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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기면 장땡이고, 지면 망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로 월드컵에 임하는 순간 오히려 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 지도자들이 쓸데없는 ‘승부사 기질’에 빠져 사고할 때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의 상식적인 판단은 좋은 참고가 되어준다.
26일(한국시간) 현재 한국과 일본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성적은 격차가 크다. 일본은 F조에서 1승 2무 무패로 조별리그를 자력 통과했다. 한국은 A조에서 1승 2패로 3위에 머무른 뒤, 28일까지 진행되는 다른 조 조별리그를 지켜보며 각조 3위 중 8팀에 주어지는 ‘추가합격’ 티켓을 기원해야 한다. 물론 한국이 운 좋아 32강에 오르고 더 좋은 대진 덕분에 오히려 나은 성적을 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경기력 차원에서 일본이 한수 위인 건 분명하다.
홍명보 감독은 일본을 상당히 의식하면서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예선을 4-2-3-1 대형으로 통과한 뒤, 이후 본선을 준비하는 내내 3-4-2-1 대형을 시도했다. 일본이 2022 카타르 월드컵 도중 우발적으로 발견한 뒤 여전히 주력으로 활용하는 포메이션이다. 한국 코칭스태프는 본업이 윙어인 선수들을 윙백으로 조련하는 과정에서 참고할 영상으로 일본의 미토마 가오루를 추천하기도 했다.
▲ 모리야스, 경우의 수도 안 따지면서 ‘확률’ 입에 달고 다니는 이유
그런데 3경기에서 봤다시피 한국의 스리백은 딱히 성공적이었다고 하기 힘들다. 일본과는 완성도 차이가 컸고, 선수 특성이 그만큼 맞지 않았다.
모리야스 감독의 전술과 실적만 보면 아직 명장이라 하기 힘들다. 유럽팀 상대로 탁월한 승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는 자부심은 불어넣었지만, 정작 메이저 대회 성적은 현재까지 2022년 월드컵 16강, 2023년 아시안컵 8강이 고작이다. 경기 내용 측면에서 너무 수비적이라며 일본 선수들의 공개적인 반감을 사고, 일본 축구팬의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J1리그 산프레체히로시마에서 그에게 지도를 받아 본 황석호는 전술을 주로 짜는 건 그 아래 코치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한국이 그에게 배워야 할 걸 찾으려면 말버릇 하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확률”이다. 모리야스는 확률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지난 2022년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을 3-0으로 꺾은 뒤 “아시아 국가는 높은 확률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방송이 목표인 우승의 확률은 5%라고 측정하자 “우승 확률 5%와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 73%는 일본에게 몹시 긍정적인 수치”라며 결코 낮은 게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조별리그 스웨덴전 바로 전인 25일 팬존을 직접 방문해 서포터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도 “서포터 여러분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싸울 준비를 하는 게 승리 확률을 높인다고 생각해서 여기 왔다”고 말했다.
▲ 승부사적 사고 대신 합리적 사고
홍명보 감독뿐 아니라 국내 수많은 감독이, 또한 해외에서도 많은 감독이 ‘승부사의 딜레마’에 빠진다. 스포츠는 결과 외에는 남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평가는 승패를 통해 평가받기 마련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살다보니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가 자리 잡기 쉽다.
그러나 승부에는 운과 수많은 환경적 요인도 작용한다. 최선의 수를 다 뒀지만 그날따라 골운이 따르지 않아 질 수 있다. 반대로 악수만 뒀는데 요행히 승리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일 경우, 단순히 이겼다는 이유로 그 전략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다음 경기부터는 원인도 모른 채 패배하게 된다. 앞에서 든 예는 극단적인 경우고 보통은 이긴 경기에서 내용도 좋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그날 감독이 내린 수많은 판단 중 무엇이 승리 요인이었는지를 잘 파악해야만 한다. 대중은 결과를 보고 환호하거나 비난하지만, 팀 내부에서는 내용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
그래서 확률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100% 이길 정도로 잘 준비한 경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승률을 90%까지 올렸더라도 운 없게 나머지 10%에 걸려 질 수 있다. 이날의 경기는 고평가해도 된다. 또한 이날의 승률을 끌어올린 요인이 팀의 준비인지, 운 좋게 찾아온 외부 요인인지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이 체코전에서 보인 좋은 경기력에 대해 외부에서는 칭찬을 늘어놓더라도, 대표팀 내부에서는 ‘고지대 적응’이라는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고 미흡했던 점을 계속 탐구해야만 했다.
▲ 확률 극대화를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았던 한국의 여러 장면
그러나 ‘이기면 승자로, 지면 패배자로 기억될 뿐’이라는 인식에만 사로잡혀서 논리적인 생각을 멈추기 시작하면 감독의 선수 기용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나 다름없어진다. 심지어 도박만도 못하다. 카드 게임 등은 확률에 기반해 베팅하는 것인데, 확률조차 고려하지 않는 감독은 도박보다도 근거가 없는 게임을 하는 셈이다.
체코전 이후 한국의 공격진 운용 방향성을 보자. 첫 경기에서 손흥민 등을 빼고 오현규 등을 넣은 조치가 오현규의 역전골로 이어졌다. 그러자 두 번째 경기에서는 오현규 투입 시점을 더 앞당겼는데, 이번엔 손흥민과 오현규 둘 다 경기력이 뚝 떨어졌다. 이에 세 번째 경기에서는 아예 오현규를 선발로 쓰고 손흥민을 후반전에 교체 투입했다.
‘상대 체력이 떨어질 때 손흥민을 투입하려 했다’는 최소한의 논리적인 설명 비슷한 것이 있지만, 손흥민은 커리어를 통틀어 체력 우위가 필요한 조커였던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해서 잘 안됐으니까 저렇게 해 보는 것으로 승부를 건다’라는 비논리적인 양자택일에 가까웠다.
후반전 교체카드를 쓸 때도 비논리적인 양상은 반복됐다. 한국의 공격 강화 카드 중 그동안 가장 잘 통했던 것이 왼쪽 윙백 엄지성인데, 이날은 그 카드를 쓰지 않았다. 이태석을 선발 기용했다가 옌스 카스트로프를 교체 투입했기 때문에 엄지성까지 넣기는 힘들었지만 문제는 카스트로프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지 복안이 없는 상태에서 투입했다는 점이다. 문전 침투가 좋은 카스트로프 기용은 대표팀 공격의 추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조치와 짝을 이뤘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럴 거면 혼자 힘으로 단 몇 번이든 유의미한 측면 공격을 해 주는 엄지성이 나은 카드였다.
경기 막판까지 공격 숫자를 늘리지 않고 소극적인 교체 카드만 쓴 것도 ‘실점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감정적인 요인이 먼저였고, 논리적인 판단은 아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당한 실점은 모두 수비 숫자를 유지하고 있을 때 내줬다. 체코전과 멕시코전 모두 윙백 교체나 공격숫자 불리기 등 조금이나마 더 공격적인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 뒤로 주도권을 틀어쥐었기 때문에 실점 위기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런 사례와 한국의 특성을 두루 고려한다면 ‘막판에 공격 숫자를 늘려도 실점 확률은 치솟지 않고, 득점 확률은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유불리를 두루 고려해 늘리는 게 합리적이었다.
확률은 국지적인 판단을 할 때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규성의 머리를 노리기로 했다면 그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선수, 헤딩 경합 후 일어나는 혼전에서 루즈볼을 잘 따내고 밀어넣을 수 있는 선수도 아울러 투입해야 확률이 가장 높아진다. 한국 대표팀에서 후자에 해당하는 선수들은 이재성, 이동경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조규성과 함께 뛴 적이 없다.
▲ 확률을 고려하는 건 상식적인 판단의 일부
모리야스 감독은 그저 확률에 기반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 노력하고, 어쩌다 찾은 좋은 전술을 놓치지 않고 팀의 주전술로 잘 정착시킨 감독이다. 일본축구협회의 오랜 노력으로 좋은 선수단을 갖췄기 때문에 합리적인 감독 정도로도 충분히 안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의 경우 대한축구협회가 의도적으로 육성했다 보긴 힘들지만 아무튼 역대 최강의 개인기량을 지닌 선수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으며, 4년 전과 달리 이들이 부상 없이 임한다는 행운도 따랐다. 합리적인 판단 정도로 이들의 역량을 그럭저럭 살리면 좋았겠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요행히 32강에 가면 토너먼트에 올라온 강팀과 경기해야 한다. 그때도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다, 근거는 모르겠지만 책임은 내가 진다’는 식의 사고 과정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승률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회 이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토너먼트에서 좋은 경기력과 결과로 여론을 반전시키려면, 그 확률을 스스로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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