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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과달라하라(멕시코)] 김희준 기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팬 페스타가 열리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리베라시온 광장 근처에는 1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프란세스 호텔’가 있다. 그곳 로비에는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름인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동판이 있다. 안창호 선생은 1918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이곳에 머문 뒤 미국으로 갔다.
안창호 선생이 이곳에 머문 사연은 기구하다. 1905년 1,033명 한인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멕시코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으로 끌려가 노동자가 아닌 노예 취급을 받았다. 그들의 실상은 곧 대한제국에 전해졌지만 1905년 11월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긴 힘없는 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909년 농장과 계약이 종료된 한인들 대부분은 멕시코에 남았으나 그들을 아우를 구심점은 마땅치 않았다.
1917년 10월 당시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미국에 있던 안창호 선생은 멕시코 교민의 초청으로 멕시코에 들어왔다. 멕시코에서는 한인들을 결집시키고, 국권이 피탈된 한국의 독립운동에 함께하도록 그들을 독려했다. 안창호 선생은 원래 1918년 6월에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멕시코시티 미국총영사관이 대한제국 여권이 아닌 일본 여권을 요구하며 입국을 불허했다. 안창호 선생은 일본 여권 발급을 거부하고 과달라하라에 두 달간 머물렀고, 대한제국 여권으로 멕시코 북부 노갈레스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과달라하라에서 있던 숙소가 바로 프란세스 호텔이다.
안창호 선생은 한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8년 눈을 감았지만, 선생의 사후 한국은 천지개벽했다. 1945년 독립한 뒤 남북이 갈라지는 비극을 겪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눈부신 성장을 이어간 끝에 선진국이 됐다. 문화적으로도 파급력이 커졌고, BTS(방탄소년단)를 필두로 한 케이팝(K-POP)과 한국 드라마 등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문화 강국으로 거듭났다.
한국의 세계적 인기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FIFA 팬 페스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이들이 친근감을 표시하며 사진을 요청한다. 한국 유니폼이라도 입고 있으면 멕시코 팬들이 몰려와 헹가래를 친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멕시코의 극적인 16강을 만든 한국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지난 멕시코전에서 한국이 패배한 뒤로는 그들이 짓궂은 장난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그게 한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에는 변함없다.
한국은 독립국이 된 후 12차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는 11회 연속으로 대회에 나서고 있다. 현재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됐고 바이에른뮌헨의 김민재, 파리생제르맹의 이강인 등 유럽의 손꼽는 빅클럽에서 뛰는 선수들도 있다. 홍명보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비기기만 해도 한국 월드컵 역사 최초로 두 대회 연속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을 달성할 수 있다.
한국이 조별리그 1, 2차전을 치른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는 수시로 케이팝이 흘러나왔다. 이번 월드컵 공식 주제가에는 한국어 가사가 삽입됐다. 한국이 가장 어두울 때 안창호 선생이 멕시코에도 뿌린 씨앗이 1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활짝 피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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