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어담는 효자였는데 "2000억 적자"… 술렁이던 삼성전자, 마침내 확 바꿨다

삼성전자가 위기에 빠진 가전 사업을 되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식기세척기·전자레인지 등 일부 가전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외주 생산으로 전환한다. 1970년대 가전 사업에 뛰어든 지 50년 만에 단행되는 대규모 구조 재편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 뉴스1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생활가전(DA)사업부는 지난달 28일 임직원 대상 경영설명회를 열고 이같은 개편 방향을 내부에 공유했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수익성이 검증된 대형 제품은 자체 생산을 그대로 유지하고, 식기세척기·전자레인지 등 저마진 제품 라인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넘긴다는 게 골자다.

1989년 문을 열고 30년 넘게 삼성전자의 해외 가전 생산 거점 역할을 해온 말레이시아 공장도 폐쇄 수순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가전 사업의 '애플화'로 해석하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 생산을 대만 폭스콘에 맡기고 본사는 기술 개발과 브랜드 관리에 집중하는 것처럼, 삼성전자도 제조는 외부에 넘기고 고부가가치 영역에 역량을 모으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김철기 DA사업부장(사장)은 경영설명회에서 "올해가 가전 사업 구조 혁신에 나설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며 "수익성 기반의 성장 사업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철수까지 검토…"확정된 내용 없다"

중국 시장에서의 완전 철수 가능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가 이르면 이달 안에 중국 내 가전·TV 판매 중단을 결정하고 재고를 단계적으로 소진한 뒤 연내 사업을 완전히 접을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현지 생산 설비는 유지해 동남아 등 인근 시장을 겨냥한 수출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에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 뉴스1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보도에 대해 "선택과 집중이라는 방향성은 정해진 것이 맞다"면서도 "생산·판매·연구개발 각각을 지역별·제품별·품목별로 놓고 들여다보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외주 생산 확대와 관련해서는 "국내에서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부 소화하는 건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효율을 따져 지역과 업체를 고르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빠른 시일 내 품목별·지역별 방향성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2000억 적자…올해는 더 나빠진다

이번 재편의 원인은 가파른 실적 하락이다. 2023년만 해도 VD·DA사업부는 연간 1조 25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삼성전자의 효자 사업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불과 2년여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올 1분기 VD·DA사업부 매출은 14조 3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 줄었고, 영업익은 지난해 1분기 3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33.3% 급감했다. 반도체 영업익의 268분의 1 수준이다.

경기 수원 영통구 삼성전자 본사의 모습. / 뉴스1

그나마 흑자를 낸 1분기와 달리 지난해 연간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VD·DA사업부는 3·4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냈고 4분기에는 영업손실이 6000억원까지 불어났다. 흑자와 적자를 합산한 연간 영업손실은 2000억원이었다.

VD·DA사업부가 속한 DX부문의 영업이익률도 2022년 7%를 기록한 이후 2023년 8.46%, 2024년 7.11%, 2025년 6.84%로 매년 하락했다. VD·DA사업부만 따로 보면 올해도 흑자 전환이 어렵다는 전망이 증권가 안팎에서 잇따라 나온다. 삼성증권과 하나증권 모두 같은 입장이다. 수요 침체에 중국 업체의 공세가 겹친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출하량 기준 글로벌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1위(15%)를 지키고 있지만, TCL(13%)과 하이센스(12%)가 바짝 뒤를 쫓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AVC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중국 내 TV·냉장고·세탁기 점유율은 각각 3.6%, 0.4%, 0.4%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원자재값 상승과 물류비 증가, 관세 부담까지 겹치며 수익성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에 사기가 펄럭이고 있다. / 뉴스1

삼성전자만의 상황이 아니다. LG전자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핵심 기술은 직접 챙기고 범용 제품 생산은 외부 업체에 맡기는 합작개발생산(JDM) 방식을 도입해 비용 절감에 나섰다. 국내 가전 양강이 동시에 외주화 카드를 꺼내들면서 중저가는 외부에 넘기고 프리미엄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는 앞으로 프리미엄 가전과 냉난방공조(HVAC), 기업 간 거래(B2B)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짤 계획이다. 지난해 인수한 독일 공조 기업 플랙트그룹을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지는 중앙공조 시장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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