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실종 관련 CCTV 118대…그런데 경찰이 요청했을 땐 이미 '삭제'됐다

제주 장기실종자 장미란(37)씨 사건과 관련해 실종 추정 시점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인근 CCTV 영상 118대가 보존기간 만료로 모두 삭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해당 CCTV 영상을 열람해달라고 제주도에 요청한 시점은 장씨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날로부터 98일 뒤였다.

23일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씨의 실종 장소로 알려진 제주시 한림읍 일대에는 당시 방범용 CCTV 111대와 제주도 자치경찰단 교통정보센터의 교통정보수집용 카메라 7대가 운영되고 있었다.

문제는 장씨의 실종 추정 시점이 포함된 영상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들 CCTV 118대의 영상 보존기간은 30일이다. 5월 12일부터 20일까지 녹화된 영상은 6월 11일부터 19일 사이에 순차적으로 자동 삭제됐다.

제주도에서 실종된 장미란 씨 / 인스타그램 캡

장씨가 집을 나선 시점은 5월 12일 늦은 오후부터 13일 새벽 사이로 추정된다. 따라서 장씨가 사라진 직후에는 관련 CCTV 영상이 상당 기간 남아 있었다. 최초 실종 신고가 접수된 5월 15일을 기준으로 해도 당시에는 5월 12~13일의 영상이 삭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경찰의 CCTV 열람 요청은 훨씬 뒤에 이뤄졌다.

제주서부경찰서가 제주도에 방범용 CCTV 영상 열람을 요청한 공문은 지난 19일 발송됐다. 공문에는 5월 13일 오전 1시부터 발견 시점까지 제주시 일대에 설치된 모든 방범용 CCTV 녹화 영상을 열람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이 열람을 요청한 이유는 실종 사건 수색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제 요청 시점에는 장씨의 실종 추정일로부터 98일, 최초 신고일로부터 96일이 지난 뒤였다. 영상이 전량 삭제된 6월 19일을 기준으로도 경찰의 공식 열람 요청은 61일 뒤였다.

결과적으로 장씨의 초기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영상 자료가 수사기관의 요청이 이뤄지기 전에 사라진 셈이다.

CCTV 영상이 자동 삭제된 것 자체는 저장장치의 운영 방식에 따른 결과다. 제주도는 해당 영상이 별도로 보존 요청되지 않는 한 보존기간 3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핵심은 영상이 왜 삭제됐느냐보다, 장씨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된 뒤 경찰이 관련 영상을 확보하거나 보존 요청을 했느냐에 있다.

실종 사건에서 CCTV는 초기 수색의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실종자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장소와 시간, 이동 방향을 확인하고 이후 어느 길로 이동했는지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CCTV를 연속해서 확인하면 도보 이동이나 차량 탑승 여부 등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장씨처럼 장기간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 사건에서는 초기 며칠 동안의 동선이 이후 수색 범위를 정하는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처음부터 CCTV를 확보해 분석했다면 이후 수색에 활용할 수 있었던 단서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커진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수사가 늦어진 사건으로만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초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장씨와 실제 연락한 사실이 없음에도 연락해 안전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보고하고 사건을 종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후 이 경찰관의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수사에 착수했고, 지난 22일 해당 경찰관을 긴급체포했다.

장미란 씨 수색에 나선 경찰 / 뉴스1

앞서 장씨는 5월 12일 늦은 오후부터 13일 새벽 사이 한림읍 자택을 혼자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다. 장씨와 함께 생활하던 남자친구는 5월 15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당시 야간 근무자로 신고를 접수한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A 경장은 장씨와 직접 연락해 안전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상사에게 보고한 뒤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이 관련 통화기록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장씨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면서 허위 종결 의혹이 불거졌다.

A 경장이 사건을 종결하면서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관련 자료까지 삭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번 CCTV 자료 공개는 이 같은 초동수사 논란에 새로운 문제를 더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됐던 당시에는 장씨의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남아 있었지만, 수사 과정에서 이를 적시에 확보하지 못한 사이 보존기간이 지나 영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동훈 의원 / 뉴스1

한편 한동훈 의원은 “5월 15일 최초 신고 당시에는 118대 영상이 전부 보존돼 있어 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상태였다”며 경찰의 초동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현행 시스템에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도 내놨다. 형사사법 절차가 모든 수사관의 성실성과 판단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한 의원이 언급한 형사사법 제도 개편과 보완수사권 문제는 장씨 사건의 CCTV 확보 여부와 직접 동일한 문제로 볼 수는 없다. 실제 CCTV 확보 책임과 당시 경찰의 업무 처리 과정, 수사기관 내부의 지휘·감독 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더욱 논란이 되는 대목은 A 경장이 장씨 사건 외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실종 사건을 처리했다는 의혹이다.

A 경장은 지난달 2일에도 60대 남성 실종 사건을 장씨 사건과 유사한 방식으로 허위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남성은 실종 신고 이후 51일 만에 제주 모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두 사건의 처리 과정에 공통점이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단순한 업무상 실수인지, 의도적인 허위 보고가 있었는지, 또 사건 종결 과정에서 상급자의 확인이나 다른 경찰관의 검토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도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제주경찰청은 A 경장을 직무유기와 공전자기록 위작 및 동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혐의가 법원에서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구체적인 책임 범위는 향후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장씨 사건의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찰은 가출 가능성뿐 아니라 강력범죄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장씨의 행방을 찾고 있다. 전담 수사팀을 꾸려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확보할 수 있는 물적 증거가 줄어드는 것은 수사기관으로서도 부담이다. CCTV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되는 자료는 사건 초기 확보가 더욱 중요하다.

이번 사건이 남긴 가장 큰 문제 역시 여기에 있다. CCTV 118대의 영상이 자동 삭제된 것이 규정 위반인지 여부와 별개로, 실종 신고가 접수됐을 당시 영상 확보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실종자의 가족 입장에서는 당시 존재했던 영상이 사라진 뒤에야 경찰이 열람을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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