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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올라간 빌딩이 경기의 그늘을 먼저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도시의 자신감처럼 보이는 초고층 건물이 때로는 시장의 과열을 드러내는 장면이 된다는 해석이다.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 이야기다.

마천루의 저주는 세계적으로 높은 빌딩이 완공되는 시점과 대형 경제 위기가 겹친 사례가 반복되면서 주목받은 가설이다. 초고층 건물 자체가 경기 침체를 일으킨다는 뜻은 아니다. 빌딩은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 호황기에 커진 낙관과 자본의 흐름을 보여주는 결과에 가깝다. 자금이 풍부하고 시장의 기대가 커질 때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 추진되고, 긴 공사 기간을 거치는 사이 경기 흐름이 바뀌면서 완공 시점이 침체 국면과 맞물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개념은 1999년 영국의 부동산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마천루 지수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핵심은 세계 최고층 빌딩이 경제의 자신감이 가장 커진 시기에 계획되거나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과 개발업자가 더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쉽다. 대출도 비교적 쉽게 이뤄지고, 토지와 건물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커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초고층 빌딩은 도시의 성장과 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그 상징이 완성될 때 시장 환경이 처음과 달라져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초고층 빌딩은 짧은 기간에 지을 수 없다. 설계, 인허가, 자금 조달, 착공, 공사, 입주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시작할 때는 돈이 풍부하고 금리가 낮았더라도,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거나 금리가 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고 부동산 수요가 식으면 대형 프로젝트는 기업과 금융회사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주식시장과의 연결고리도 여기에 있다. 주가는 대체로 현재보다 미래의 이익과 위험을 먼저 반영하려는 성격이 있다. 시장이 보기에는 초고층 빌딩 건설이 장기 성장 전략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본업보다 외형 확대에 많은 돈을 쓰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특히 경기 호황이 오래 이어진 상황에서 기업이나 개발사가 막대한 자금을 부동산에 묶는다면 투자자들은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따져보게 된다.

이 가설이 꾸준히 언급되는 이유는 주요 경제 위기와 겹친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은 1930년에 완공됐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에 문을 열었다. 두 건물이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꾸던 시기와 1929년 미국 증시 폭락, 이후 대공황이 이어진 시기가 겹쳤다. 1929년 10월 미국 주식시장은 큰 폭으로 하락했고, 경기 침체는 1930년대 세계 경제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1970년대 사례도 자주 언급된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현재 윌리스 타워)는 당시 세계 최고층 건물 경쟁의 중심에 있었다. 이 시기 세계 경제는 1973년 오일쇼크와 높은 물가, 성장 둔화가 겹친 어려운 환경을 겪었다. 초고층 빌딩이 위기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형 건축 프로젝트가 정점에 도달한 시기와 경기 부담이 커진 시기가 맞물렸다는 점에서 마천루 지수의 사례로 자주 소개된다.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해석이 제기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1990년대 후반 세계적인 초고층 건물로 주목받았다. 이 무렵 아시아 여러 국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다. 통화 가치 하락과 자본 유출, 기업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금융시장이 흔들렸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고속 성장과 대형 개발 분위기 속에서 금융 취약성이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도 빠지지 않는다. 부르즈 할리파는 2010년 1월 공식 개장한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그러나 그 직전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고, 두바이 역시 2009년 채무 문제로 국제 금융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부동산 개발과 금융 레버리지에 크게 의존한 성장 모델은 유동성이 줄어드는 순간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다만 마천루의 저주는 예언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지표는 아니다. 높은 빌딩이 지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증시가 하락하거나 경제 위기가 온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경제 위기는 금리, 부채, 금융 규제, 산업 구조, 국제 정세, 소비와 투자 흐름 등 여러 요인이 얽혀 발생한다. 초고층 빌딩은 그중 일부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에 가깝다. 시장이 낙관에 치우친 시기에는 자본이 생산성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몰릴 수 있는데, 마천루는 그런 흐름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업 관점에서도 사옥이나 랜드마크 건설이 모두 부정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옥은 업무 효율을 높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며 장기적으로 임차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도시 개발 차원에서도 일자리와 상권, 교통망 개선과 연결될 수 있다. 문제는 규모와 시점이다. 본업 경쟁력 강화나 연구개발, 재무 안정성을 해치면서까지 부동산에 과도한 자금을 투입하면 주식시장은 이를 부담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천루의 저주가 흥미로운 이유는 어려운 경제 흐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넘치면 자산 가격이 오르고, 자산 가격 상승은 더 큰 투자를 부른다. 투자자와 기업은 앞으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기대가 커질수록 더 높고 더 큰 건물이 계획된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금리가 오르거나 수요가 꺾이면 과거의 낙관을 바탕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부담으로 바뀔 수 있다.
주식 투자자에게 이 가설은 하나의 참고 신호가 될 수 있다. 초고층 빌딩 소식만으로 매수나 매도를 결정할 수는 없다. 다만 경기 호황이 길어지고, 부채를 활용한 대형 투자가 늘며, 기업들이 본업보다 외형 확대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면 시장의 과열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리 상승기에는 대규모 고정자산 투자가 기업의 현금흐름과 재무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살펴봐야 한다.

결국 마천루의 저주는 높은 건물에 대한 미신이라기보다 호황기 자본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비유에 가깝다. 빌딩이 높아질수록 경제가 반드시 나빠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미래를 낙관할 때 가장 큰 투자가 시작되고, 그 결과가 드러나는 시점에는 시장이 이미 다른 국면에 들어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성장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자본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하다. 투자자는 새로 솟는 빌딩의 높이보다 그 빌딩을 가능하게 한 돈의 성격을 봐야 한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과도한 부채, 본업과 거리가 먼 대형 투자가 함께 나타난다면 시장의 분위기를 차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천루의 저주는 미래를 맞히는 공식은 아니지만, 호황의 끝자락에서 반복되는 과신을 돌아보게 하는 오래된 경고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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