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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김진혁 기자= 올 시즌 K리그에는 체코 리그 경험자들이 서넛 있다. 그러나 부천FC1995 공격수 김승빈만큼 어린 나이부터 오랜 시간 체코 생활을 한 선수는 없었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정보는 없는, 아마도 파벨 네드베드가 가장 유명하게 느껴지는 체코, 그 곳에서 김승빈의 생활은 어땠을까.
2000년생 김승빈은 2019년 서울특별시 언남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체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수도팀 구단인 두클라프라하에 입단한 김승빈은 유스팀, B팀, A팀을 단계별로 거치며 체코 시스템을 몸에 체득했고 2023년에는 1부 구단 FC슬로바츠코 유니폼을 입으며 체코 최정상 리그도 경험했다. 7년 동안 1군 136경기 16골 12도움을 기록한 김승빈은 올겨울 군문제와 더불어 여러 사정으로 체코 무대를 떠났고 오랫동안 러브콜을 보낸 이영민 감독의 부천으로 향했다.
기대를 모은 김승빈은 올 시즌 전북현대와 역사적인 첫 K리그1 개막전부터 선발 출전했다. 그러나 킥오프 15분 만에 내측 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고 예상치도 못한 불운으로 결국 전반기 내내 재활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난 4일 ‘풋볼리스트’와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한 김승빈은 “운이 너무 없었다. 혼자 다쳤다. 심정은... K리그 데뷔가 너무 들떴었던 것 같다. 한국 복귀가 너무 들떠서 다친 듯하다. 팀에서는 7월 말 정도라고 보고 있다. 그래도 전 7월 첫 경기도 뛰라면 뛸 수 있을 것 같다. 풀타임은 아니더라도 교체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라며 복귀 의지를 불태웠다.
20대 중후반에 늦깎이 K리그 데뷔한 김승빈은 성장의 척도를 결정할 20대 초반을 전부 체코에서 보냈다. 고교 졸업 후 체코를 택한 배경에 대해 묻자, “입단할 때는 1부였는데 제가 사인하니 2부로 강등됐다(웃음). 에이전트를 통해서 이적했고 제가 ‘꼭 체코로 가고 싶다’라고 한 건 아니었다. 체코도 유럽이니까 잘 풀리면 다른 나라도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단계를 거치려고 했는데 결국 잘 안됐다. 체코라는 나라는 전혀 몰랐다. 수도가 프라하인지도... 영어를 쓰는 줄 알았는데 체코어가 따로 있더라. 생소했다”라고 회상했다.
김승빈은 본인을 내향인이라고 소개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친화력이 분명 숨겨져 있는 듯했다. “그래도 적응은 잘했다. 제가 한국인이고 아시아인이니까 동료들이 관심이 정말 많았다. 저랑 잘 놀아주고 잘해주고 그러니 금방 스며들었다. 한국 욕을 많이 물어봤다. 훈련할 때도 체코어 대신 한국어 욕을 하기도 했다. 한국 식당도 굉장히 많았다. 한국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코리아타운까진 아니지만, 지역 교회로 연결돼 있다. 프라하도 그렇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라며 해외 생활 걱정은 기우였다고 직접 설명했다.
체코어는 못하지만, 영어는 자신 있어 했다. 어린 나이부터 일찌감치 해외 진출하는 타 유명주들처럼 구단에서 마련한 영어 수업에 성실히 임했다고 한다. 거기다 짧게 만난 체코인 여자친구도 김승빈의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며 직접 밝혔다. 참고로 체코어 실력은 한국어를 하는 몬타뇨 정도라고 한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였다.
“언어 장벽은 있었는데 축구할 때는 못 느꼈다. 공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접었다(웃음). 국어도 못하는 데 영어는 하겠나. 그래도 생존용으로 영어를 사용하다 보니 금방 나아졌다. 1년 정도 걸렸다. 팀에서 영어 수업, 과외도 해줘서 천천히 늘었다. 주에 두 번씩 화상 영어 수업을 들었다. 가끔 학원도 다녀왔다. 체코어는 진작 포기했다. 영어도 어려운데 체코어를 영어로 배우니까 더 어려웠다. 그래서 영어만 배우겠다고 합의를 봤다.”
“체코 생활 초반에 체코인 여자친구도 한 명 만나긴 했다. 그 친구 덕분에 영어도 많이 늘었다. 체코 문화도 많이 알게 됐고 같이 놀러 다니다 보니 별로 외롭진 않았다. 영어를 빠르게 배우기 위해선 국제 연애가 맞는 것 같다. 빨리 느는 건 확실하다.”
한국에서 체코는 일반적으로 이름만 들어본 나라라고 느끼는 경우가 대다수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 한국인이 많이 거주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다. 그러나 체코 축구에서 한국인 및 아시아인들은 확실히 이방인이었다. “리그 자체에 아시아 선수가 거의 없었다. 일본인 선수 한 명? 정도만 있었다. 같이 입단한 한국인 선수가 돌아간 뒤로는 혼자 지냈다. 휴대폰만 붙잡고 친구들과 영상 통화하거나 게임만 했다. 원래 집돌이라서 밖에는 많이 안 나왔다.”
스무 살의 패기로 시작한 체코 생활. 예상외로 문화, 음식 모두 잘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일한 스트레스는 축구였다. “체코 문화는 확실히 프리하다. 오히려 편했던 것도 있었다. 힘들었던 건 축구가 잘 안 풀렸던 것밖에 없었다. 일상생활은 다 괜찮았는데 축구에서만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타일을 떠나서 한 팀에 오래 있으면서 이적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팀을 옮겨도 체코를 벗어나지 못했고 경기도 많이 뛰지 못하던 시기가 겹치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1부리그는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믿었었다. 연습경기에서 1부 팀들과 붙으면서 수준을 볼 수 있었다. 뛸 만하겠다고 느꼈다. 적어도 1부리그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슬라비아프라하, 스파르타프라하, 빅토리아플젠 같은 최상위 팀으로 이적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다. 상대해 보면 확실히 다른 게 느껴졌다. 벽이 높아 보였는데 계속 적응하면서 ‘해볼만한데?’하는 찰나에 여러 문제가 겹치며 부천으로 이적했다.”
김승빈에게 체코는 아쉬우면서도 감사한 추억으로 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몇 가지 물었는데 먼저 나온 대답은 '체코 축구의 열기'였다. 체코는 유럽 최상위 리그에 비해 분명히 변방 입지다. 그러나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축구에 대한 열정 자체는 진심이다. 실제로 체코 현지에서는 국민 스포츠로 아이스하키와 축구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김승빈은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더비에서 멀티골을 넣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슬로바츠코 소속 때 더비에서 멀티골을 넣은 적 있다. 슬로바츠코와 FC즐린의 연고지는 마치 우리나라 인천과 부천처럼 붙어 있다. 2022-2023시즌 더비 때 제가 멀티골을 넣고 이긴 적 있다. 분위기는 정말 엄청났다. 관중들도 꽉 차고 일단 팬들끼리도 엄청 싸우고 험했다. 경기장에서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팬들끼리 욕하고 경기장 바깥으로 나오면 거기서 또 싸우고 있다. 관중석에서 뭐를 던지기도 한다.”
“한 번은 시즌 마지막 경기였는데 스파르타가 저희 팀을 이기면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때 상대가 이기고 나서 스파르타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한 뒤 세레머니를 했다. 저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들어와 막 부딪히고 난리였다. 그 속에서 라커룸에 들어갔던 게 기억난다. 관중들이 뛰어들어 오길래 뭔가 했는데, 우승했으니까 이해할 만했다. 저희 구단 측에서도 그냥 냅두라고 했다.”
해외 생활을 하면 누구나 한 번쯤을 겪은 인종 차별에 대한 에피소드도 꺼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름 모를 일반인이 아닌 팀의 베테랑에서 당했다고 한다.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었지만, 무지한 대부분이 그 의미도 모르고 친근함의 표시로 인종 차별 결례를 범하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다.
“인종 차별? 당한 적 많다. 눈을 찢거나 ‘칭챙총’ 이런 말도 엄청 많이 한다. 팀에서도 친한 선수들이 많이 했었다. 저희 팀에 밀란 페트르젤라라고 나이 많은 선수가 한 명 있었다. 그 선수가 골을 넣고 눈을 찢는 세레머니를 저한테 했다. 동료들은 잘못된 행동이란 걸 전부 몰랐고 제가 경기 끝나고 ‘안 좋은 의미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냥 장난이라며 넘겼다. 워낙 친한 선수긴 했다. 맞형인데 철딱서니가 없는 선수였다(웃음). 예전에 독일 아우스크부르크에서 구자철 선수와 같이 뛴 적도 있는 선수다.”
체코 시절 쌓은 의외의 친분도 과시했다. 김승빈은 토트넘홋스퍼 소속 골키퍼 안토닌 킨스키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밝혔다. 킨스키는 두클라프라하 유스 출신이고 김승빈과 같은 시기에 소속돼 있었다. 아직도 연락하냐는 물음에는 “지금은 너무 유명해졌어요”라며 웃었다.
“토트넘홋스퍼에 있는 안토닌 킨스키랑 두클라프라하에 같이 있었다. 지금은 연락을 안 하는데 체코에 있을 때는 정말 친했다. 토트넘에서는 좀 못하고 있긴 한데... 두클라 때는 되게 잘했다. 이 친구가 선방 훈련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훈련 끝나면 맨날 공격수들을 찾았다. 매번 저한테 ‘슈팅 좀 때려줘’라고 부탁했다. 저도 슈팅 훈련하고 킨스키도 선방 훈련을 하면서 친해졌다. 항상 같이 남아서 개인 운동도 막 하고 그랬다.”
체코 추억 정리를 마무리한 김승빈은 본격적으로 국내 이적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알고 보니 이영민 감독의 러브콜이 큰 역할을 했다. 이 감독은 2024년 여름부터 체코에서 뛰는 김승빈에게 깊은 관심을 보냈다. 김승빈은 이 감독의 인품과 역량에 감명했고 한국 복귀 길이 열렸을 때 곧장 부천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영민 감독님계서 정말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해주셨다. 직접 체코로 오신 건 아니다. 에이전트를 통해서 2024년 여름부터 부천으로 오라고 전하셨다. 이적료 등 현실적인 문제가 묶여 있어서 팀에서 거부해 이적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기회가 다시 생겨서 올 수 있었다. 감독님의 관심이 제일 컸다. 제 에이전트도 감독님 정말 좋은 분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축구 스타일도 잘 맞아 보였다.”
“감독님 첫 인상은 되게 무서웠다. 살짝 카리스마가 있으시지 않나. 처음 뵀는데 손을 꽉 잡으시면서 ‘왜 이제 왔냐’고 하셨다. 저도 빨리 뵙고 싶었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한다. 입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전술 등 세세하게 항상 설명해 주신다. ‘그냥 자유롭게 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 눈치 보면서 축구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고 하셨다. 편한 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하라는 말이 제일 좋았다.”
마지막으로 김승빈은 어린 나이부터 해외 도전을 꿈꾸는 축구 유망주들에게 선배로서 조언도 남겼다. “체코 시절을 돌아보면 후회도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 잘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다. 그래도 프로 첫 무대였다. 축구를 제대로 시작한 느낌이 드는 나라다. 혹시라도 일찍 해외에 나가서 도전할 거라면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걸 다해보고 오면 좋겠다고 전해주고 싶다. 그 시기를 꼭 경험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승빈 커리어]
- 언남고 졸업
- 두클라프라하 유스(2018~2019): 18경기 5골
- 두클라프라하 B(2019~2020): 24경기 4골 1도움
- 두클라프라하(2020~2022): 63경기 10골 9도움
- 슬로바츠코(2023~2025): 73경기 6골 3도움
- 부천FC1995(2026~): 1경기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및 본인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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