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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사건이지만 시장은 구조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이후 세계 금융시장이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한 국내 경제·투자 전문가 9인이 한 권의 책에 모였다. 유가가 흔들리고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며, 금과 국채마저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 시대. 이들은 지금 세계가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질서 전환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제신문 한경BP가 지난달 8일 펴낸 ‘포스트 워 투자 전략’은 향후 증시 전망이나 유망 종목을 짚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 이후 재편되는 세계경제의 구조 자체를 분석한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상징되는 지정학 리스크, 흔들리는 달러 패권, 에너지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AI) 중심의 기술혁명이 동시에 충돌하면서 기존 투자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책의 진단이다.
저자들은 지금의 시장을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는 시대로 규정한다. 뉴스나 단기 가격 변동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 이후 남게 될 새로운 질서를 읽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이란 충돌 이후 세계 금융시장이 어떻게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분석하면서, 전쟁은 끝나도 시장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AI는 혁명일 수도 있지만 다음 버블의 이름일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투자 전문가 9인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현재 시장을 해석한다. 거시경제와 환율, 사이클, 정책, 차트, 디지털 자산, 포트폴리오 전략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관점을 한 권 안에 배치했다. 무엇이 오를지를 예측하기보다 왜 지금 세계가 이렇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는 '증시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에서 전쟁과 증시의 관계를 역사적 데이터로 풀어낸다. 한국전쟁과 걸프전, 9·11 테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반복된 패턴을 짚으며, 시장은 전쟁 직후 공포로 급락하지만 곧 재건과 기술 혁신의 가능성을 선반영해 반등했다고 설명한다. 박 대표는 이번 미국-이란 충돌 역시 단기 충격을 넘어 AI 슈퍼사이클과 금리 인하라는 흐름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6년 이후 한국 증시가 과거 1980년대와 2000년대의 구조적 강세장과 유사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을 제시하며 반도체·방산·조선·K-콘텐츠를 새로운 시대의 핵심 산업으로 꼽는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국제금융 대기자는 '글로벌 금융시장 전망'에서 전쟁 이후 달라진 글로벌 금융질서를 분석한다. 한 위원은 미국-이란 전쟁을 중동 지역 분쟁이 아니라 달러 체제와 국제 통화 질서를 흔드는 사건으로 본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 달러 패권 약화 가능성까지 연결하면서 환율을 세계 자본 이동의 방향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지표로 설명한다. 탈달러화 흐름과 브릭스 국가들의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짚는다.
김영익 내일희망연구소 소장은 '위기 대응 전략'에서 거시적인 시각으로 세계경제를 해석한다. 김 소장은 현재 세계경제를 부채와 유동성으로 연명해온 체제의 한계 국면으로 규정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반복된 저금리와 양적완화, 팬데믹 이후 급증한 부채 구조, 여기에 AI 버블까지 겹치며 지금 시장이 1929년 대공황과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위기의 특징을 동시에 닮아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인터넷 이후 가장 강력한 성장 서사인 동시에 다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윤남 코어16 대표는 '사이클 투자 전략'에서 시장을 반복되는 흐름으로 읽는다. 조 대표는 산업과 금리, 정책, 기술 혁신이 서로 얽혀 거대한 투자 사이클을 만든다고 설명하며, 지금 세계가 AI 중심의 새로운 슈퍼사이클 초입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다만 모든 사이클은 과열과 조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단기 뉴스보다 장기 흐름 속에서 현재 위치를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병창 교보증권 이사는 '기술적 분석'에서 시장 심리와 차트 흐름을 연결한다. 박 이사는 전쟁 장기화와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도 증시가 강세를 유지하는 배경을 차트와 수급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시장은 항상 미래를 선반영하며 움직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포가 극대화될 때 오히려 구조적 강세장의 출발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선엽 AFW파트너스 대표는 '투자 유망 종목'에서 실제 투자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 대표는 AI 반도체와 방산, 조선, 전력 인프라, K-콘텐츠 등 글로벌 자금이 몰리는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진 독점적 위치,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국내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AI 시대의 핵심 공급망은 결국 한국이 쥐고 있다"고 강조한다.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는 '포트폴리오 전략'에서 고변동성 시대에 필요한 투자 원칙을 제시한다. 박 전 대표는 과거처럼 한 자산이 장기간 우상향하는 시대가 아니라 금리와 환율, 에너지, AI 이슈가 동시에 시장을 흔드는 시대에는 결국 자산배분과 리스크 관리가 핵심이라고 본다. 2026년 한국 증시의 4대 메가트렌드를 분석하며 투자자들이 어떤 자산과 산업에 장기적으로 집중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정유신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시장 전망'에서 디지털 자산의 미래를 다룬다. 정 교수는 비트코인을 단순 투기 자산이 아니라 새로운 금융 질서 변화 속에서 등장한 대체 자산으로 해석한다. 전쟁과 달러 불안, 중앙은행 정책 변화 속에서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기관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전망한다.
서유석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정책 제언'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제도라고 말한다. 서 전 회장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 문제였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과 글로벌 투자자 자금을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거버넌스 개혁 같은 제도 변화가 한국 증시의 레벨업을 가능하게 할 핵심 조건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금과 달러, 미국 국채라는 전통적 안전자산의 삼각형이 더 이상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시장이 지금 '안전'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다시 묻고 있다고 진단한다. 앞으로 투자자는 좋은 종목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와 자본 흐름을 읽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책 기획을 맡은 김수현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주임교수는 "지정학적 충돌과 부채 위기, AI 혁명이 공존하는 대전환 시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투자 기준을 세우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든든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320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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