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가 되살린 대형마트 규제완화 논의… 소상공인은 “강경투쟁” 예고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대형마트 규제완화 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홈플러스 파주운정점 매장 입구가 쇼핑카트로 폐쇄되어 있다. / 연합뉴스

새벽배송 허용은 물론 의무휴업 규제까지 전향적인 완화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엿보인다. 하지만 소상공인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실력행사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어 논의 방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논의의 도화선이 된 홈플러스는 최근 한 고비를 넘겼다.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는 지난 3일 홈플러스가 최소 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렸다. 홈플러스는 곧바로 즉시항고했고, 메리츠금융그룹이 DIP(회생절차 개시 후 신규자금) 대출을 의결하면서 법원은 지난 21일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가결 기간을 오는 9월 4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22일 "영업 정상화와 구조혁신 작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2000억원 규모의 DIP 대출금이 집행되는 대로 임시휴업 중인 핵심 점포 67곳을 순차적으로 재개장한다는 방침이다. 매출 비중이 높고 회전율이 빠른 생필품부터 우선 확보해 판매하며 현금흐름을 빠르게 회복하겠다는 구상이다. 온라인 사업은 즉시 영업이 가능한 수도권 16개 점포부터 재개하고, 배송업체와 협의해 영업 점포와 배송 권역을 단계적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확보한 자금은 상품대금과 연체된 임대료, 유틸리티 비용 등 매장 운영 필수 비용부터 지급하고, 지연된 직원 급여와 소상공인 미정산 대금도 순차적으로 정산할 예정이다. 다만 임시휴업 중인 부실 점포 37곳은 남은 회생 기간 중 폐점을 진행하기로 해, 회생과 구조조정이 동시에 이뤄지는 모양새다.

대형마트 점유율 8.1%까지 추락

지난 26일 업계에 따르면 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마무리됨에 따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2012년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개정된 현행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 제한을 받는다.

서울 영등포구 한 전통시장. / 연합뉴스

업계는 이커머스가 급성장하는 동안 규제에 묶인 대형마트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했다고 지적한다. 홈플러스 사태 역시 대형마트 산업 전반의 위기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꼽힌다. 실제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19년 20%를 웃돌던 대형마트의 전체 유통시장 점유율은 올해 5월 기준 8.1%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온라인 플랫폼 점유율은 58%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논의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벽배송 등 제한적 완화를, 국민의힘은 의무휴업 자율화와 심야영업 제한 폐지 등 전면적 완화를 각각 추진 중이다. 정부도 새벽배송 허용 등을 포함한 유통산업발전전략 마련을 위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다만 규제 완화가 홈플러스 실적을 즉시 되살릴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하나증권은 지난 22일 보고서에서 새벽배송 규제가 풀려도 실적 반등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마트 쓱닷컴 거래액 약 6조원 중 새벽배송 비중은 8%에 불과하고, 롯데마트는 사업성 문제로 2022년 4월 관련 서비스를 이미 중단한 전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월 2회 의무휴업이 수익성에 더 큰 부담이라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2012년 도입된 의무휴업이 기존 점포 성장률을 5%포인트 낮추고, 업체별 연간 영업이익도 500억원 이상 줄인 것으로 추산됐다.

"새벽배송 열어줘도 이미 쿠팡 세상"

정작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대형마트 업계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다. 배경에는 이미 판이 기울어진 새벽배송 시장의 구조가 자리한다. 이커머스 업계 추산으로 국내 새벽배송 이용자는 약 2000만명에 달하는데, 이 중 75%인 1500만명이 쿠팡 이용자다. 2014년 로켓배송, 2018년 새벽배송을 차례로 내놓은 쿠팡이 물류망 구축에만 9조원가량을 쏟아부어 전국 30개 지역 100여개 물류센터를 촘촘히 깔아둔 결과다.

서울의 한 쿠팡 센터 모습. / 연합뉴스

대형마트라고 물류 기반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모든 점포에 차량 상하차 공간과 후방 창고, 냉장·냉동 설비를 갖추고 있고, 서울·수도권만 따져도 이마트 72개, 롯데마트 59개 점포가 자리한다. 문제는 이 센터들이 점포에 딸린 시설이라 영업시간 규제에 그대로 묶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낮 시간대 '쓱배송'에만 활용되고, 정작 새벽배송은 경기 김포와 광주 두 곳뿐인 별도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센터'가 떠맡고 있다. 하나증권 집계로는 이마트 쓱닷컴 거래액(약 6조원) 중 새벽배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8% 남짓에 그친다. 롯데마트는 아예 새벽배송 자체를 운영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신선식품을 후발주자 대형마트의 승부수로 본다. 산지 소싱망과 상품 구색, 콜드체인 운영 노하우에서 앞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승부수를 던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물류 인프라 추가 투자는 물론 배송 차량과 기사 확보, 야간 인력 투입까지 한꺼번에 뒤따라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 야간 근로에는 통상임금의 50%가 가산되는데, 이 시간대 전담 인력을 새로 채용하면 인건비가 주간의 1.5배로, 기존 점포 인력의 연장 근로로 대체하면 최대 2배까지 불어난다. 배송 단가 역시 새벽 시간대가 주간보다 30%가량 비싼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업황 자체가 어려운 상태에서 채산성이 확인되지 않은 새벽배송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월 2회 의무휴업 완화가 실익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증권도 앞서 22일 보고서에서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2012년 도입된 의무휴업이 기존 점포 성장률을 5%포인트 낮추고, 업체별 연간 영업이익도 500억원 이상 줄인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새벽배송 규제를 풀어봐야 실적 반등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의무휴업이라는 족쇄를 벗는 게 훨씬 체감 효과가 클 것이라는 뜻이다.

소상공인 "생명·생계 지키는 최소 안전망"

하지만 반발도 만만찮다. 소상공인과 노동계는 홈플러스 사태의 본질은 대기업과 사모펀드의 경영 문제이지 규제 때문이 아니라고 맞선다. 특히 대형마트 규제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라며, 새벽배송 규제완화를 강행할 경우 헌법소원 등 강경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야간노동 제한과 의무휴업은 노동자의 생명과 소상공인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합의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며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유통업계와 전문가들은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소비가 전통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해도 전통시장에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5월 발표한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이 시사하는 유통정책의 전환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한 지역의 대형마트 매출은 늘었지만 전통시장 매출 감소는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 동대문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전통상권 매출이 12.79% 증가했다.

실제 소비자 인식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대형마트 영업규제 10년, 소비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소비자는 16.2%에 불과했다. 대형마트가 쉰다고 해서 소비자가 곧장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규제 완화를 둘러싼 여야의 입장차, 소상공인 단체의 강경한 반발, 그리고 규제 효과에 대한 엇갈린 데이터가 뒤섞이면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국회 문턱을 넘을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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