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삼성서 직장생활 시작한 줄 알았는데... 이건 정말 몰랐다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끌어올린 경영자.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대한민국 산업의 지형을 바꾼 거인. 대중이 기억하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회장이 청년 시절인 스물넷에 첫발을 디딘 곳이 삼성전자와 관련이 없는 곳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012년 모습이다. / 뉴스1

이 회장은 1966년 10월 중앙일보와 동양방송(TBC)에 입사하며 공식 사회 경력을 시작했다. 반도체나 휴대전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출발점이 뒷날 전자와 미디어를 넘나든 그의 안목과 무관치 않았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 회장은 1965년 일본 와세다대 제1상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 경영 수업을 앞둔 그에게 아버지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삼성물산 같은 기존 제조·무역 계열사가 아니라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언론사로 갈 것을 지시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1964년 라디오 방송을, 1965년 중앙일보를 잇달아 세우며 언론·미디어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 회장의 첫 직장으로 언론사를 택한 데는, 경영인이 되기 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익히게 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의 흐름을 가장 먼저 또 가장 넓게 읽는 자리가 언론이라는 판단이었다.

입사 당시 이 회장은 만 24세였다. 1942년 1월생인 그는 입사 이듬해인 1967년 홍라희 여사와 결혼했다. 홍 여사의 아버지가 중앙일보 창간을 이끈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이다. 홍 전 장관은 중앙일보 창간 때 부사장을 맡았고 1968년 사장에 올랐다. 이 회장도 1968년 무렵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직함을 달고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011년 모습이다. / 뉴스1

이 회장의 언론사 시절은 이름만 걸어둔 통과의례가 아니었다. 그는 특히 동양방송(TBC)의 방송 제작과 기술 부문에 관심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방송은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매체의 중심이 옮겨가던 첨단 영역이었다. 화면을 만들고 전파로 실어 보내는 과정 하나하나가 전자·기계 기술의 집약체였고, 이 회장은 그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기계와 전자기기를 파고드는 그의 성향은 일찍부터 유명했다. 유학 시절 그는 중고차를 사서 직접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되파는 방식으로 여러 대를 굴렸다고 한다. 4200달러에 산 중고차를 몇 달 타며 뜯어본 뒤 손질해 팔아 700달러의 이윤을 남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방송 장비든 자동차든, 작동 원리를 끝까지 뜯어보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 젊은 시절부터 드러난 셈이다.

이 회장은 TBC 드라마 부문을 직접 챙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강부자·이순재·여운계 등 조연급 배우들의 처우를 신경 쓰라고 제작진에 주문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으로 전해진다. 주연뿐 아니라 극을 떠받치는 조연의 힘을 눈여겨봤다는 것이다. 이런 감각 덕인지 TBC 드라마는 1980년 언론통폐합 이전 지상파 3사 가운데 인지도와 시청률에서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콘텐츠를 보는 눈은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 회장은 이름난 영화광이었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주연과 조연, 연출자의 시각을 번갈아 짚어보는 습관을 들였고, 이런 다각적 관점이 훗날 방송사 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회장의 미디어 경력은 짧은 경험에 그치지 않았다.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는 1974년 12월 합병해 '중앙일보·동양방송'이 됐다. 이 회장은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을 지낸 뒤 1979년 2월 동양방송 부회장에 올랐고, 같은 시기 삼성그룹 부회장을 맡으며 후계자로서 전면에 나섰다.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10년 넘는 세월을 그는 미디어 기업의 경영자로 보냈다.

이 회장이 몸담았던 TBC는 그러나 스스로 문을 닫은 것이 아니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방송 부문이 한국방송공사(KBS)에 강제 통합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회장이 첫발을 디딘 동양방송은 훗날 중앙일보 계열의 종합편성채널 JTBC의 전신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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