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속보도 먹히지 않는 시장… 개미들은 이미 지쳤다
위키트리 전국총괄본부장 최학봉 선임기자. / 사진=위키트리DB

"또 떨어졌네."

코스피가 급락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크게 흔들려도 개인투자자들은 예전처럼 놀라지 않는다. 한때는 급락 속보 한 줄에도 투자자들이 술렁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시장이 안정돼서가 아니다. 반복되는 급등락 속에서 놀랄 힘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위키트리는 그동안 기자수첩을 통해 국내 증시의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소수 대형주 중심의 쏠림 현상, 반복되는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일상이 된 시장을 두고 정상적인 투자시장의 모습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이번 혼란 역시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다. 누적된 구조적 위험이 현실로 드러난 결과다.

논란의 중심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국내 투자자의 해외 자금 유출을 막고 투자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특정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허용했다. 동일 종목 편입 한도를 확대하고 레버리지 운용 범위도 넓혔다.

하지만 ETF의 핵심인 분산투자 원칙은 크게 약화됐다.

당국 역시 위험성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교육과 기본예탁금, 상품명 제한 등 별도의 보호장치를 마련한 사실 자체가 해당 상품의 위험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문제는 결과다.

시장이 흔들리자 레버리지 상품은 본주보다 훨씬 큰 변동성을 보였고, 개인투자자들의 손실 역시 확대됐다. 반등을 기대하며 추가 매수에 나선 투자자들 상당수는 더 큰 손실을 떠안았다.

물론 투자의 최종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그러나 고위험 상품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제도를 설계한 정책당국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상품을 선택한 책임이 있다면, 정부와 금융당국에는 그 상품을 시장에 공급한 정책적 책임이 따른다.

최근 정치권과 시장 일각에서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어떤 정책적 판단과 검토를 거쳐 제도가 추진됐는지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사실이 아니라면 그 역시 분명히 설명하면 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은 얼마나 검토됐는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거래가 집중될 경우 시장 전체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분석했는지, 개인투자자의 손실 확대 가능성을 충분히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도 정책당국의 설명이 필요하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다.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가 아무리 선의였더라도 결과적으로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개인투자자의 손실을 확대했다면 정책 효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위키트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고했다.

기업의 가치보다 하루 주가 등락에 베팅하는 시장은 장기투자를 키우기 어렵고, 과도한 레버리지와 파생상품 확대는 시장의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 시장에서 들리는 것은 기대가 아니라 체념이다.

급락 속보에도 놀라지 않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손실이 발생해도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속보가 더 이상 충격을 주지 못하는 시장은 건강한 시장이 아니다.

정부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지수 몇 포인트가 아니라 시장에 대한 신뢰다.

정책 결정 과정이 적절했다면 관련 검토 내용과 근거를 국민 앞에 설명하면 된다. 반대로 정책적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 역시 뒤따라야 한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개인투자자만 손실을 떠안는 시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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