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감독, 홍명보식 실패를 막아라] ⑥ 실패는 할 수 있다, 그래도 할 건 하고 떠나라

[풋볼리스트] 김진혁 기자= '어떤 일에 관련돼 그 결과에 대해 지는 의무나 부담.' 책임의 사전적 정의다. 사임은 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축구계는 오랫동안 ‘책임’의 행동을 ‘사표’로 오용해 왔다. 자리를 떠나는 방식이 결과에 대한 의무나 부담으로 간주 되는 고리는 반드시 끊어져야 한다.

홍명보 감독의 2년이 단 ‘104초’ 만에 종결됐다. 지난달 29일(한국시간) 홍 감독은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대표팀 감독직 사퇴를 선언했다.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홍 감독은 미리 준비한 대본을 104초 만에 읽은 뒤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질의는 당연히 거절됐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원인을 물을 ‘주체’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결국 지난 2년은 한국 축구 역사의 최악 시기로 남았다. 더욱 문제는 앞으로의 미래다. 실패는 과거의 반복으로부터 나온다. 단순히 말하면 성공을 위해선 실패의 반복을 우선 막으면 된다. 그러나 한국은 침묵의 퇴진으로 실패에 대한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했다. 정확히 짚으면 교훈을 얻을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실패의 책임이 사표가 되면 안 되는 강력한 이유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홍 감독은 입지상 한국 축구의 ‘리더’였다. 지난 2년의 준비 과정과 실전에서 잘한 점, 못한 점, 부족한 점 등을 파악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 홍 전 감독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의 입에서 나와야 했을 본 여정의 문제점에 대한 답변은 새 미래를 준비하는 오답 노트로 기능할 여지가 분명했다. 오답 노트까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힌트는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홍 감독은 ‘책임’을 명분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본인은 이미 책임의 무게를 지고 있는 듯 처참한 현실만 남긴 채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홀연히 한국을 떠났다. 북중미 월드컵의 실패를 물을 소통 창구가 사라져 버렸다.

책임은 홀연히 떠나는 게 아닌 자신의 실수로 생긴 문제를 확실히 뒤처리하는 것까지가 책임이다. ‘1달 이상 원정 합숙의 효용성’, 고지대 적응의 효과, ‘48개국 대회의 변수와 특징’, ‘대회 장기화에 따른 선수단 관리’ 등 특히나 본대회에서는 홍 감독이 설명해야 할 요소들이 무수히 많았다. 어차피 실패였지 않냐는 반문에도 본인이 겪은 2014년 실패와 2026년 실패의 차이점이라도 물을 만했다.

마르셀로 비엘사 전 우루과이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마르셀로 비엘사 전 우루과이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당장 이번 월드컵에서 여론의 질타를 무릅쓰고 미디어로 나온 감독의 사례도 있었다. 조별리그 3차전 결과로 우루과이의 탈락이 유력해지자,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은 공식 석상에서 날 선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윽박지르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우루과이 축구에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에 가까웠다. 단순히 내용의 평가 측면이 꼭 아니더라도, 팬들에 대한 도리 측면에서 적극적인 소명을 떠나 변명이라도 하는 것이 침묵보다는 차라리 나은 처사다. 반박하고 싸우는 것조차 일종의 소통인데 지금 우리는 그마저도 어렵다.

한국 축구는 다시 '0'부터 시작하게 됐다. 아니, 어쩌면 '마이너스'부터다. 실패를 분석할 자료도, 실패를 설명해 줄 당사자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홍 전 감독은 본인의 장학재단을 통해 국회 청문회 참석 의사를 밝혔다. 결국 월드컵 관련 질의는 온전히 한국 축구 발전에 초점이 맞춰진 환경이 아닌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미 황폐한 현 상황에서 대책 없이 감정만 앞선 질타의 장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번 사례로 감독 선임뿐만 아닌 대회 결산 관련에서도 제도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짙어졌다. 명문화된 규정과 제도 안에서 대회 결과를 두고 마음껏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 설령 사퇴를 사전에 결심하더라도 대회 결산까지는 그 책임을 다하도록 규제화가 필요하다.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입국 후 결산 기자회견을 의무화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만하다. 홍 전 감독은 남아공전 패배 후 현지에서 조별리그 마무리 기자회견을 사실상 결산 형식으로 진행했다. 다만 경기가 끝난 지 불과 하루 뒤였고 조별리그 탈락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기에 건설적인 질의가 오가긴 힘들었다. 대회 종료 후 필요한 질의를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시기를 보낸 뒤 결산 기자회견을 갖도록 계약 혹은 규정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사후 기술 리포트도 대표팀 운영과 자연스레 연계할 방안이 필요하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종료 후 대표팀의 교훈을 남기자는 명목으로 백서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다만 이후 제도화되진 않았고 월드컵마다 현장 파견되는 KFA 테크니컬 스터디 그룹(TSG)을 통해 분석과 기술 정보를 정리하고 있다. 향간 떠돈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의 백서 제작’ 역시 뜬소문이다. 대표팀 차원의 기술 리포트가 어렵다면, TSG 분석 자료를 대표팀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라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술 리포트 제작은 성공보다 실패를 경험했을 때 필요성이 더 짙어진다. 기록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할 부분이다.

감독 선임 시스템만큼이나 사후 평가 시스템도 제도화돼야 한다. 어떻게 뽑을 것인지만큼 중요한 것은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다. 실패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월드컵은 원래 실패가 더 많은 무대다. 그러나 실패를 기록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교훈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같은 실패는 반복된다. 이번 월드컵이 남긴 가장 큰 과제는 새 감독 선임이 아니라, 실패를 한국 축구의 자산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홍명보 감독 선임 실패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 모든 감독 선임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실패 요인은 무엇일까. 홍 감독의 시작부터 끝까지 드러난 문제를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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