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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나들이를 떠나는 이 계절. 여전히 집 안에서 가족의 병과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가족 돌봄의 무게를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간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사건이 있다. 2021년 '대구 간병 살인' 사건이다.
당시 20대 아들 A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다 결국 그를 방치해 숨지게 했다. A씨의 아버지는 2020년 9월부터 심부뇌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치료비 부담 등의 문제로 A씨는 이듬해 4월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서 돌봤다.
A씨의 아버지는 혼자 움직일 수 없었고, 코에 삽입한 호스를 통해 위로 음식물을 공급하는 경관 급식 형태로 밥을 먹어야 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서는 2시간마다 체위 변경이 필요했다. 대소변을 가리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으며 폐렴으로 인한 호흡곤란을 막기 위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중증 상태였다.
A씨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퇴원 이튿날부터 아버지에게 처방약을 주지 않았다. 치료식도 정상적인 공급량보다 적게 줬다. 결국 A씨의 아버지는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이 발병해 사망에 이르렀다.
A씨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아버지를 퇴원시킨 바로 다음 날부터 기약도 없이 2시간마다 한 번씩 아버지를 챙겨주고 돌보면서 살기는 어렵고, 경제적으로도 힘드니 돌아가시도록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2000만 원의 병원비와 수술비를 감당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식사도 일하던 편의점의 폐기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쌀을 살 돈이 없어 친척에 2만 원을 빌려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어려움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존속살해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으나 어린 나이와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상황 등을 감안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이를 확정했다.
사건은 정치권에서도 조명됐다. 2021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A씨의 사건을 두고 "묵묵히 현실을 열심히 살았을 청년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립의 기회, 자기든 아버지든 둘 중 한 명은 죽어야만 끝나는 간병 문제의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 간병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3월에는 전북 임실에서 치매를 앓던 90대 노모와 60대 아들, 40대 손자 등 3대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안에서는 '미안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60대 아들 등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치매를 앓는 노모를 직접 돌봐왔던 아들은 끝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지난해 10월에는 70대 아버지가 뇌병변과 지적 장애를 앓던 40대 딸을 34년간 돌보다 질식시켜 숨지게 했다. 범행 후 친부 역시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재판부는 친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간병 살인은 오랜 시간 환자를 돌보던 가족 등의 보호자가 간병 부담으로 인해 환자를 살해하거나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뜻한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서 지난해 발간한 '간병살인의 실태와 특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살해 치사를 포함한 국내 가족 간병 살인은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총 228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17년간 연평균 13건 이상 발생한 셈이다. 해당 보고서가 유죄로 확정된 수집 가능한 형사판결문을 분석 자료로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발생 건수는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012년까지는 연간 5~7건의 간병살인이 선고됐다. 2013년부터는 그 수가 대폭 늘어 2023년까지 연평균 17.5건 나타났다. 2013년 15건, 2014년 20건, 2015년 19건이었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에는 30건으로 조사 기간 중 가장 많은 간병 살인 판결이 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을 기점으로 수가 늘어난 것에는 관련 판결문이 일반에 공개돼 사건 탐지가 가능해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3년 이후에도 간병 살인 선고 건수가 꾸준히 늘었다는 점에서 돌봄 부담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형별로는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친자 간병살해가 96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의 42.1%를 차지한다. 뒤이어 부부 간병살인이 72건(31.6%), 친장(장애 자녀) 간병살인이 44건(19.3%)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 문제도 대두된다. 간병 살인 피해자로는 60대 이상이 66.2%를 차지했고, 가해자 역시 60대 이상이 73.1%로 확인됐다.
간병살인의 절대다수인 94.3%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동거하며 발생했다. 특히 홀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 환경이 범행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간병 부담을 덜 수 있는 다른 가족의 도움 여부가 확인된 사건(198건) 중 75.8%가 홀로 돌봄을 감당하는 '독박 간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가해자의 대부분인 74.7%는 경제활동이 없었다. 보고서는 "간병 중 경제활동을 병행하는 경우는 25.3%에 그쳤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는 가족 간병인들이 "독박 간병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부담, 정서적 피폐함" 등의 삼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 공적 서비스 영역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가족 간병살인은 매해 반복되며 그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를 규정하는 법적 개념도 따로 없다. 가족 돌봄 과정에서 발생한 살인은 존속살인 등으로 구분된다. 공식적인 간병 살인 통계 역시 부족해 체계적인 분석 및 대응책 마련에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경우 2007년부터 '개호(介護) 살인'이라는 용어로 간병 살인 통계를 집계하고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서 간병 과정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등을 따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의 공백은 제도의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간병 현실을 국가가 직면하고 그 규모를 정확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돌봄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적 고통으로 남는다.
가족 간병 보호자들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단연코 돈이다. 보건의료노조가 2023년 발표한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간병을 경험한 성인 남녀 1000명 중 96%가 병원비 외 간병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다. 하루 동안 간병인을 고용하는 데 10명 중 4명꼴로 11만 원가량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보고서'에서도 2023년 기준 간병인을 고용한 가구의 월평균 간병비는 370만 원, 하루 12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병원비와 생활비까지 더해지면 '간병파산'이라는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게 된다.
비용만 문제 되는 것도 아니다. 환자를 밀착해서 돌봐줄 간병인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움이 따른다. 동일한 한국은행 보고서에서는 돌봄 서비스직 노동공급 부족 규모가 2022년 19만 명에서 2042년까지 최대 155만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 정부는 올해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을 전국 229개 모든 시·군·구에서 시행했다. 핵심은 '살던 곳에서의 돌봄'이다. 노쇠·장애·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의 사람이 거주지에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 가족 돌봄의 부담을 줄이고 돌봄 제도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보건복지부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정 문제를 제기한다. 올해 통합돌봄 예산은 914억 원이 책정됐다. 이 중 인건비와 제도 기반 구축비 등을 빼면 실제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사업비가 62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229개 시·군·구에 나누면 지자체별 평균 3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예산이다. 이에 지역 재정에 따라 돌봄 서비스 수준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 시행에 대한 인지도 역시 아쉬움을 안긴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지난 12일 발표한 '통합돌봄 인식 및 돌봄 정책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성인 남녀 2000명 중 통합돌봄 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92%에 달했다. 그러나 정작 응답자 중 25%만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을 알고 있었다. 10명 중 7명은 제도 시행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다. 돌봄과 미래는 "정책 홍보와 제도 안내가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00년도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불과 25년 만에 도달한 것이다. 노화에 따른 여러 질환을 안고 살아갈 고령 인구는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간병은 어느 가정에나 닥칠 수 있는 일이 됐다. 돌봄이 개인 문제를 넘어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들여다봐야 할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우리 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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