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대신 세대교체 택한 KB금융…차기 회장에 이재근 부문장 낙점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KB금융이 안정 대신 변화를 선택했다. 양종희 현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게 거론됐지만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이재근 KB금융지주 글로벌·WM·SME부문장을 선택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연합뉴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1일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대표이사 회장 최종 후보자로 선정했다. 최종 후보군에는 이 후보를 비롯해 양종희 현 회장과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이 포함됐다.

회추위는 후보별 심층 인터뷰를 거쳐 이 후보를 최종 낙점했다. 업무 경험과 전문성, 리더십, 도덕성, 그룹의 비전·가치관 공유, 장·단기 건전경영 노력 등을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추위가 내놓은 핵심 설명은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였다. 현재 성과에 머물지 않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번 인선이 금융권에서 예상 밖 결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KB금융의 실적 때문이다. KB금융은 올해 상반기 3조 884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1% 증가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수수료이익 확대 등에 힘입어 상반기 총영업이익도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다. KB증권의 그룹 순이익 기여도 역시 약 21%까지 높아졌다.

실적만 놓고 보면 기존 체제를 유지할 이유가 충분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회추위가 이 후보를 택하면서 이번 인사는 단순한 최고경영자 교체보다 KB금융의 다음 성장축을 어디에 둘지를 보여주는 결정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 후보는 1993년 주택은행에 입행한 뒤 KB금융지주 재무기획부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 KB국민은행 경영기획그룹대표와 영업그룹대표 등을 거쳤다. 2022년부터 3년간 KB국민은행장을 맡았고 이후 지주에서 글로벌과 자산관리(WM), 중소기업금융(SME) 부문을 총괄했다. 은행 영업뿐 아니라 재무·전략과 비은행 사업을 함께 경험했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됐다.

이 후보는 다음 달 2일 회추위와 이사회 추천 절차를 거쳐 오는 11월 2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임기는 11월 21일부터 3년이다.

“앞으로 3~5년이 명운 가른다”…AI·머니무브·고령화 지목

차기 KB금융 회장 후보로 내정된 이재근 KB금융그룹 부문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금융 신관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 뉴스1

이재근 후보가 최종 후보 선정 이후 가장 먼저 꺼낸 단어는 ‘변화’였다. 이 후보는 14일 서울 여의도 KB금융 신관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KB금융이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주가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자신이 선택된 의미를 “1등에 안주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회사를 둘러싼 구조적 변화로 AI와 디지털 전환, 자본시장으로의 머니무브, 고령화를 제시했다. 향후 3~5년 사이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금융그룹의 경쟁력이 달렸다는 판단이다.

이 가운데 머니무브는 KB금융의 사업 구조와 직접 연결되는 문제다. 예·적금 등 은행 상품에 머물던 자금이 주식과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연금, 자산관리 상품 등으로 이동할수록 은행의 대출과 예대마진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생길 수 있다.

KB금융도 이미 이런 변화에 맞춰 자본시장 부문을 키우고 있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KB증권에 모두 1조 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은행 등에서 확보한 자본을 성장성이 높은 증권 부문으로 다시 배분해 WM과 발행어음, 모험자본 공급 등으로 사업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가 “자본시장 중심으로 바뀌는 변화를 주도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흐름이다. 기존 은행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증권과 자산운용, 기업투자금융(CIB), WM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키우는 작업이 한층 빨라질 수 있다.

이미 방향 잡은 KB…WM·연금·CIB·보험·AI가 5대 축

KB금융 여의도 사옥 / KB금융그룹 제공

이재근 체제의 전략이 기존 KB금융의 방향과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종희 회장 체제에서 준비해 온 중장기 사업을 얼마나 빠르게 실행 단계로 옮기느냐가 중요해졌다.

KB금융은 지난 7월 열린 하반기 그룹 경영진 워크숍에서 2027~2029년 중장기 전략의 5대 핵심 과제로 WM·연금 사업모델 재설계, 중소법인 영업 경쟁력 강화, 그룹 CIB와 자본시장 협업 확대, 보험 경쟁력 강화, 그룹 AI 전환 가속화를 제시했다.

특히 AI는 금융회사들의 비용 구조와 영업 방식까지 바꿀 변수다. 고객 상담이나 문서 작성 수준을 넘어 상품 추천, 리스크 관리, 이상거래 탐지, 투자 분석, 내부 업무 자동화 등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KB금융도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 수단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도구로 확대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이 후보가 향후 3~5년을 AI 대응의 결정적 시기로 규정한 만큼 새 체제에서도 그룹 차원의 AI 전환이 주요 투자 분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 역시 금융회사가 피하기 힘든 시장 변화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금융 소비의 중심도 단순한 예·적금에서 연금과 자산관리, 상속·증여, 요양·돌봄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 후보가 WM 부문을 직접 맡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액 자산가뿐 아니라 은퇴 고객까지 대상으로 한 연금·자산관리 사업 강화도 핵심 과제다.

110조 생산적·포용금융도 이어간다…연말 인사가 첫 시험대

차기 KB금융 회장 후보로 내정된 이재근 KB금융그룹 부문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금융 신관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뉴스1

새 회장이 맡아야 할 또 다른 숙제는 금융회사의 자금을 어디에 공급할지다. KB금융은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을 합해 총 110조원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생산적 금융에 93조원, 포용금융에 17조원을 배정했다. AI와 로봇, 첨단산업 등 성장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기존 가계대출 중심의 자금 운용 구조를 기업과 미래 산업 쪽으로 넓히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 역시 수익 규모만으로 리딩 금융그룹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고객과 투자자,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금융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연말 인사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말 KB국민은행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임기가 잇따라 끝난다.

다만 이 후보는 회추위가 강조한 ‘세대교체’를 단순한 연령 교체와는 구분했다. 나이보다 의사결정의 속도와 책임감, 전문성, 조직원과 호흡할 수 있는 리더십을 기준으로 인사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장 개인의 판단보다 이사회와 관련 위원회, 조직 내 시스템을 통해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도 밝혔다.

조직 운영에서도 ‘개인기’보다 시스템을 강조했다. 회장 한 명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방식보다 계열사와 조직에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프로세스를 통해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결국 이재근 체제의 성패는 이미 정상에 올라선 KB금융을 얼마나 더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렸다. 최대 실적을 지키는 동시에 은행 의존도를 낮추고 AI와 자본시장, 연금·WM, 기업금융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안정적인 성과 속에서 ‘변화’를 선택한 KB금융의 결정이 실제 사업과 조직 개편으로 어떻게 이어질지가 새 회장의 첫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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