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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북중미 월드컵이 개막하면서 한국 유통·외식 업계의 판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번 대회의 결정적 변수는 '시차'다.

개최국인 미국·캐나다·멕시코와의 시간 차로 한국 대표팀 경기가 오전~낮 시간대에 집중 배치됐고, 소비 패턴 전반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과거 월드컵의 상징이었던 '심야 거리 응원'과 '밤샘 치맥' 특수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 자리를 '오전 홈술'과 '브런치 응원'이라는 전혀 새로운 소비 문화가 채우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오프라인 외식 현장에서 나타났다. 지난 12일 한국 대표팀의 조별리그 첫 상대인 체코와의 경기가 오전 11시 킥오프로 잡히자, 서울 을지로·홍대입구 일대 치킨 매장과 호프집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인파가 몰렸다. 반차를 내고 나온 직장인들과 기업 단위 단체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친 결과였다. 야간 특수가 실종될까 노심초사하던 치킨·외식 업계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브런치 치맥' 호황이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BBQ 주요 상권 매장은 오전 8시 30분부터 조기 영업에 돌입해 100명 단위 단체 예약 좌석을 가득 채웠고, bhc도 전국 주요 직영점의 영업시간을 선제적으로 앞당겨 경기 시작 전부터 고객이 입장할 수 있게 했다. 자정 무렵 야식 배달 수요가 사라진 자리를,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응원하려는 단체 관람 수요가 오전 매장에서 대신 채웠다. 치킨 브랜드들이 '야간 배달'이라는 기존 공식에서 벗어나 '오전 오프라인 집객'이라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실험하게 된 셈이다.
소비 패턴의 변화는 편의점 매출 데이터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일 오전 11시 경기임에도 광화문 광장에 약 1만 명의 응원 인파가 몰렸고, CU에 따르면 인근 10여 개 점포의 이날 매출은 전주 같은 요일 대비 3.4배 폭증했다.
품목별로 보면 초여름 낮 야외 응원이라는 특성이 데이터에 그대로 반영됐다. 얼음 매출이 510.3% 치솟았고, 아이스드링크(495.8%), 스포츠·이온음료(480.9%), 생수(394.7%) 등 갈증 해소용 차가운 음료가 줄줄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한낮 야외에서 응원전이 펼쳐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맥주나 소주 대신 음료를 택하는 소비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심야 배달 앱을 가득 채우던 고칼로리 야식 주문은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를 채운 건 가볍게 끼니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의 간편식 수요였다. 김밥(214.3%), 삼각김밥(202.5%), 샌드위치(183.1%)가 매대에 오르는 족족 팔려나갔다. 이마트24에서도 샌드위치(142%)·햄버거(128%) 등 간편식 카테고리가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과거 월드컵 편의점 특수의 주인공이 맥주·안주류였다면, 이번엔 간편식과 음료가 그 자리를 꿰찼다. 소비의 무게중심이 '술자리 야식'에서 '낮 끼니'로 완전히 이동한 것이다.
주류 업계에서는 국내 브랜드 중 유일한 FIFA 공식 스폰서인 오비맥주 카스(Cass)의 행보가 단연 돋보였다. 카스는 경기가 아침·낮에 몰린다는 제약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 '오프라인 뷰잉펍' 전략을 택했다. 체코전 당일 오전 10시, 서울 을지로 '달맞이광장바베큐' 본점에서 일반 소비자 150명과 인플루언서 등 총 200여 명을 초청해 대규모 단체 관람 행사를 열었다.

대형 스크린 관람에 축구 크리에이터 '김진짜'와 한성규 아나운서의 라이브 해설까지 더해, 평일 오전 도심 한복판에 월드컵 축제 분위기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공식 스폰서 권한이 없는 경쟁 브랜드들이 '축구', '국가대표' 같은 단어조차 우회해야 하는 앰부시 마케팅(월드컵을 비롯한 스포츠 이벤트나 특정 행사가 진행 중인 시기에 공식 후원사가 아니면서도 후원사인 것처럼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방법)에 머문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카스는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와 공간 기획력으로 '낮 시간대 오프라인 응원'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선점했다.
FIFA 공식 스폰서십의 위력이 이번 대회에서 유독 두드러진 건 시차라는 변수 때문이다. 심야라면 개인 공간에서 조용히 소비하는 맥주 한 캔으로도 충분했겠지만, 낮 시간 오프라인 집결이라는 조건에서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브랜드와 함께 보는가'가 곧 경험의 질을 결정한다. 카스가 공간을 직접 기획하고 콘텐츠까지 제공한 것은, 주류 브랜드가 단순 광고주를 넘어 '경험 설계자'로 진화하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오프라인 현장 특수와 함께 배달 플랫폼과 치킨 업체들의 할인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쿠팡이츠는 오는 28일까지 BBQ·네네치킨·멕시카나치킨·노랑통닭·후라이드참잘하는집 등 5개 브랜드와 치킨 할인전을 진행한다. 일반회원을 포함한 모든 회원에게 3000원 할인 쿠폰을 제공하고, 와우회원에게는 별도 혜택을 추가한다. 한국 대표팀의 득점 수에 따라 할인 금액이 최대 6000원까지 늘어나는 방식과, 경기 전 득점 수를 맞히는 이벤트도 함께 운영한다.
국가대표 경기 결과를 소비자 혜택과 직접 연동한 구조로, 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플랫폼 사용 동기도 함께 커지는 설계다.교촌치킨은 같은 기간 자체 앱에서 허니·레드·간장 등 대표 메뉴를 주차별로 3000원 할인한다. 여러 마리를 주문하면 구매 수량만큼 할인이 적용되는 구조로 단체 주문을 겨냥했다. 행사 메뉴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자전거와 앱 포인트 등을 제공하는 추첨 이벤트도 병행한다.배달의민족은 다음 달 19일까지 치킨·햄버거·디저트 등 100여 개 브랜드에서 사용 가능한 최대 1만원 할인 쿠폰을 푼다. 국가대표 경기 특수뿐 아니라 여름철 배달 성수기 수요까지 함께 겨냥한 전략으로, 월드컵을 기점으로 하반기 배달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선 모양새다.
이번 현상은 단순히 경기 시간대가 바뀐 데 따른 일시적 변화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사회 전반의 구조적 흐름 여러 가지가 동시에 맞물렸다.
먼저, '함께 보는' 경험 수요의 부상이다. 팬데믹 이후 OTT와 개인 스크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혼자 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역설적으로 그 반작용으로 '현장감 있는 공동 관람' 욕구가 커졌다. 스포츠 이벤트, 특히 국가대표 경기는 그 욕구를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계기다. 낮 시간이라는 조건이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으로 사람들을 끌어내는 유인이 됐다. 집에서 혼자 보기엔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밤새울 필요도 없으니 가볍게 나가 함께 보자는 심리가 자연스럽게 작동한 것이다.

'반차 문화'도 한 몫했다. 유연근무제와 재량휴가 사용이 일반화된 한국 직장 문화에서, 오전 반차를 내고 응원에 합류하는 건 과거보다 훨씬 현실적인 선택지가 됐다. BBQ·bhc 매장에 기업 단위 단체 예약이 몰린 건 개인이 아닌 팀·부서 단위로 반차를 함께 쓰는 집단 소비 행태가 자리를 잡았다는 방증이다.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회사 공식 응원 반차'가 이제는 하나의 기업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소비의 '가벼움' 트렌드도 겹쳤다. 심야 치맥이 낮 시간 간편식과 아이스커피로 대체된 건 단순히 시간대 때문만이 아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고칼로리 야식보다 부담 없는 한 끼를 선호하는 소비 성향이 이미 깊이 자리 잡혀 있었다. 낮 응원이라는 조건이 그 성향을 자연스럽게 표출시킨 것이다. 편의점 매출에서 얼음·음료·김밥이 상위를 차지한 건 '덜 마시고 더 즐기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이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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