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반복된 악몽] ① 박수받으며 시작한 두 번째 월드컵, 침묵하며 끝나다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과달라하라(멕시코)] 김희준 기자= 지난 12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체코전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홍명보 감독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은 체코를 상대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미 고지대 적응을 마친 한국은 해발 1,571m 과달라하라에 막 도착한 체코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체코 뒷공간을 효과적으로 공략해 값진 승점 3점을 거머쥐었다.

당시 홍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월드컵 첫 경기였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긴장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준비한 것을 철저하게 잘해줬다. 오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선수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하나가 돼서 경기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우리 선수들이 두 가지를 충족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 첫 승에 대해 축하를 전하고 싶다”라며 선수들을 치하했다.

이 승리는 홍 감독에게도 값졌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했다. 러시아와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뒤 알제리에 2-4 참패를 당하고, 벨기에에 0-1로 지면서 21세기 한국의 유일한 월드컵 무승 감독으로 남았다. 그 수모를 체코전으로 씻어낸 셈이었다.

12년 전 오명을 완전히 벗으려면 이어진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 적어도 좋은 경기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실상은 반대로 갔다. 한국은 멕시코와 경기에서 0-1로 분패했다. 후반 5분 김승규와 이기혁의 포지션이 겹치며 김승규가 떨군 공을 루이스 로모가 우리 골문으로 밀어넣었다. 경기력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고, 실수 한 번으로 승부가 갈렸기에 이때까지는 홍 감독에 대한 여론이 반반으로 갈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경기에서 비기기만 하면 조 2위 32강 진출이라는 희망도 살아있었다.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하지만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펼쳐진 남아공전에는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남아공과 경기 전 선발진을 호명할 때 홍 감독의 이름이 나오자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나왔다. 분명 경기력에 대한 야유는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경기력에 대한 예언이 됐다. 한국은 남아공과 경기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남아공 선수들의 빠른 역습에 고전했고, 후반 18분 타펠로 마세코에게 선제결승골을 헌납하며 0-1로 패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거친 표현을 섞은 비판 질문이 쏟아졌다. 홍 감독은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오면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지만, 큰 무대 결과는 모든 게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도 “선수들은 어떤 식으로 어떻게 경기해야 할지 알았지만, 실점 이후에 조금씩 급해지는 모습이 보였다”라든지 “그동안 해왔던 경기에 비해서 오늘 중앙에서 실수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은근히 선수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홍명보호는 조 3위로 추락해 32강 진출을 남의 손에 맡긴 처지가 됐고, 서서히 말라갔다. 조 3위를 위해 뛰는 다른 팀들은 한국보다 투지가 넘쳤고, 강팀을 상대로도 주저함이 없었다. 남아공을 상대로 실점하고도 주저했던 홍명보호와 명확히 대비됐다. 결국 한국은 각 조 3위 12팀 중 10위가 돼 상위 8팀에 주어지는 32강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48개국 체제로 변경됐음에도 조별리그 탈락을 맛봤다.

홍명보 전 월드컵 대표팀 감독. 김희준 기자
홍명보 전 월드컵 대표팀 감독. 김희준 기자

홍 감독의 마지막 기자회견은 질문 없는 일방적인 입장 발표였다. 홍 감독은 “오늘 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라며 “나는 2년 동안 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선택이 대한민국 축구를 위한 선택인가. 대표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선수를 선택할 때도, 훈련을 준비하고 경기를 치를 때도 그 질문만큼은 놓지 않았다. 모든 판단이 늘 옳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다. 다만 내 모든 판단 기준은 언제나 한국축구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이란 자리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앞설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설명보다 책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국민 여러분께서 기대하셨던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고, 그 책임은 모두 감독인 내게 있다”라며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홍 감독은 입장 발표가 끝나고 잠시 취재진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한 다음 아무 미련이 없다는 듯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침묵 속에 모든 게 끝났다. 12년 전 악몽이 다른 형태로 반복됐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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