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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 '카리나 닮은꼴' 주당 여친에 안절부절 (연애전쟁)

위키트리
배우 하영의 증조부 관련 친일 행적 논란이 크게 불거지면서 자신의 성씨와 본관을 조회해 가문 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명단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중심으로 '친일파 스캐너'라는 이름의 웹 서비스가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퍼지는 중이다. 한 개인 개발자가 만든 해당 사이트는 이용자가 성씨와 본관을 입력하면 해당 문중에 속한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대조해 한 화면에 보여준다.

제공되는 정보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공적 정보 1만 9,059명과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친일파 명단 1,600명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데이터를 기초로 제작됐다. 여기에 위키데이터와 위키백과의 본관 정보를 연계해 정확성을 더했다.
실제로 검색창에 배우 하영의 본관인 '순흥 안씨'를 넣으면 도산 안창호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25명의 독립유공자와 함께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 및 안석주, 안익태 등 친일 인사 3명이 함께 조회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서비스가 이처럼 폭발적인 화제를 모은 바탕에는 배우 하영의 가문 내력 관련 발언 파문이 자리 잡고 있다. 하영은 한 방송에 출연해 자가를 '4대째 의사 집안'이라 소개했으나, 이후 증조부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한 사실 등이 확인되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하영은 '역사의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문을 경솔하게 언급했다'고 인정하며 자필 사과문을 게재한 바 있다.
이후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여부 논쟁이 과열되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직접 입장문을 냈다. 연구소 측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두고 '조상의 식민 협력 이력에 대한 자성 없이 발언해 대중에게 상처를 남긴 역사적 성찰의 부재'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정보에 대한 문의가 빗발침에 따라 안상호의 실제 행적과 대정친목회의 성격, 전문직 인사의 친일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정리해 공식 발표했다.

연구소 조사 결과, 전문직 의사였던 안상호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명확한 부일 협력 행적이 남아 있었다. 대한제국 관립일어학교 및 도쿄 자혜의원 의학전문학교를 나온 그는 의료 행위에 그치지 않고 정치와 사회 활동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당한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결성된 국민대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연구소는 비록 추도회가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추진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 통치 기관과 친일 단체에도 적극 참여했다. 경성부윤의 자문 역할을 하던 경성부 협의회원 관선 임명직을 세 차례 지냈고, 식민지 금융 수탈 기구인 경성 종로금융조합의 조합장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경성신사의 신도 대표인 씨자총대를 맡거나, 내선융화를 내세운 대정친목회 및 반일 운동을 탄압하던 동민회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안상호의 사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료로는 1918년 10월 매일신보 기사인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이 거론된다. 해당 기사에서 안 씨는 "집에 조선 옷이 단 한 벌도 없으며 조선 사람과 교류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등 일제의 동화 정책을 완벽히 수용하고 조선말조차 쓰지 않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름만 올렸을 뿐'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연구소는 강하게 반박했다. 안 씨가 활동한 대정친목회는 이완용과 민영휘, 조중응 등 대표적 친일파가 주도하고 조선인 재력가와 관료들이 결성한 단체다. 연구소는 이 단체가 1910년대 무단통치기에 설립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시체제기 강제 동원 단체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제 당국과 조선인 기득권을 잇는 통로이자 삼일운동 이후 독립 의지를 꺾는 협력 기구로 작동했기 때문에 이곳의 평의원으로 참여한 것은 분명한 친일 행위라는 게 연구소의 최종 지적이다.
현재 온라인에서는 사용자들이 직접 가문의 본관을 검색하고 소셜 미디어에 인증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걱정하며 찾아봤는데 친일파가 없어 다행이다", "우리 역사를 다시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다" 등의 반응을 나타내는 중이다.
다만 개발진은 검색 결과가 개인의 직계 핏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당부했다. 사이트 공지사항을 통해 "동일한 본관이라고 해서 반드시 직계 혈족이거나 친족 관계인 것은 아니며, 단일 본관 내에도 수십만 명의 성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헌법상 연좌제 금지 원칙에 따라 조상의 과거 행실이 후손의 도덕적·법적 책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밝히며 과도한 비난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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