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 Newswire
노보네시스, 서울푸드 2026에서 한국 식품업체를 위한 바이오솔루션 선보여

연합뉴스
개장 두 달 만에 한국 야구의 심장이 된 잠실…반일 감정 속 치른 세계선수권 한일전
"온몸을 감싸던 전율…그날 이후 기사님들이 택시비도 안 받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1982년 9월 14일 밤.
공식 개장한 지 두 달 남짓 된 '신축구장' 서울 잠실야구장은 일찌감치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찼다.
내·외야 관중석은 물론 통로까지 사람들로 빼곡했다.
관중들이 뿜어내는 함성에는 독기와 결기가 서려 있었다.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풀리그 마지막 경기인 한일전을 앞둔 한국 야구대표팀을 향해선 반드시 승리하라는 광란의 외침이 쏟아졌고, 일본 대표팀을 향해선 거센 야유가 이어졌다.
당시 대표팀 주전 내야수였던 한대화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그때 한일 관계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며 "관중들의 응원 열기가 엄청났다. 선수들 모두 큰 부담을 안고 경기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1982년은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일본 문부성이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개막을 앞두고 고교 역사 교과서의 한국과 관련한 내용을 왜곡해 수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가 출범해 국민 성금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선동열, 한대화, 김재박 등 아마추어 최정예 선수들로 꾸려진 대표팀은 전쟁터에 나서는 심정으로 잠실벌에 들어섰다.
그러나 승리를 향한 의지와 달리 선수들의 몸 상태는 한계에 가까웠다.
대표팀은 대회 풀리그 8차전까지 7승 1패를 거둬 이날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구성원 모두가 지친 상태였다.
대표팀은 전날 호주와 8차전 경기가 시간제한 규정에 따라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면서 한일전이 열린 14일 오전 연장 10회부터 15회까지 남은 경기를 치러야 했다.
선수단은 혈투 끝에 호주에 7-6으로 승리했으나 극심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서울=연합뉴스) 1983년 잠실 야구장에서 관중이 몰린 가운데 열린 첫 야간 경기 장면. << 연합뉴스 DB >>
지친 한국 타선은 일본 마운드를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선발 선동열이 일본 타선을 2실점으로 막아냈지만, 한국 타선은 침묵했고 대표팀은 8회초까지 0-2로 끌려갔다.
패색이 짙어지던 그때, 기적이 시작됐다.
8회말 심재원의 중전 안타와 대타 김정수의 중월 적시 2루타로 1-2로 추격했고, 조성옥의 희생 번트로 1사 3루 동점 기회를 만들었다.
이후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안타로 2-2 동점을 만들었고, 이해창의 중전 안타와 장효조의 내야 땅볼로 2사 1, 2루로 이어갔다.
그리고 5번 타자 한대화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일본의 세 번째 투수 세키네 히로후미가 던진 몸쪽 높은 코스의 공을 끌어당겨 좌월 3점 역전 홈런을 폭발했다.
순식간에 경기는 뒤집혔고, 한국은 극적으로 일본을 5-2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는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은 '8회의 기적'의 출발점이자, 역대 한국 야구사의 손꼽히는 명승부로 남았다.
한대화 전 감독은 이 한 방으로 전국구 스타가 됐다.
한 전 감독은 "그때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공을 쳤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던 느낌, 왼쪽 폴을 향해 날아가던 타구의 궤적과 관중들의 함성, 온몸을 감싸던 전율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 경기 이후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날 알아보더라"며 "택시 기사님들이 택시비도 받지 않으셨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던 그런 경기였다"고 웃었다.
한 전 감독은 이듬해 프로야구 OB 베어스에 입단한 뒤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15시즌 동안 활약을 이어갔다.
그의 이름 옆엔 항상 '해결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많은 인기를 누리며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엔 삼성 라이온즈 코치, 한화 이글스 감독, KIA 타이거즈 코치, 한국야구위원회 경기운영위원 등 왕성한 활동을 했고 지금은 대전광역시체육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한 방'을 터뜨렸던 한대화 전 감독은 2026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잠실야구장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린다.
한대화 전 감독은 "잠실야구장은 내 인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장소"라며 "잠실에서 인생 최고의 홈런을 쳤고, 프로에 입단해서도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 야구팬이 잠실야구장에 관한 많은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많은 추억이 담긴 잠실야구장이 철거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또한 "동대문 야구장을 철거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나"라며 "쉽지 않겠지만, 지금의 잠실야구장을 존치하고 역사의 한 자락으로 남겨두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95 프로야구 롯데와 LG의 플레이오프 2차전. 4회말 2사 주자 3루에서 좌월 투런홈런을 친 LG 한대화가 3루를 돌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대화 전 감독의 말처럼 잠실야구장은 수많은 사람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잠실구장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야구를 본 장소이고, 누군가에겐 첫사랑과 처음 손을 잡고 함께 응원가를 부르던 곳이었다.
또 누군가에겐 지금은 커버린, 어린 자녀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던 장소였다.
잠실야구장은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2개 팀이 홈구장으로 활용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프로스포츠 경기가 열린 곳이다.
잠실야구장에선 5천 경기 이상이 펼쳐졌고, 수천만 명의 관중이 환희와 감동, 좌절과 눈물을 함께 했다.
이제 올 시즌을 끝으로 한국 야구의 심장과도 같은 잠실야구장은 44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철거된다.
한대화의 1982년 한일전 홈런을 비롯해 1994년 LG 김선진의 한국시리즈(KS) 1차전 연장 11회말 끝내기 홈런, 2000년 플레이오프 4∼6차전에서 날린 두산 심정수의 3경기 연속 결승 홈런, 2009년 KIA 타이거즈 나지완의 KS 7차전 9회말 시리즈 끝내기 홈런 등 잠실구장을 수놓았던 수많은 포물선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오래된 영상 속으로만 남게 됐다.
cycle@yna.co.kr

관심 없음
{카테고리}에 관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