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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진혁 기자= 산시로의 영원한 리베로 프랑코 바레시가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31일(한국시간) AC밀란은 구단 원클럽맨이자 영구결번 전설 바레시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불과 이틀 전 바레시의 사망설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자, 밀란 구단은 공식 서명을 통해 ‘가짜 뉴스’라며 해당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며칠 뒤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안타까운 소식이 현실로 들려왔다.
바레시는 이탈리아 축구와 밀란의 전설이다. 현재 축구에서는 사실상 사리진 포지션 개념인 ‘리베로’의 대표적인 선수였다. 176cm의 비교적 왜소한 체격을 지녔지만, 발군의 운동 능력과 정확한 패스, 넓은 시야, 부드러운 컨트롤 등 기술까지 겸비한 완성한 선수였다. 당대 바레시가 봉쇄했던 공격수들은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브라질의 지쿠,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 등 하나같이 전설적인 인물들이었다.
바레시는 밀란 원클럽맨이다. 유소년팀에서부터 성장해 1977년 1군 데뷔했다. 이후 20년 동안 밀란에서만 꾸준히 활약하며 통산 719경기 33골의 위대한 기록을 썼다. 특히 15시즌 동안 주장 역할을 역임하기도 했다. 우승 기록도 화려하다. 밀란을 이끌며 세리에A 6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4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회 등 소속팀에서만 우승 트로피 총 21개를 들면서 밀란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의 족적도 빼놓을 수 없다. 바레시는 A매치 81경기를 소화했다. 1982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이탈리아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베테랑이 돼 맞이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주장을 맡으며 팀을 대회 결승까지 진두지휘했다. 대회 도중 무릎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극적으로 회복해 브라질과 결승전에 나섰는데 승부차기에서 통한의 실축을 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레시가 보인 헌신은 이탈리아 팬들의 존경을 받았다.
바레시는 1997년 현역 은퇴했다. 이후 시작부터 끝을 함께한 밀란은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은퇴 후 바레시는 한 동안 축구계에서 종사하지 않다가 2002년 잉글랜드 풀럼 단장직을 수행했다. 그 후 친정 밀란으로 돌아가 6년 동안 U20팀 감독을 맡았다. 이후에는 지도자마저 은퇴하며 축구계 원로로서 인생의 황혼기를 보냈다.
바레시의 생전 마지막 모습은 5개월 전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였다. 개막식은 바레시의 축구 역사가 남아있는 밀란의 홈구장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진행됐다. 성화 점화 순서가 오자, 전설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이탈리아 축구 전설인 바레시와 주세페 베르고미가 성화를 들고 나타나 인계했다.
부축 없이 홀로 걷는 모습에 바레시의 건강 상태에도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바레시는 지난해 폐 결절 진단을 받은 뒤 폐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다. 명확한 사인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개막식에서 모습을 보인 바레시는 불과 5개월 뒤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밀란은 “밀란의 심장이자 영혼을 상징했던 사람의 별세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다. 구단의 모든 구성원과 모든 밀라니스타는 이제 프랑코 바레시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는 가장 슬픈 이 순간에도 강해져야 하며,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며 “우리는 그를 기리며 하나로 뭉칠 것이다. 앞으로도 그가 우리의 로소네리 여정을 이끌고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영원히. 프랑코 바레시는 영원하다”라며 추모사를 남겼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AC밀란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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