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와이어
뮤즈바이, 출시 7개월 만에 월매출 15배 성장… 건기식 등 뷰티 외 캠페인 비중 54%

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한국에서 유럽축구 붐이 일기 직전, 스티븐 제라드와 마이클 오언이 리버풀 주축으로 올라서려 하던 시기에 한 축을 담당했던 공격자원 파트리크 베르게르를 돌아본다. 내한을 앞두고 있는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의 전설적 선수들이 왜 우리의 추억 속에 강렬하게 박혀 있는지 한 명씩 돌아보는 시리즈다.
▲ 추억 속 그의 모습: 1990년대 말 프리미어리그 최강 왼발
아직 ‘킥 앤드 러시’ 풍토가 남아있던 잉글랜드 무대에서 베르게르의 시원한 왼발은 가치가 높았다. 전방으로 확 파고들어 떨어지는 공을 따낸 뒤, 그대로 두어 명 제치고 왼발 강슛을 꽂아버렸다. ‘역발 윙어’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이므로 주로 ‘정발’ 자리인 왼쪽에서 뛰었는데 필요시 중앙으로 파고들며 득점 기회를 노리기도 했다.
체코의 유로 1996 준우승으로 여러 선수가 빅 클럽의 러브콜을 받았는데 베르게르는 리버풀로 갔고, 카렐 포보르스키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다. 2003년 리버풀을 떠나 포츠머스, 애스턴빌라, 스토크시티, 모국의 친정팀 스파르타프라하를 거쳐 2010년 은퇴했다. 길지 않은 선수 인생 중 7년이나 머물면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팀이 리버풀이었다.
▲ 리버풀 활약: 잦은 부상만 아니었다면 더 위대해질 수 있었던 측면자원
베르게르는 리버풀 첫 4시즌 중 3시즌 동안 9골(컵대회 포함)을 기록했다. 요즘 윙어들처럼 공격에 전념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공수를 오가야 했던 당시 측면 미드필더들의 임무를 생각해 보면 훌륭한 득점력이었다.
유일한 적은 부상이었다. 2000-2001시즌 리버풀이 3개 컵대회에서 우승하며 일명 ‘미니 트레블’을 달성한 시즌이 가장 영광스러웠지만 베르게르는 시즌 초 리즈유나이티드전에서 무릎 부상을 입어 많은 경기를 함께 하지 못했다. 시즌 막판에 돌아와 UEFA컵(현 유로파리그)과 FA컵 결승전은 모두 출장했다. FA컵 결승에서 아스널을 꺾을 때 마이클 오언에게 어시스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시즌 이후 부상이 점점 잦아지면서 리버풀 경력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 이번 만남이 특별한 이유: ‘오대영’ 중 한 명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2001년 체코 원정 평가전에서 5골을 신나게 내주고 대패했다. 당시 체코는 주전 멤버를 총출동시켰는데 선제골을 넣은 파벨 네드베트를 비롯해 토마시 로시츠키, 밀란 바로시, 얀 콜러, 그리고 당연히 베르게르도 선발로 나왔다. 베르게르는 풀타임을 소화했고, 후반전에는 마렉 얀쿨로프스키 등도 투입됐다. 이때 예방주사를 맞은 한국은 이듬해 한일 월드컵에서 유럽팀들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한일 월드컵 준비 과정을 지켜보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하게 기억되는 선수 중 하나다.
베르게르가 출전하는 레전드 매치 ‘2026 챔피언스 임팩트 인 서울’을 통해 6월 6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리버풀 레전드팀 ‘더 레즈’와 바르셀로나 레전드가 대결한다. 예매는 NOL 티켓에서 진행 중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심 없음
{카테고리}에 관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