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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인텔과 협력해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방안을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사될 경우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웨이퍼 단위의 메모리 칩 생산에 나서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16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미국 오하이오주 반도체 생산시설 일부를 임대해 메모리 칩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논의되는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가능성이 높은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와 인텔이 메모리 고객사인 주요 클라우드 기업과 함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인 단계여서 실제 계약 여부와 투자 방식, 생산 규모, 생산 제품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다.

이번 논의에서 핵심으로 등장하는 ‘메모리 칩’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서버 등이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작업 중인 정보를 임시로 보관하는 데 사용하는 반도체다. 반도체는 전기 신호를 이용해 정보를 처리하는 작은 전자 부품으로, 크게 데이터를 계산하고 제어하는 역할의 시스템 반도체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로 나눌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대표적인 제품이 D램과 낸드플래시다. D램은 컴퓨터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데이터를 빠르게 읽고 쓰는 데 사용되는 메모리다.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라는 특징이 있다. PC의 메모리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서버와 스마트폰 등에도 사용된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스마트폰의 저장공간이나 SSD, USB 메모리 등에 널리 사용된다. 같은 메모리 반도체라도 D램은 빠른 데이터 처리에, 낸드는 장기간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는 차이가 있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중요성이 크게 커진 제품은 HBM이다. HBM은 ‘고대역폭 메모리’라는 뜻으로,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고 이를 연결해 일반적인 메모리보다 한꺼번에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인공지능(AI) 연산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사용되는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AI용 데이터센터에서는 GPU가 짧은 시간에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GPU에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가 중요하다. HBM은 이런 용도에 맞춰 데이터 전송 속도와 대역폭을 높인 메모리 제품이다.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생산기지 확대를 검토하는 배경에도 AI 산업 성장과 HBM 수요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 거론된 ‘미국 내 메모리 칩 생산’은 현재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추진하는 HBM 사업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생산에서 ‘웨이퍼’는 메모리 회로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얇고 둥근 실리콘 기판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는 이 웨이퍼 위에 회로를 형성한 뒤 여러 공정을 거쳐 하나의 칩으로 잘라낸다.
반면 ‘패키징’은 만들어진 반도체 칩을 실제 제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보호하는 후공정이다. HBM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여러 D램을 쌓아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 중요하다. 즉 웨이퍼에서 D램을 만드는 과정과, 만들어진 D램을 여러 개 쌓아 HBM으로 완성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단계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약 40억 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시설은 2029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한다. 한국 등에서 생산한 D램을 미국으로 가져와 HBM으로 가공하는 시설이어서 미국에서 메모리 칩 자체를 생산하는 반도체 팹과는 성격이 다르다.
‘팹’은 반도체 제조공장을 뜻하는 용어다. 웨이퍼 위에 미세한 회로를 새기고 여러 층의 반도체 구조를 만드는 전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이번에 SK하이닉스가 인텔 오하이오 시설 일부를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기존 패키징 시설을 활용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전공정 생산기지를 확보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데도 높은 비용이 들어간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재와 장비, 부품 등 공급망의 상당 부분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어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물류와 조달 비용도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 내 생산을 검토할 만한 이유는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해외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에 대한 관세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2일 반도체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지만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을 경우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사업을 확대할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회사는 지난 7월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통해 나스닥에 상장했으며, 인디애나주에서 HBM 첨단 패키징 공장도 건설하고 있다. ADR은 해외 기업의 주식을 미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증권으로, 미국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이번 협상이 실제 생산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 내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D램이나 낸드플래시 가운데 어느 제품이 대상이 될지, 첨단 HBM과 관련된 생산까지 포함될지는 현재 협의 내용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기술 보호 문제도 변수다. 첨단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는 기업이 오랜 기간 축적한 공정 기술과 생산 노하우가 활용되기 때문에 해외 생산시설을 구축할 경우 핵심 기술의 이전과 보호 문제가 함께 검토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계획과 관련해 어떤 결정이든 기업의 재량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국가 핵심 기술과 관련된 경우 산업기술보호법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 핵심 기술은 국가 경제와 산업 경쟁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별도의 보호가 필요한 기술을 말한다.

SK하이닉스는 아직 미국 내 메모리 생산을 확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을 통해 메모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현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인텔도 이번 보도에 대해 사실로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인텔은 관련 내용을 ‘추측’이라고 표현하며 구체적인 논평을 거부하면서도 오하이오에 대한 투자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텔은 오하이오주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오랫동안 추진해왔다. SK하이닉스가 이 시설의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이 실제 협력으로 이어질 경우 기존에 계획된 생산시설을 활용하면서 미국 내 메모리 생산 기반을 확보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이번 협상에는 미국의 반도체 관세 정책과 현지 생산 확대 요구,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사업 전략, 인텔의 생산시설 활용, 클라우드 기업의 AI용 메모리 수요, 한국의 첨단기술 보호 문제가 함께 얽혀 있다. 실제 공장 임대와 합작법인 설립 여부, 생산 제품과 투자 규모 등은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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