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반복된 악몽] ⑤ 월드컵 전부터 위기였던 한국 축구, 이번이 회생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
홍명보 감독(왼쪽),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감독(왼쪽),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과달라하라(멕시코)] 김희준 기자=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줄곧 위기였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우를 범했다. 감독으로서 능력도, 책임감도 없었던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에선 실패로 여겨지는 아시안컵 4강을 전리품처럼 챙기고 떠났다.

클린스만 감독 여파로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에 공정성을 요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도 공정하게 감독을 선임하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2024년 7월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박주호 당시 전강위원의 폭로를 시작으로 축구협회를 질타하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다. 정 회장과 홍 감독, 이임생 당시 기술상임이사 등은 2024년 9월 국회 특정감사 청문회에 불려가 감독 선임 불공정은 물론 축구협회 내 여러 문제에 대해 호된 질책을 받았다.

한국 축구팬들도 국가대표 축구에 싸늘해졌다. 한동안 만원 관중이었던 A매치 홈 관중은 2024년 9월 팔레스타인전 매진 실패를 시작으로 브라질전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선할 정도로 사람이 오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파라과이전은 손흥민의 A매치 최다 출장 기념식이 있었음에도 22,206명만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그러나 이 기세는 월드컵이라는 대의 앞에 힘을 잃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월드컵을 위해 대표팀을 응원해달라고 부탁했다. 홍 감독과 관련한 여러 문제는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 정 회장은 4선에 성공했다. 정 회장을 막을 만한 인사가 없는 씁쓸한 현실이 드러났다. 한국 축구팬들은 월드컵을 마냥 응원할 수도, 망하라고 고사 지낼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앞설 수 없다’라는 말은 실패했을 때 더 극명한 의미를 갖지만, 성공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스포츠에선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용서되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체코전 2-1 역전승의 좋은 기운이 이어져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면 홍 감독은 최소한 명예로운 퇴장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월드컵 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월드컵 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하지만 홍 감독과 대표팀은 가장 나쁜 시나리오로 무너졌다. 한국은 멕시코와 0-1로 패배한 이후에도 32강 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로 패하며 조 3위로 추락했다. 선수들은 무기력해보일 정도로 남아공에 상대가 되지 않았고, 홍 감독은 어떤 수도 쓰지 못한 채 기계적인 교체만 하며 자신의 무능을 드러냈다. 초조하게 다른 조 경기 결과를 기다렸지만, 다른 조 경기가 치러질수록 홍명보호가 32강에 갈 자격이 없다는 것만 거듭 증명됐다. 한국은 결국 48개국 중 34위로 조별리그 탈락했고, 홍 감독은 사퇴했다.

좋든 싫든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대표팀이 잘 돼야 한다고 축구계 여러 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다른 축구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역사적으로 대표팀이 성과를 낼 때 K리그 흥행에도 날개가 달렸다.

지금은 한국 축구에 대단한 위기가 찾아왔다. 단순히 월드컵 성적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국 축구가 잘못된 길로 갔다는 게 뼈아픈 방식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위해 모든 걸 덮어뒀는데 그 가림막이 허무하게 사라지자 병든 한국 축구만 남았다.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떠나간 민심을 곧장 붙잡을 수는 없다. 그래도 아직 한국 축구를 살릴 기회는 남았다. 지난 5월 말 정 회장은 “이번 월드컵 이후 축구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라며 사임을 선언했다. 축구계 안팎에서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회장직을 내려놨다.

이어 홍 감독까지 사퇴하며 한국 축구는 수장과 A대표팀 감독을 모두 잃었다. 여기서 섣불리 축구협회장이나 A대표팀 감독을 뽑으려 한다면 제2의 클린스만, 제2의 홍명보가 탄생할 수 있다. 아시안컵까지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급증을 부채질할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 정상화해야 한다. 어쩌면 한국 축구에서 손에 꼽을 위기를 맞은 지금,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기반을 다져나가야 한다. 천천히 바뀌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만 등 돌린 한국 축구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축구협회장 선거 방식을 비롯한 규정부터 손볼 수도 있고, 비교적 기한이 촉박한 축구협회장 선거를 진행하는 동시에 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할 수도 있다. 이번 아시안컵을 포기하기 어렵다면 대표팀 감독 선임을 절차에 맞게 수행하면서 축구협회장 선거를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성과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많은 과제를 뒤로 미뤄놨다. 그 과제를 미루지 말았어야 했다는 게 이번 월드컵 참사로 증명됐다. 한국 축구는 기로에 서있다. 끝까지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다가 도태될지, 마지막 기회를 잡아 다시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축구협회 손에 달려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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