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1985' 실제 모델…'고문기술자' 이근안 사망, 향년 88세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 기술자'로 이름을 날린 이근안 전 경감이 2012년 12월 1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연회장에서 열린 자신의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이 숨졌다. 향년 88세.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권인숙 양(전 의원) 성고문 사건과 함께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발생한 3대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인 김근태 씨(전 의원) 고문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26일 경기일보에 따르면 그는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다가 전날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전기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잇따르며 ‘고문 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남민전 사건,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 등 다수 공안 사건에 연루됐고,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됐다. 당시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1981년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고문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90kg의 거구에 떡 벌어진 어깨, 구릿빛 얼굴, 핏발 선 눈, 굵은 목, 솥뚜껑 같은 큰 손을 지닌 우락부락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근태 전 의원은 고문 후유증 등으로 2011년 64세로 별세했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가 진행되면서 이근안은 1988년 수배됐고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고문 및 불법 구금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이후 이근안은 목사가 돼 종교 활동을 하며 공개 간증 등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책임 있는 참회를 요구해 왔다.

그는 생전 자서전에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해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또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묘사된 고문 행위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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