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장수기업인데... 에어팟 배터리 만들던 독일회사가 한순간에 망한 이유
애플 에어팟 / 애플 홈페이지

애플이 1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유럽의 대표 배터리 제조사를 무너뜨렸다. 바르타 이야기다.

독일 바르타는 24일(현지시각) 슈투트가르트 지방법원에 자율관리 방식의 회생을 포함한 도산 신청 4건을 냈다. 법원은 신청 접수 사실을 확인하고 심사에 들어갔다. 신청 대상에는 지주회사 격인 바르타 AG와 함께 미크로배터리, 뇌르틀링겐 생산법인, 에너지저장장치 부문이 포함됐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가정용 건전지 사업만 이번 절차에서 빠졌다. 바르타는 1887년 설립돼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견뎌낸 독일 산업의 상징 같은 회사다. 그런 기업이 흔들린 결정적 계기를 다름 아닌 애플이 마련했다.

바르타는 수년간 애플의 에어팟에 들어가는 충전식 단추형 배터리 '코인파워'를 만들어 납품했다. 애플은 바르타 미소형 배터리 사업의 최대 고객, 이른바 앵커 고객이었다. 바르타는 이 물량을 감당하려고 바이에른주 뇌르틀링겐 공장을 몇 해 전 대규모로 증설했다. 이 공장은 사실상 에어팟 배터리 생산에 맞춰 특화된 시설이었다. 고도로 전문화된 코인파워 셀은 뇌르틀링겐을 독일 첨단 제조업의 자랑거리로 만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문제는 그 기대가 애플이라는 단일 고객에 통째로 걸려 있었다는 점이다. 애플은 지난 5월 바르타에 공급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앞으로 에어팟용 단추형 배터리를 독일이 아니라 중국 업체에서 조달하겠다는 것이었다. 더 싸게 그리고 더 빨리 공급한다는 이유였다. 애플이 물량을 서서히 줄여오다 끝내 계약을 끊자 오직 에어팟 배터리만을 만들어온 뇌르틀링겐 공장은 존재 이유를 잃었다. 바르타는 곧바로 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올가을 문을 닫는 이 공장에서 약 35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거대 고객을 위해 설비를 늘렸다가 그 고객이 등을 돌리자 투자금은 물론 공장 자체를 회수하지 못하는 구조. 이것이 바르타가 처한 현실이다. 뇌르틀링겐 증설에 쏟아부은 돈은 에어팟 물량이 사라지는 순간 그대로 짐이 됐다. 특정 대기업에 목숨을 건 하청 구조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바르타는 보여줬다.

물론 바르타가 애플 때문에만 무너진 것은 아니다. 이 회사는 이미 공격적인 확장 끝에 재무구조가 흔들렸고, 주식은 2025년 증시에서 상장 폐지됐다. 파산을 막으려 2024년 7월 독일 기업안정화·구조조정법에 따른 구조조정 절차까지 밟았지만, 2년도 안 돼 실패로 돌아갔다. 2024년 매출은 7억9300만 유로, 손실은 6450만 유로에 달했다. 이런 취약한 몸에 애플의 이탈은 결정타로 작용했다.

파산으로 가는 마지막 방아쇠도 애플이 남긴 상처에서 비롯됐다. 채권단이 바르타에 시간을 주며 맺었던 채무 유예 합의는 22일 만료됐다. 도이체방크 등 주요 채권자들은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기로 했다. 바르타에는 당장 수천만 유로 단위의 자금이 필요했지만, 기존 대주주인 스포츠카 제조사 포르셰와 오스트리아 기업인 미하엘 토이너는 추가 자금 투입을 거부했다. 토이너 측은 미소형 배터리 사업 일부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바르타는 도산 신청으로 내몰렸고, 알짜 사업만 떼어내고 나머지는 정리하는 '기업 해체' 수순이 거론된다. 바르타는 전 세계에서 약 4000명, 독일에서만 약 3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상당수가 공장 폐쇄의 직격탄을 맞는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유럽에서는 애플을 향한 비판이 쏟아진다. 애플은 자사 제품을 위해 유럽 협력사에 투자를 유도해놓고 원가 절감이 필요해지자 미련 없이 중국으로 갈아탔다. 협력사가 자신을 위해 쏟아부은 설비와 인력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았다. 거대 기술기업의 공급망 결정 한 번이 유럽 산업 도시 하나의 일자리와 130년 기업의 명운을 좌우한 셈이다.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