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실종 부실 대응 논란 뒤… 제주경찰서 앞에 등장한 뜻밖의 CCTV

제주 경찰의 장기 실종자 부실 수사 논란을 풍자한 공익광고가 제주서부경찰서 앞에 등장했다. 실제 촬영 기능이 없는 CCTV 모형과 ‘국민이 지켜봅니다’라는 문구를 활용해 공권력에 대한 시민 감시와 견제 필요성을 강조한 캠페인이다.

제주서부경찰서 앞에 경찰을 감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CCTV 공익광고가 설치돼 있다. /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공익광고 전문가 이제석 씨가 운영하는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지난 30일 제주시 한림읍과 제주서부경찰서 일대에서 CCTV를 활용한 게릴라성 공익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대표는 3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제석 광고 아카이브’를 통해 약 3분 23초 분량의 캠페인 영상을 공개하며 설치 과정과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영상에는 이번 실종 신고 허위 종결 사건이 발생한 제주서부경찰서 정문을 향해 CCTV 모형을 설치하는 모습이 담겼다. CCTV 뒤편에는 시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패널을 배치했다. 광고에는 ‘국민이 지켜봅니다’와 ‘더 큰 힘엔, 더 큰 견제’라는 문구가 사용됐다.

이 대표는 평소 국민을 감시하고 범죄 예방에 활용되는 CCTV를 이번에는 공권력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익숙한 CCTV를 활용해 경찰 역시 시민의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대표는 “특정 개인을 공격하기보다 시스템의 허점과 책임 문제를 풍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캠페인에 사용된 CCTV는 실제 촬영이나 녹화, 개인정보 수집 기능이 없는 모형이며 설치물은 캠페인이 끝난 당일 자진 철거됐다.

지난 30일 제주서부경찰서 앞에서 진행된 이제석 광고연구소의 공익캠페인 모습. /유튜브 ‘이제석 광고 아카이브’ 캡처

실종 104일 만에 발견…경찰 부실 대응 논란

이번 캠페인은 지난 5월 실종 신고된 30대 여성 장 모 씨 사건을 둘러싼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을 계기로 마련됐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은 장 씨 사건을 허위로 종결하고 실종자 정보를 경찰 시스템에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종 수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사이 장 씨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던 주변 CCTV 영상 상당수도 보존기간이 지나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장 씨는 실종 104일 만인 지난 24일 제주시 한림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처리 과정이 알려진 뒤 경찰의 초동 대응과 실종자 관리 체계를 둘러싼 비판이 이어졌다.

경찰 이미지 개선 작업해온 이제석

과거 이제석 대표가 제작한 경찰 관련 공익광고. 경찰차와 경찰관 등을 활용한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경찰의 역할과 이미지를 표현했다. / 이제석 광고 아카이브 캡처

이 대표는 과거 경찰 홍보와 이미지 개선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2011년 경찰청 홍보자문위원으로 위촉돼 치안정책 홍보와 공익광고 제작 등에 참여했으며 딱딱하고 근엄한 경찰 이미지를 보다 친근하게 바꾸는 데 힘썼다.

경찰을 소재로 한 공익광고도 여러 차례 선보였다. 경찰서 간판을 술집 네온사인처럼 표현하고 ‘경찰서는 술집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지구대 주취 난동 문제를 풍자했으며, ‘칭찬은 경찰도 뛰게 한다’ 등 경찰의 역할과 이미지를 강조한 홍보물도 제작했다.

이후에는 경찰차와 경찰관을 활용한 대형 옥외광고와 공공디자인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경찰의 역할을 직관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들이 화제를 모으며 경찰 이미지를 보다 친근하게 전달했다.

영상 말미에서 이 대표는 과거 경찰 이미지 개선을 위해 힘써온 시간을 떠올리며 씁쓸한 마음도 드러냈다. 그는 “제 청춘을 바쳐 경찰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제 선택이 후회스럽지 않길 바라는 바”라고 말했다.

성수대교엔 ‘부러진 척추’…선관위 앞엔 ‘소중한 0표’

(위쪽)성수대교 남단 진입 램프 단차 지점에 설치된 ‘부러진 척추’ 공익광고, (아래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 내걸린 ‘민주주의 꽃은 매진입니다’ 현수막과 ‘당신의 소중한 0표’ 포스터가 보인다.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이 씨는 최근 사회적 논란이 불거진 현장을 직접 찾아 문제를 시각적으로 풍자하는 공익광고를 잇달아 선보였다.

성수대교 남단 진입 램프에서 약 9㎝의 단차가 발견됐을 당시에는 문제가 된 지점에 사람의 척추 엑스레이 이미지를 붙였다. 구조물이 어긋난 경계선을 따라 척추뼈가 끊어진 것처럼 표현해 도로 내부에 문제가 생긴 모습을 형상화했다.

당시 이 씨는 단순히 아스팔트를 덧대 높이 차를 줄이는 조치만으로는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지표투과레이더 GPR 탐사와 하부 시추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사 방식과 결과도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논란이 됐을 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풍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선관위의 대표 홍보 문구인 ‘민주주의 꽃은 선거입니다’를 ‘민주주의 꽃은 매진입니다’로 바꾼 현수막을 내걸었다.

‘당신의 소중한 1표’를 비튼 ‘당신의 소중한 0표’ 포스터도 함께 공개했다. 투표함을 향해 손을 뻗고 있지만 정작 투표용지는 없는 모습을 담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풍자했다. 당시 선관위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제지하고 현수막을 철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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