 dwise@yna.co.kr

◇ 람보르길리의 도전은 계속된다…"세계랭킹 1위 탈환할 것"

꿈의 무대를 마친 김길리는 큰 환영을 받으며 금의환향했다.

그는 24일 귀국길에서 람보르기니 코리아의 의전 서비스를 받으며 귀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무서운 질주 능력을 펼쳐 '람보르길리'라는 별명을 가진 김길리는 "마치 연예인이 된 느낌이었다"며 "붕 뜬 느낌을 가라앉히고 이제 훈련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김길리는 짧은 휴식을 마친 뒤 다음 달에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준비에 열중할 계획이다.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딴 대표팀 내 최우수선수 1명은 차기 시즌 국가대표로 자동 선발된다.

그는 "우선 금메달을 따서 국내 선발전을 치르지 않고 차기 시즌 국가대표 자격을 얻는 것이 1차 목표"라며 "이후엔 세계랭킹 1위를 탈환하고 싶다"고 했다.

김길리는 2023-2024 ISU 쇼트트랙 월드컵(현 월드투어)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해 세계랭킹 1위와 특별 제작된 헬멧, 크리스털 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나 이듬해 1위에서 내려왔다.

첫 올림픽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김길리는 세계 최정상을 향해 다시 뛴다.

그는 훈련에 열중하면서도 그동안 참았던 취미 활동과 휴학했던 학업도 이어갈 참이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열혈 팬인 김길리는 "지난해 올림픽 준비로 야구 관람을 잘 못했는데 KIA 성적(8위)이 좋지 않아서 속상했다"며 "새 시즌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번 대회 금메달을 딴 뒤 (KIA의 간판타자인) 김도영 선수에게 소셜미디어로 축하 메시지를 받았는데, 김도영 선수도 다치지 말고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KBO리그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또한 "배우 우도환 씨와 보이그룹 코르티스를 좋아한다"며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활동도 보면서 에너지를 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목표는 분명하다"며 "다시 세계 정상에 서겠다"고 힘줘 말했다.

꿈같은 올림픽을 뒤로한 김길리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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