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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나가노 유지 일본대학축구연맹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에 축구를 시작해 학원축구를 착실히 거쳤다. 축구에 열정적인 도시이자 당대 전국대회 우승 학교도 보유했던 이바라키현 코가시 출생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나가노 회장은 대단한 노력파여서 대학교 때까지 축구를 계속했고,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는 주장도 역임했다.
당시 일본 학원축구 지도자들은 좋지 못했다고 나가노 회장은 회고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지도자가 훈련장에 나타나질 않았다. 감독은 있는데 훈련장에는 도통 보이질 않았다. 옛날이니만큼 특별한 관리 없이 정신 무장만 강조하던 시대였다.”
게으른 지도자들은 역설적으로 나가노 회장이 학원축구에 투신하도록 만들었다. 감독이 훈련장에 없으니 주장이었던 나가노 회장이 직접 훈련 프로그램을 짜고, 선발 명단을 구성해야 했다. 그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직접 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나가노 회장은 “코가시는 초중고 모두 전국대회 우승을 하는데 국가대표는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지도자들이 결과만 생각하고 선수 육성을 시키지 않은 거다. 나는 선수를 위한 지도를 하고 싶었다”라며 “예전에는 지도자를 하면서 우승하고 명성을 드높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지금은 선수가 어떻게 성장할지, 프로에 못 가더라도 다른 길을 선택할 때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라며 자신의 지도 철학을 엿보였다.
나가노 회장은 지금도 일본 유통경제대학(RKU)의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RKU는 1998년 나가노 회장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고, 2005년에는 대학 리그를 넘어 일본프로축구리그(JFL)에 참가하는 파란도 일으켰다. 일본 국가대표로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한 모리타 히데마사를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도 배출했다.
▲ 시스템만 완비되면 다시 한국이 일본을 앞설 것
나가노 회장은 전반적으로 푸근한 인상이고, 본인도 그걸 장점으로 여긴다.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풋볼리스트’와 인터뷰를 하던 중 그는 돌연 자신의 첫인상이 어땠냐고 물었다. 편안했다고 답하자 나가노 회장은 다행이라며 “경력이 오래된 감독이라고 하면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나는 나를 그냥 아저씨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웃었다.
이어 나가노 회장은 한국이 시스템을 잘 정비한다면 충분히 아시아 최강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대학축구 발전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나가노 회장은 대학축구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일본은 한국과 격차가 컸다. 대학축구에서 만나면 0-5 대패를 당했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나가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 이길 수 있는지가 지도자 육성의 원점이었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어떻게 한국을 이길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지도자 라이선스 제도를 만들어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일본 어디에 가도 좋은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고, 그런 투자가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 지도자 육성의 결실은 성인 무대에 국한되지 않고, 유소년 선수들의 성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 단순히 대학축구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가노 회장은 한국이 시스템만 잘 정비한다면 다시금 일본을 넘어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처럼 세계적인 시스템을 갖고 지도자 육성과 선수 육성을 할 수 있으면 일본을 앞서나갈 거다.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엘링 홀란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나타날 거라 생각한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선천적인 피지컬이 뛰어나다. 김민재나 손흥민 같은 선수를 보면 지금도 개인 능력은 한국이 좋은데, 조직력까지 갖추면 일본은 한국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의 대학축구 교류도 중시한다. 나가노 회장은 “경기력 측면에서 덴소컵도 그렇고, 올해 9월에는 한국 대학 우승팀과 일본 대학 우승팀이 챔피언십도 갖는다. 그런 대회를 지속적으로 여는 것 자체로 선수들에게는 경험이 된다. 프로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일반 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 대학축구는 프로 선수를 육성하는 기관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대학축구를 거쳐간 국가대표 선수들을 다수 보유했지만, 한국 대학축구는 일종의 ‘유스팀 연장선’ 느낌이 강하다. 일본 대학축구 출신 국가대표 선수들은 더욱 극적인 ‘인간 승리’를 그려낸 건 사실이다. 대학에서도 무명 선수였다가 부상을 딛고 이탈리아 세리에A 인테르밀란 주전 풀백으로 활약한 나가토모 유토가 대표적이며, 프로를 마다하고 쓰쿠바 대학에 진학해 결과적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미토마 가오루도 유명하다. 축구 특기자 전형이 아닌 입시로 게이오대학에 입학해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에 진출한 시오가이 겐토는 일본 대학축구가 배출한 최신 ‘히트작’이다.
빛나는 결과물이 있지만, 일본도 J리그 창설 이후에는 대학축구 위상이 높지 않다. 나가노 회장도 그 점을 인정했다. 그는 “J리그가 생기고 나서 대학축구가 큰일났다는 말도 나오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잘하는 선수는 J리그 구단 유스팀에 있거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간다. 프로에 직행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대학에 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분명 대학축구를 거쳐 프로에 입단하는 루트 자체는 자리잡았다. 나가노 회장은 “일본은 고등학교에서 프로에 직행하지 못해도 대학에서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다. 한국은 군대 문제 등이 있어 현실적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걸로 안다”라며 “일본은 대학에서 열심히 하면 프로에 갈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었고, 선수들도 그 생각으로 대학축구에서 더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대학축구에 온 모든 선수가 프로에 진입할 수는 없다. 현재 일본 대학축구에 등록된 선수는 약 20,000명인데, 매년 J리그 구단에 들어가는 선수는 200명 안팎이다. 각 학년에 5,000명씩 있다고 하면 4,800명은 결국 프로 무대를 밟지 못하는 셈이다.
나가노 회장은 애초에 대학축구가 프로 육성 기관이 아니며, 프로에 가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한 정책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학은 프로를 육성하는 기관이 아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프로에 갈 뿐이다. 우리는 대학축구에서 인성교육 등 교육적 측면을 강조한다”라며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못 가면 선수들이 축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축구선수로서 살아나갈 수 없으니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든 축구와 연관 있는 삶을 살도록 지원하려 노력한다. 선수를 그만두더라도 심판이나 지도자로서, 유소년을 가르치든 사회인 축구에서 심판을 하든 축구와 연결고리를 끊지 않게끔 만들고자 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인으로 정착해 축구 팬으로 경기를 보러 오게끔 만드는 게 목표”라고 역설했다.
▲ 대학축구가 BTS 콘서트만큼 인기 있도록
현재 나가노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대학축구의 흥행이다. 그에겐 흥행이 곧 대학축구 선수들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굳은 신념이 있다.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인 ‘고시엔’이 프로 진출 여부와 무관하게 그 명성과 인기만으로 고등학교 야구 선수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가노 회장은 “일본에서는 고등학교 축구도 인기가 있고 J리그도 인기가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대학축구는 인기가 없다. 실력은 준수하다. 그럼에도 관중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라며 “대학축구에 많은 관중이 매번 온다면 자연스럽게 선수들 실력도 늘어난다. 많은 관중 앞에서 안 좋은 플레이를 보이고 싶은 선수는 없다. 관중 동원과 같은 부분은 선수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연맹 차원에서 나서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나가노 회장은 궁극적으로 대학축구가 거대한 흥행 콘텐츠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대학 리그전이나 전국대회 결승전에 입장료를 받는다. 매진은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결승전 입장권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만들고 싶다. 회장인 내게 결승전 티켓을 달라는 요청이 무수히 들어왔으면 좋겠다. BTS와 같은 케이팝(K-POP)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구하기 매우 힘든 것처럼 대학축구가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엔터테인먼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월드컵 결승전도 보면 하프타임쇼를 비롯해 여러 이벤트를 하지 않나. 본질은 축구라도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서 대학축구 경기를 보러 올 만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우리는 축구뿐 아니라 전체적인 유인을 고려해 관중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대학축구연맹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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