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위기였는데…" 벼랑 끝에서 20년 만에 1만배 뛴 '이 주식'

2001년 증권사 객장 분위기는 살벌했다. D램 가격이 반 토막 나면서 반도체 업황 전체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그 한가운데 있던 하이닉스는 그해에만 5조원이 넘는 손실을 냈고,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SNL코리아 시즌8’ 5회에서 SK하이닉스 작업복을 입은 남성이 등장했다. / 쿠팡플레이

워크아웃은 쉽게 말해 빚을 못 갚아 채권단이 회사 살림을 대신 관리하는 절차로,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주가는 125원까지 밀렸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네 주를 살 수 있는 주식이었다. 시장에서는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사실 하이닉스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99년 정부가 주도한 대기업 구조조정, 이른바 '빅딜' 때문이었다. 당시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통째로 넘겨받았다. 문제는 LG반도체가 안고 있던 7조원 규모의 빚도 함께 떠안았다는 점이다.

두 회사의 부채가 합쳐지면서 부채비율이 900%를 훌쩍 넘어섰다. 여기에 전 세계 D램 공급 과잉까지 겹치면서 반도체 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고, 버텨낼 여력이 없었다. 현대전자는 결국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사명을 하이닉스로 바꾸고 채권단 손에 맡겨졌다.

이 시기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인수 의향을 밝혔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공장과 기술 같은 알짜 자산만 가져가고, 수십조원에 달하는 부채는 떠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쪼개져 팔릴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이사회와 경영진, 심지어 노동조합까지 한목소리로 인수를 거부했다. 빚더미를 안고서라도 스스로 살아남겠다는 결정이었다.

SK하이닉스 2003년 감자 전 거래 주가. / 뉴스1, 한국거래소 제공

채권단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주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2003년 2월 25일, 경기도 이천 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는 시작부터 아수라장이었다.

소액주주들이 회사 측 경호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단상의 경영진을 향해 계란을 던지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유가 있었다. 채권단이 꺼내든 카드는 주식 21주를 강제로 1주로 합치는 균등감자였다. 소액주주들은 사태를 키운 대주주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물리는 차등감자를 요구했지만, 회사 측과 채권단은 이를 무시하고 균등감자안을 밀어붙였다.

감자안이 통과되면서 하이닉스 자본금은 26조 2175억원에서 1조 2653억원으로, 주식 수는 52억 3997만주에서 2억 4952만주로 각각 줄어들었다.

이론적으로는 주식 수가 21분의 1로 줄어드는 만큼 주가가 21배로 올라야 손해가 없다. 하지만 망하기 직전인 회사의 주가가 그만큼 뛸 리 없었다. 주식 수는 줄었는데 주가는 제자리였으니, 2100만원어치를 들고 있던 주주 계좌에 남는 건 100만원짜리 주식뿐이었다.

나머지 2000만원, 전 재산의 95%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경영진은 감자안을 일방 처리한 뒤 도망치듯 주총장을 빠져나갔고, 소액주주 모임은 즉각 주총 무효소송과 감자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그렇게 손을 털고 나갔다.

◈ 125원에서 174만 5000원까지, 약 1만 4000배

19일 종가 기준 SK하이닉스 주가는 174만 5000원이다. 당시 최저점이었던 125원과 비교하면 단순 계산으로 약 1만 3960배 차이가 난다. 만약 그 시절 100만원어치를 사서 지금까지 들고 있었다면 약 139억원이 됐을 돈이다.

물론 앞서 설명한 무상감자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단순 주가 배수와 실제 투자 수익률은 다른 얘기다. 무상감자 이후 수정주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최저점 대비 약 803배 상승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숫자가 계속 회자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동전주 취급을 받던 회사가 지금은 삼성전자와 코스피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는 기업이 됐다. 이달 4일에는 시가총액 1000조원을 돌파하며 삼성전자에 이어 코스피 상장사 중 두 번째로 이 고지를 밟았다. 19일 기준 시가총액은 1276조원이다.

◈ 버려진 회사를 살린 한 번의 결단

전환점은 2012년이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나타났다. 당시 SK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컸다. 반도체는 경기에 따라 실적이 널뛰는 장치산업이었고, 하이닉스는 이미 한 번 무너진 회사였기 때문에 인수한다고 해서 돈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럼에도 최태원 회장은 3조 3700억원을 들여 하이닉스 지분 21%를 인수했다. 당시 한국 기업 인수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해 10월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참석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으로 부터 SK하이닉스의 HBM4 반도체 웨이퍼를 선물로 받고 있다. / 뉴스1

SK 품에 안긴 하이닉스는 재무 안정을 되찾았다. 달라진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반도체 침체기에도 공장을 증설하고 연구개발에 돈을 쏟아붓는 공격적인 투자가 계속됐다. 수익이 나지 않는 시기에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서 말릴 때 지른 그 결단이 지금의 SK하이닉스를 만든 출발점이었다.

◈ 아무도 몰라봤던 기술이 세상을 바꿨다

그 투자 중에서 훗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게 바로 HBM이었다. 2013년 SK하이닉스는 게임 콘솔 업체 닌텐도와 그래픽 반도체 기업 AMD의 제안으로 고대역폭메모리 개발에 착수했다. HBM은 D램 여러 장을 수직으로 쌓고 관통 구멍을 뚫어 연결한 반도체로, 기존 메모리보다 데이터를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챗GPT 같은 AI가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핵심 부품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체 메모리 시장의 1%도 안 되는 틈새 부품이었다. 큰돈이 될 거라고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SK하이닉스는 수요가 없는 시기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2013년 세계 최초로 HBM 개발에 성공했다.

그 선택이 빛을 발한 건 2022년 말이었다. 챗GPT가 등장하면서 AI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AI 서버에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10년 가까이 HBM을 갈고닦은 SK하이닉스가 바로 그 자리를 꿰찼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 HBM 시장의 약 60%를 장악하고 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공개석상에서 "아직도 SK하이닉스의 HBM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 목표 주가로 270만원에서 290만원까지 제시하고 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2027년까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HBM 수요도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다만 하반기로 갈수록 대규모 설비 투자 비용이 늘어나면서 수익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신중한 시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코스피가 3%대 하락 마감한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44.38포인트(3.25%) 하락한 7271.66에 거래를 마쳤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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