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처음이라] ⑥ 라먼스, 골키퍼 장갑에 ‘코비 브라이언트’를 새긴 ‘평범한 사람’
센느 라먼스(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게티이미지코리아
센느 라먼스(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월드컵은 낯선 선수 10명을 소개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튀르키예의 하칸 찰하노을루,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로 올라선지 오래 된 노르웨이의 엘링 홀란, 지난 1년간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여준 코트디부아르의 얀 디오망데 등 프로 무대에서 잘 나가는 선수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문장, 센느 라먼스의 골키퍼 장갑에는 각각 8, 24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두 숫자 모두 NBA(전미농구협회)의 전설적인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등번호다. 쉬는 날에 축구가 아닌 농구를 볼 정도로 NBA의 열렬한 팬인 라먼스는 자신이 존경하는 코비의 번호를 자신이 항상 보는 골키퍼 장갑에 새겨넣었다.

라먼스는 평소 차분하고 유순한 성격인데, 골키퍼를 하기 위해서는 크게 소리쳐 팀을 이끌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그에게 경기장 안에서 소환할 ‘또 다른 자아(Alter Ego)’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라먼스는 자신의 우상이자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코비를 따라가고자 그의 등번호를 장갑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맨유 골키퍼 스카우트인 토니 코튼은 2019년 벨기에 U17 대표팀에서 뛰던 라먼스의 재능을 단숨에 알아봤다. 다만 섣부른 영입은 독이 될 거라 생각해 라먼스가 벨기에에서 성장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 시즌 시작 전 라먼스를 영입했다. 당시 맨유 감독이었던 후벵 아모림 감독은 애스턴빌라의 베테랑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를 원했지만, 코튼은 라먼스 이적을 밀어붙여 이적시장 마감일에 계약을 성사시켰다.

라먼스는 안드레 오나나가 떠난 빈자리를 확실하게 메웠다. 오나나보다 후방 빌드업 능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오나나보다 안정감은 뛰어났다. 193cm 큰 키와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을 바탕으로 맨유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한동안 맨유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세트피스 수비에서도 큰 키와 긴 팔을 활용해 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실제로 라먼스는 기대실점 대비 6.39골을 더 선방해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에서 가장 뛰어난 골키퍼였음이 증명됐다.

라먼스는 맨유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A매치 데뷔까지 이뤘다. 물론 그는 벨기에 연령별 대표팀을 차례차례 밟아온 유망주이며, 2025년 3월부터는 A대표팀에도 비교적 꾸준히 소집됐다. 그러나 소집 후에도 한동안 티보 쿠르투아와 마츠 셀스에 밀려 출전하지는 못했는데, 라먼스는 11월 A매치에서 쿠르투아의 부상을 틈타 리히텐슈타인전 선발로 나서 7-0 무실점 대승을 이끌었다. 올해 3월에도 미국전 5-2 승리를 함께했고,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벨기에 최종 26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현실적으로 센느 라먼스가 월드컵 출장까지 이뤄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의 우상인 쿠르투아가 부상을 딛고 경기장에 돌아왔고, 벨기에 세컨 골키퍼는 아직은 셀스다. 그래도 벨기에가 조별리그 첫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한다면, 마지막 경기는 라먼스가 골키퍼 장갑을 낄지도 모른다.

센느 라먼스(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게티이미지코리아
센느 라먼스(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게티이미지코리아
센느 라먼스(벨기에). 게티이미지코리아
센느 라먼스(벨기에). 게티이미지코리아

라먼스가 월드컵 출전을 이뤄낸다면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지난 2월 맨유를 대표해 ‘세계 책의 날’ 행사에 참석한 라먼스는 “나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노력한다”라며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이 나와 같은 삶에 도달하는 게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라며 자신이 훌륭한 축구선수보다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길 원한다고 밝혔다.

라먼스는 빅클럽 맨유에 합류한 이후에도 겸손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아 맨유 관계자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경기장 밖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경기장 안에서 ‘코비의 정신’을 체현한다면 어느 날 월드컵에서 벨기에를 이끄는 라먼스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김희준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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