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반복된 악몽] ③ 한 달 반 해외 장기 합숙, 정신적으로 깨지기 쉬웠던 선수들

[풋볼리스트=과달라하라(멕시코)] 김희준 기자= 홍명보호는 지난 5월 18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사전 캠프로 출국했다. 해발 1,571m에 있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치를 조별리그 1, 2차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해발 1,460m에 있어 과달라하라 수준의 고지대에 적응하기 안성맞춤이었고, 고지대 적응을 위해서는 2주 반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기나긴 해외 장기 합숙이 시작됐다.

장기 합숙은 분명 조직력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이 대표적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멕시코가 5월 초부터 이례적인 장기 합숙을 통해 결과적으로 A조 1위, 3전 전승을 기록했다.

다만 이들이 자국에서 장기 합숙을 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국내 장기 합숙과 해외 장기 합숙은 천지 차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장기 합숙을 하는 건 그 자체로 힘이 덜 들뿐더러 휴식도 비교적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반면 낯선 환경에서는 장기 합숙만 아니라 휴식도 일정 정도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처음 보는 광경,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국내와 같은 수준의 휴식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은 선수들의 신체 관리만큼 정신 관리도 중요했다. 홍 감독은 지난해 7월 정신의학과 교수인 한덕현 박사를 대표팀 멘털 코치로 모셨다. 한 코치는 월드컵 기간에도 대표팀과 함께하며 선수들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정신을 관리하고, 스태프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몰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송준섭 수석 주치의(왼쪽), 한덕현 멘털 코치(이상 월드컵 대표팀). 김희준 기자
송준섭 수석 주치의(왼쪽), 한덕현 멘털 코치(이상 월드컵 대표팀). 김희준 기자

그 성과가 체코전 2-1 승리로 나온 듯했고, 한 코치는 이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자신 있게 홍명보호가 ‘되는 팀’이라고 말했다. 그는 “월드컵 떠나기 전에 많은 선수들과 스태프 앞에서 ‘이팀은 꼭 됩니다. 되는 팀입니다’라고 얘기했다”라며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영어로 ‘Stable(안정성)’이 가장 잘 맞는다”라며 선수들이 1차전 승리에 들뜨지 않고 경기를 준비하고 즐기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실상은 마냥 그렇지 않았다. 선수들의 정신적 피로는 알게 모르게 축적됐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쉴 만한 마땅한 장소가 많지 않았다. 고지대 적응이 주 목적이었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자체가 쉽지 않았을 테다.

과달라하라도 마찬가지였다. 과달라하라 숙소는 시설이 좋지 않았다. 호텔 자체 문제보다는 과달라하라 전체의 문제에 가까웠다. 석회수가 나오는 수도에서는 비가 오면 흙탕물도 섞여 나왔다. 과달라하라는 매일 같이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이 내리는 지역이었다. 대표팀 숙소 앞은 수시로 침수됐다. 휴게 공간도 기대 이하였다. 선수들은 내색하지 않았어도 숙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선수들과 동행한 가족과 만남도 제한됐다. 낯선 환경에서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크게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었을 테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일부 선수는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황인범(월드컵 대표팀). 게티이미지코리아
황인범(월드컵 대표팀). 게티이미지코리아

선수들의 정신적 피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게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경기다. 한국은 남아공이 예상외로 자신들의 전술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수는 누적됐고, 선수들은 무너졌다.

대부분은 선수들이 몬테레이의 무더위에 신체 능력이 저하됐을 거라 내다봤다. 그러나 활동량이나 고강도 스프린트가 지난 2경기와 거의 비슷했음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정신에 더 큰 타격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기 합숙은 어느 분야든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기 쉽다. 한 코치는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 선수들이 그 어떤 대회보다 긴 합숙을 하기에 선수들이 상당히 괴롭다. 솔트레이크 전지 훈련으로부터 한 달이 넘었기에 그 예민함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평정심으로 정평이 난 선수라도 사소한 일에 민감해지기 쉽고, 이미 예민해진 선수는 더욱 날카로워질 수 있는 게 장기 합숙이다.

그런 만큼 신체적 휴식에 준하는 정신적 휴식이 동원됐어야 하나 결과적으로 홍명보호는 선수단 정신 관리에 실패했다. 휴식의 양만큼 휴식의 질을 챙기지 못했다. 합숙이 길어지면서 생긴 선수들의 ‘지루함, 스트레스, 예민함’을 무겁지 않게 여긴 결과 홍 감독은 또다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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