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몇천 원이면 사는데… 중세 유럽에선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국민 가루'
국물 요리에 톡톡, 볶음 요리에 살짝 뿌려 마무리하는 후추는 거의 모든 집에서 볼 수 있는 식재료다. 고기 잡내를 없애는 기본양념으로 쓰이고, 라면에 넣는 사람도 있을 만큼 활용 범위도 넓다.이렇게 친숙한 후추지만, 지금처럼 편하게 사용하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고, 왕족이나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여겨졌다.금보다 비쌌던 국민 향신료 \'후추\'후추의 원산지는 인도 남서부 해안 지역이다. 이곳에서 재배된 후추는 고대부터 귀중한 교역품으로 취급됐다. 이집트와 페르시아, 중국을 거쳐

국물 요리에 톡톡, 볶음 요리에 살짝 뿌려 마무리하는 후추는 거의 모든 집에서 볼 수 있는 식재료다. 고기 잡내를 없애는 기본양념으로 쓰이고, 라면에 넣는 사람도 있을 만큼 활용 범위도 넓다.

이렇게 친숙한 후추지만, 지금처럼 편하게 사용하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고, 왕족이나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여겨졌다.

금보다 비쌌던 국민 향신료 '후추'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 남서부 해안 지역이다. 이곳에서 재배된 후추는 고대부터 귀중한 교역품으로 취급됐다. 이집트와 페르시아,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그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로마 시대에는 후추를 수입하기 위해 큰 비용을 들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세금이나 임금 대신 후추를 사용하기도 했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후추는 부의 기준이 됐다. 식탁에 올라간 양만으로도 집안의 재력을 짐작할 수 있었고, 결혼 혼수품에도 포함될 만큼 귀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많은 후추를 갖고 있느냐'가 곧 신분을 드러내는 기준이 됐다.

어떤 시기에는 후추 한 자루 값이 집 한 채와 맞먹기도 했다. ‘검은 금’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시기의 흔적이다.

후추, 항로 개척의 이유가 됐던 향신료

육로를 통한 무역이 어려워지자, 많은 나라가 후추를 확보하기 위해 바닷길을 열기 시작했다.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얻기 위해 시작된 대항해는 신대륙 발견과 해상 교역 확장으로 이어졌다.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 같은 인물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흐름과 맞물린다.

이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후추 무역을 경쟁적으로 장악했고, 상업적 가치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세계 무역의 중심에 후추가 자리하게 됐다. 일부 시기에는 아랍 상인이 독점적으로 거래하면서 가격은 더욱 뛰었다. 유럽의 평범한 노동자 입장에서는 몇 달 치 월급을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중국에서도 후추는 약재처럼 다뤄졌다. 황실이나 상류층이 주로 사용했고, 민간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수입해야 했고, 물류망이 복잡했던 탓에 가격도 높았다.

후추, 지금은 왜 흔해졌을까

후추의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한 건 재배 기술이 널리 퍼지고, 운송 인프라가 발전한 이후다. 더 이상 목숨을 걸고 항해하지 않아도 되고, 대량 생산도 가능해지면서 시장에 풀리는 양이 급증했다.

지금은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검은 후추는 덜 익은 열매를 말린 형태로, 매운맛이 강하고 향이 진하다. 흰 후추는 껍질을 제거한 형태로,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낸다. 녹색 후추나 절임 형태로 가공된 제품도 있다.

후추의 주성분인 피페린은 후추 특유의 매운맛을 낸다. 조미료로 쓰이기 전에는 약효를 기대하며 사용한 기록도 많다. 감기, 관절 통증, 위장 불편 등을 완화하는 데 활용됐고,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방부제로도 사용됐다.

후추는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향신료다. 서양에는 지금도 “후추만큼 비싸다”라는 말이 남아 있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 무역을 흔들었던 역사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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