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수년간 이어진 대표팀 고질병 ‘낮은 에너지레벨’
김민재(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민재(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공을 빼앗기는 순간 이 악물고 재빨리 한 발 더 뛰어 수비하고, 공이 선수 사이에 떨어진 순간 이 악물고 튀어 나가 확보해야 한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플레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부진에 빠진 동안 잃어버린 플레이이기도 하다.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2일 오후 8시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하나은행 초청 친선경기를 치러 베네수엘라와 0-0으로 비겼다.

모레노 감독은 앞선 우루과이전 대패 이후 침체된 흐름을 뒤집지 못했다. 에콰도르전 3-0 대승으로 데뷔한 모레노 감독은 우루과이전 1-4 패배 이후 베네수엘라전까지 1승 1무 1패를 기록 중이다.

경기 직후 김민재는 “대가리 쳐박고 뛰어야 한다”는 강경한 표현으로 팀 전체의 수비가담이 부족함을 답답해 했다. 잠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흥분을 가라앉힌 뒤 “전체적으로 많이 뛰어줘야 한다는 게 단순히 뛴 거리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경합을 같이 해야 하고 90분 동안 싸워야 한다. 경합에서 이겨야 하고, 졌다면 주변 선수가 세컨드 볼을 잡아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몇 년 동안 그런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김민재의 ‘대가리 박고 뛰어야 한다’는 말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김민재는 지난 2024년 3월에도 본지 유튜브 채널 ‘뽈리TV’와 가진 인터뷰에서 거의 똑같이 이야기했다.

아시안컵 ‘탁구 논란’ 이후 처음 가진 인터뷰 중 하나였는데, 당시 김민재는 “외부 소음으로 스트레스 받은 선수가 있겠지만 저희가 하나로 뭉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태도가 어떤 선수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전부 다 한 발짝 더 뛰어 주면 그게 열 발짝이 되는 것”이라며 “머리 처박고 해야 할 것 같다. 누가 어디서 뛰고, 실력이 좋고 다 상관없다. 그냥 한발 더 뛰고 누가 희생을 하느냐에 따라 팀의 퀄리티가 정해진다”고 말했다.

머리를 박는다는 표현뿐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 즉 실력이 아니라 다같이 한 발씩 더 뛰는 자세가 팀의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문제의식이 당시와 똑같다. 에너지 레벨이 너무 낮다는 대표팀의 문제는 최소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때 시작해 임시감독들과 홍명보 감독을 거쳐 모레노 현 감독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이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은 반응속도가 한 박자 늦다. 공이 자신 근처로 오면 최대한의 출력으로 어깨를 부딪쳐 확보해야 하고, 공이 주인 없는 곳에 떨어지면 자신의 순발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따내야 한다. 과거에는 약팀이나 이렇게 했다면, 최근에는 세계 최강팀들도 플레이 강도를 기준 삼아 선수를 선발하고 경기에 임한다. 김민재 소속팀 바이에른뮌헨이 대표적인 예고, 이강인의 전소속팀 파리생제르맹(PSG)도 마찬가지다.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동량 1위는 바이에른, 전력질주 횟수 1위는 RB라이프치히고 2위는 보루시아도르트문트, 경합 승리 1위는 도르트문트일 정도로 강팀일수록 많이 뛰는 게 트렌드다. 김민재는 엄청난 강도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바이에른 축구를 소화하다 2024-2025시즌 인대 부상이 생겼을 정도였다.

느슨한 경합은 불필요한 체력소모로 이어진다. 경합 순간 온 힘을 다해 부딪친 뒤 공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슬슬 따라가서 소유권을 잃어버린 뒤에 아차 하고 수비하러 가다가 오히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김민재의 “단순히 뛴 거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다.

즉 김민재의 말은 태도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지만, 축구 전술의 기본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인 셈이다.

컬트적인 유행어가 되어 버린 홍명보 전 감독의 “싸워”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 다큐멘터리의 한 라커룸 지시 상황에서는 “싸움에서 조금씩 떨어지니까 전체적으로 그러는 거 아니야. 실수하더라도 자신있게 붙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합 강도가 너무 약하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홍 감독 특유의 화법과 당시 최악이었던 대중 사이 인식이 겹치면서 유행어가 된 것이지 내용 자체는 정상적이었다.

이런 라커룸 연설 내용은 최근 우후죽순 쏟아져나오는 유럽 강팀들의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미켈 아르테타(아스널)가 사전 미팅에서, 펩 과르디올라(전 맨체스터시티)가 경기 도중 라커룸에서 더 강한 경합에서 승리할 것을 요구하는 모습이 포착되곤 한다. 어느 팀 감독이나 경합 강도를 높이라는 주문을 한다.

김민재(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김민재(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그러나 홍 감독은 전임자부터 이어진 한국 선수들의 느슨한 경합 문제를 전혀 고치지 못했고, 본인의 전술적인 소심함까지 겹치면서 2026 북중미 월드컵의 한국은 이중으로 느슨한 팀이 되고 말았다. 선수 실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경기력과 중요한 상황에서의 경합 실패는 스느함에서 비롯됐다.

경합이 느슨한 건 대표팀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K리그 차원에서도 꽤 많은 팀에 존재하는 한국 축구의 나쁜 분위기다. 독일 1부와 하부리그를 두루 경험하고 온 최경록(광주FC)는 “독일팀은 다 강한 훈련을 좋아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훈련해보니까 훈련 때 강하게 경합하면 코치가 ‘야 서로 조심해’라고 하더라.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김민재(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김민재(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유럽파 출신의 경우 각 소속팀에서 강도 높은 축구를 이미 체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만 오면 강도를 낮추는 경우가 있다. 김민재의 발언 중 “개인이 빛나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이를 지적한다고 볼 수 있다. 경합을 약하게 하는 선수, 개인 플레이에 치중하는 선수라고 해서 이기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소속팀보다 대표팀에서 더 ‘내 습관대로’ 플레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팀 경기력에 저해가 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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