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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의 젖줄이자 청춘들의 순수한 열정이 마주하는 공간인 고교야구 무대가 때아닌 ‘혐오의 배설구’ 로 전락했다. 최근 발생한 배재고등학교와 광주제일고등학교(이하 광주일고) 간의 경기에서 터져 나온 부적절한 응원 구호는 단순한 학생들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수위와 사회적 파장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른바 ‘스타벅스 구호’ 논란으로 명명된 이번 사태는 상대 학교의 역사적 배경과 특정 지역을 악의적으로 비하하고 조롱하는 맥락을 담고 있어, 경기장을 찾은 야구팬들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까지 깊은 충격과 불쾌감을 안겼다.

과거 고교야구 관중석은 모교의 명예를 걸고 펼쳐지는 정정당당한 응원전의 장이었다. 목이 터져라 교가를 부르고, 선수의 안타 하나에 함께 울고 웃던 공동체적 유대감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모습은 달랐다.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스포츠맨십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직 상대를 모욕하고 굴복시키려는 파괴적인 언어만이 관중석을 지배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고교야구를 주관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경기 시작 전 ‘부적절한 응원 행위를 금지한다’는 경고성 안내 조치를 의무화하는 등 다급히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특정 학교 응원단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혐오 문화가 학원 스포츠라는 가장 순수해야 할 교육의 장마저 오염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배재고·광주일고 사태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현재 청소년층이 소비하고 있는 디지털 하위문화의 실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등학생들이 경기장에서 배설한 조롱의 언어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나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등에서 수년간 재생산되며 유희화되었던 특정 지역 비하 발언과 혐오 표현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현대 청소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이들은 알고리즘의 인도에 따라 자극적인 조롱과 혐오 콘텐츠를 여과 없이 흡수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타인을 비하하고 멸칭을 사용하는 행위는 이들에게 더 이상 죄책감의 대상이 아닌, 일종의 놀이이자 유행으로 소비된다. 문제는 온라인 세계의 가상 현실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 잔인한 유희가 오프라인 공간, 그것도 공적인 학교 스포츠 경기장이라는 장소로 필터링 없이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사회학계에서는 이를 혐오의 감각화 또는 오프라인 전이 현상으로 분석한다.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을 타자화하고 공격하던 청소년들이, 군중심리에 편승해 오프라인에서도 동일한 행동을 감행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배재고 구호 논란은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혐오를 학습하고 체화한 청소년들이 죄의식 없이 공적 공간에서 이를 표출한, 예견된 사회적 참사다. 상대를 무너뜨려야 할 적이자 조롱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스포츠가 가진 교육적 기능은 완전히 마비된다.
이번 배재고 사태가 더욱 씁쓸함을 남기는 이유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교야구 무대에는 청춘들의 재기발랄함과 지역적 특색을 살린 유쾌한 응원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재고 사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최근 야구 커뮤니티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과거의 사례들은 학원 스포츠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해학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난해 8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휘문고등학교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부산 경남고등학교 선수들의 우승 소감은 큰 화제를 모았다. 우승 직후 카메라 앞에 등장한 경남고 선수는 서울의 명문 휘문고를 향해 악의 없는 패기를 내뿜었다.
이 한마디에는 상대를 향한 멸시나 비하가 없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 도시 서울의 상징인 ‘한강’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이 자란 해양 도시 부산의 ‘바다’라는 장소성을 활용해 자신들의 승리를 위트 있게 자축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메시지였다. 이는 야구팬들에게 진정한 청춘의 낭만이자 패기로 받아들여지며 찬사를 받았다.
지역 간 건전한 라이벌 의식을 유쾌한 설전으로 풀어낸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청룡기 대회에서 맞붙은 대구상원고와 부산고의 출사표 역시 백미였다. 대구상원고 야구부가 대구 특유의 혹독한 더위를 비유해 “마! 뜨겁나?”라고 선제 도발을 감행하자, 부산고 야구부는 부산 사나이들의 거침없는 기세를 담아 “마! 안 뜨겁다! 들어온나!”라고 맞받아쳤다. 대구의 열기와 부산의 기세가 마주한 이 대화에는 스포츠의 긴장감과 청소년 특유의 재치가 황금비율로 섞여 있었다.
대전고등학교 사례는 해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대전고 야구부는 경기 전 상대 팀이었던 성남 야탑고등학교를 향해 대전의 대표적인 명물을 앞세워 장난스러운 경고를 날렸다.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함마저도 ‘성심당 빵을 맛보고 가라’는 지역적 환대의 정서로 버무려내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 대신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이러한 응원과 도발은 경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훌륭한 촉매제이자, 고교 스포츠를 단순한 승패의 결과물이 아닌 하나의 지역 축제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황금사자기 결승전 당시 청담고등학교의 3학년 담임교사가 보여준 응원전은 감동의 정점을 찍었다. 반 아이들의 이름이 쭉 적힌 티셔츠를 입고, 제자들을 위해 관중석 맨 앞에서 온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던 스승의 모습은 중계방송 해설진조차 “내일이 없는 것처럼 즐기고 있다”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내야 할 고교야구의 본연의 가치다. 교육자와 학생 그리고 선수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서로를 격려하고 삶의 에너지를 나누는 축제의 장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아름답던 고교야구 관중석이 순식간에 혐오의 언어로 오염되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안일한 행정처리와 일선 학교들의 교육적 방임을 꼬집는다. 배재고 사태 이후 협회가 내놓은 ‘경기 전 부적절한 응원 금지에 대한 사전 안내 의무화’ 조치는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마이크를 통해 “혐오 발언을 하지 말라”고 고지하는 것만으로 청소년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혐오의 감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이는 마치 교내 폭력이 발생하자 “폭력을 쓰지 말라”는 표어를 벽에 붙이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의 근원은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과 관중석의 학생들이 왜 상대를 존중해야 하는지, 스포츠맨십이 왜 승리보다 중요한 가치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학교 현장에서 체육 교육과 학원 스포츠는 오랫동안 입시와 성적이라는 도구적 가치 하에 종속되어 왔다. 엘리트 체육은 프로 드래프트와 대학 진학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었고, 일반 학생들에게 학교 스포츠는 그저 스트레스를 발산하거나 구경하는 일회성 오락에 그쳤다. 상대를 배려하고, 패배를 품격 있게 받아들이며, 승리했을 때 오만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스포츠 시민성 교육’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더욱이 학교 당국 역시 학생들의 관중석 응원 문화를 제대로 지도하거나 모니터링하지 않고 방임해 왔다. 응원단이라는 자치 조직의 자율성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아이들이 어떤 구호를 만들고 어떤 언어로 상대를 공격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어른들의 무관심과 협회의 행정 편의주의적 태도가 혐오라는 괴물을 관중석에서 키워냈다고 볼 수 있다.
배재고 사태의 피해 학교인 광주일고의 이규연 교장이 던진 메시지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이 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분노나 보복의 언어 대신 다음과 같은 성숙한 당부를 남겼다.
피해를 입은 학교의 교육 수장이 보여준 이 절제된 언성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타다. 혐오를 혐오로 맞받아치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이를 교육적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혜안이다.

이제는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첫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교육 당국은 단순히 응원을 규제하는 수준을 넘어, 대회 참가 학교들을 대상으로 한 스포츠맨십 및 반혐오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뿐만 아니라 관중석에 앉는 학생 응원단 역시 스포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사전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학교 현장에서의 시민성 교육과 체육의 결합이 시급하다. 스포츠는 공정한 규칙 속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훌륭한 민주시민 교육의 장이다. 승리라는 결과물에 집착해 과정의 정의와 상호 존중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닌 야만에 불과하다. 학생들이 스스로 건강하고 창의적인 구호를 개발하고 유쾌한 라이벌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성세대의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관중석 문화는 결국 기성 사회가 보여준 분열과 갈등, 혐오 정치의 거울일 뿐이다. 동문회와 학부모 등 성인 관람객들부터 경기장에서 품격을 지키고, 상대 팀의 멋진 플레이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강이 바다를 이길 수 없냐며 부산으로 놀러 오라던 경남고 소년의 외침에는 세상을 품을 듯한 거대한 호연지기와 청춘의 낭만이 있었다. 더위를 이겨내고 들어오라던 부산고와 상원고의 설전에는 서로의 땀방울을 인정하는 뜨거운 동료애가 있었다. 성심당 빵을 먹고 가라던 대전고의 도발에는 승패를 초월한 인간적인 유머와 환대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우리가 고교야구에 열광하고 청소년들의 스포츠에 눈물 흘리는 이유는, 그곳에 프로 스포츠의 냉혹한 자본 논리나 우리 사회의 삭막한 생존 경쟁과는 다른 순수함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혐오와 조롱의 언어로 얼룩진 관중석을 방치하는 것은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배재고·광주일고 사태가 남긴 상처는 깊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스포츠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이제 아이들 손에서 혐오의 마이크를 내려놓게 하고, 그 자리에 상대를 향한 리스펙트와 건강한 청춘의 함성을 채워 넣어야 한다. 다시금 전국 고교야구 대회 관중석에 조롱 대신 유쾌한 해학이, 멸시 대신 따뜻한 격려가 울려 퍼지는 그날을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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