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 번 돈, 결국 다 집으로...한국은행이 내놓은 '분석'

SK하이닉스 직원들에게 지급된 대규모 성과급이 경기 남부 지역의 부동산 매수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경기 이천 거주자들이 동탄과 수원, 용인 등 수도권 주요 지역의 주택을 사들이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이 소비뿐 아니라 주택시장으로도 흘러 들어간 것이다. 앞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규모가 더 커질 경우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국은행은 31일 ‘반도체 수혜 지역의 소비는 어떻게 될까: 지역 미시 데이터로 살펴본 파급 효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기업과 관련된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성과급 지급 이후 소비와 부동산 매입 행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이천에서는 성과급 지급 이후 수도권 부동산을 사들이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신축 아파트가 많은 동탄 지역에서 매입 증가 폭이 컸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성과급 지급 직후 동탄 매입 4배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경기 화성시 동탄이다. 이천에 거주하는 사람이 지난 2월 동탄에서 매입한 부동산은 45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달에는 12건이었다. 단순 건수만 비교하면 약 4배로 늘어난 것이다.

시기를 조금 넓혀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를 비교해도 차이가 뚜렷하다.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이천 거주자의 동탄 부동산 매입은 158건으로 나타났다. 전년 같은 기간 69건과 비교하면 2배를 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현상에 성과급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월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2964%에 해당하는 역대 최대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성과급으로 갑자기 늘어난 소득 가운데 일부가 주택 구입에 사용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천과 동탄의 지리적 관계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천은 SK하이닉스 본사가 위치한 곳이지만 수도권 주요 주거지역과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반도체 기업에서 받은 성과급을 활용해 직장과 생활 여건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수도권 신축 아파트를 매입하는 선택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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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용인·성남에서도 집을 샀다

이천 거주자의 부동산 매입 증가는 동탄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이천 거주자가 수원에서 부동산을 매입한 사례는 76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기간 40건보다 90% 증가했다.

용인에서도 같은 기간 매입 사례가 95건에서 121건으로 늘었다. 증가율은 27.3%였다. 성남 역시 38건에서 53건으로 39.4% 증가했다. 모두 서울과 가까우면서 반도체 산업과 연관성이 큰 수도권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가 있는 충북 청주에서는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청주 흥덕구 거주자의 수도권 부동산 매입은 성과급 지급 이후 크게 늘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이천과 청주의 차이를 지역적 특성에서 찾았다.

이천은 수도권과 가까워 성과급을 받은 뒤 수도권 주택을 추가로 매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청주는 수도권과 거리가 있다. 때문에 청주에 거주하는 반도체 근로자는 수도권보다는 지역 내 주택을 선택하는 경향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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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은 어디에 쓰였나

성과급이 부동산에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반도체 기업이 몰려 있는 이천·화성·평택·청주 흥덕·용인 기흥 등에서는 고가 소비도 크게 늘었다. 대표적인 품목이 자동차와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고가 제품이었다.

실제로 이들 반도체 수혜 지역의 올해 1~6월 테슬라 월평균 인도량은 지난해보다 10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증가율은 77.2%였다. 반도체 근로자가 많은 지역에서 고가 자동차 구매가 전국 평균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 셈이다.

다만 모든 소비가 함께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은행은 성과급 지급 직후 외식 소비가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의 중심이 자동차 등 고가 품목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백화점의 가전과 가구 소비도 증가했지만 마트와 편의점 등 일상적인 생활 소비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의료와 교육비 지출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결국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이 지역경제 전반으로 고르게 퍼졌다기보다는 자동차와 가전·가구, 부동산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자산과 상품에 집중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의미다.

그래도 지역 소비에는 분명한 효과

그렇다고 성과급의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실제 소비 증가 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반도체 종사자 거주 비율이 높은 이천·화성·청주의 월별 소비는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최대 4%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서 ‘반도체 노출도’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이는 특정 지역의 성인 인구 가운데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반도체 노출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반도체 업황과 기업의 성과급에 지역 경제가 더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추산한 반도체 수혜 지역의 소비 효과는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누적으로 약 1조1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말에는 약 1조7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이 직원들의 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소득이 지역 소비로 연결되는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국내총생산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호황이 없었다고 가정했을 때와 비교해 소비 증가가 2025년 GDP를 0.01%, 올해는 0.03% 높인 것으로 추정했다. GDP는 국내에서 일정 기간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모두 합친 지표로, 국가 경제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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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성과급 더 커지면 집값에도 영향 줄까

관심은 앞으로다. 한국은행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성과급이 지난해보다 약 5배 늘어날 가능성을 반영할 경우 GDP 제고 효과가 0.08~0.12%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성과급이 커지면 소비와 투자 규모 역시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특히 성과급이 주택 구입에 얼마나 사용될지가 중요한 변수다. 이번 연구에서 이천 거주자의 동탄·수원·용인·성남 매입이 실제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결과만으로 성과급이 해당 지역 집값을 끌어올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택가격은 금리와 공급량, 대출 규제, 지역별 입주 물량, 투자 수요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특정 기업의 성과급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 집값이 얼마나 오를지 계산하기도 어렵다. 이번 한국은행 연구 역시 성과급 지급 이후 소비와 주택 매입 행태의 변화를 분석한 것이지, 성과급 때문에 특정 지역의 집값이 상승했다고 결론 내린 것은 아니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단순히 기업의 실적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의 소득과 소비, 주택 매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됐다. 특히 반도체 기업과 대규모 생산시설이 몰려 있는 경기 남부 지역은 관련 근로자의 소득 변화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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