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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가장 하지 않는 나라를 꼽으라면 어디일까. 많은 이가 일본을 떠올린다. 하지만 청년이 연애에 가장 무관심한 나라는 뜻밖에도 대한민국이었다. 5개국 청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한 국제조사에서 한국 청년의 절반이 넘는 55.4%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5개국 가운데 1위다. 일본이 54.2%로 근소한 차의 2위였다. 이어 미국(35.8%), 스페인(29.2%), 중국(24.7%) 순이었다. 3위 미국부터는 한국과 20%포인트 가까이 벌어진다. 한국 여성만 떼어놓고 보면 무관심 비율은 60.8%까지 오른다. 조사 대상 5개국 남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KBS 시사기획 창 '연애 실종'이 지난 7월 방송에서 이 현상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20대 세 명 중 한 명은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나 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흔히 청년 세대의 가치관 변화로 뭉뚱그려지지만, 취재 결과 연애 실종은 소득과 지역,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가 의뢰해 한국·중국·일본·미국·스페인 청년 824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일본과 중국은 2026년 7월 데이터스프링코리아가, 한국·미국·스페인은 앞서 2024년 5월 김조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연구팀 의뢰로 퀄트릭스가 조사했다. 대상은 18세부터 39세까지 미혼자다.
연애 경험이 아예 없는 이른바 '모솔'(모태솔로) 비율은 한국 20대에서 27.5%로 나타났다. 남성은 31.9%, 여성은 24.9%다. 5개국 가운데 일본(41.7%) 다음으로 높다. 한·중·일 세 나라가 미국·스페인보다 높아 연애 무경험은 동아시아의 공통된 특징으로 읽힌다.
이런 흐름이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언더스코어 측은 "OECD 국가 전반에서 청년의 연애가 줄고 있다"면서도 "그중에서도 한국은 연애 경험이 전무한 청년이 유독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 남성은 거의 세 명 중 한 명꼴로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심'을 물으면 순위는 한국이 가장 앞선다. 연애에 무관심하다고 답한 이들 중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비율은 남성이 70.9%, 여성이 48.1%였다. 관심이 식은 자리에 경험의 공백이 겹친다. 한국의 연애율 그래프는 만 23세까지 가파르게 오르다 이후 완만해진다. 언더스코어는 이 지점을 두고 "23세까지 첫 연애를 하지 못하면 이후 새롭게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 않다"고 해석했다. 방송에 출연한 한 20대 여성은 "굳이 연애를 해야 하나 싶다"며 "좋은 추억은 친구나 가족과도 충분히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애 실종의 밑바닥에는 경제적 조건이 깔려 있었다. 연애 경험이 없는 한국 청년의 실업률은 38.5%에 달했다. 여기에는 구직 중이거나 구직을 포기한 경우가 모두 포함된다. 반면 연애 경험이 있는 청년의 실업률은 12.9%에 그쳤다. 두 집단의 격차는 25.6%포인트다. 스페인(5.6%포인트)의 다섯 배가 넘고 미국과 중국의 두 배 수준이다.
소득 구간을 나누자 골은 더 뚜렷해졌다. 소득 하위 25% 구간에서 연애 무관심 비율은 66.2%였다. 상위 25% 구간에서는 37.5%로 뚝 떨어졌다. 계층 인식도 갈렸다. "어린 시절 가족이 어느 계층에 속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연애 경험이 없는 청년의 평균 점수는 5.16점이었다. 연애 경험이 있는 청년(6.47점)보다 낮았다. 스스로 매기는 매력 점수 역시 무관심층이 성격 3.04점, 외모 2.64점, 경제력 2.43점(5점 만점)으로 관심층보다 낮았다.
소득과 연애의 상관은 한·중·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실업 여부, 계층 인식과의 연관은 한국에서 가장 컸다. 시사기획 창이 미혼남녀 4800여 명이 응답한 정부 통계를 직접 재분석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특히 미혼 남성의 연애율은 소득 하위층과 상위층 사이에서 약 두 배 차이가 났다. 카이스트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윤아씨는 "연애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개인의 커리어 성장과 경험이 우선"이라고 했다. 서울대 철학과에 다니는 박동현씨는 "취업이나 학업 같은 성취와 선택의 기로에 서면 연애는 확실히 뒤로 밀린다"고 말했다.
연애의 문턱은 지역에 따라 달랐다. 뿌리에는 무너진 성비가 있다. 출생 성비가 크게 기울었던 1988년부터 2002년 사이 남성은 여성보다 56만 명 많이 태어났다. 이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다. 방송에 따르면 2026년 6월 기준 경남 고성군의 20대 여성 100명당 남성은 147명에 이른다. 일자리와 교육, 지역의 가부장적 문화가 겹치며 청년 여성은 도시로 빠져나갔다. 남은 성비 불균형은 더 심해졌다.
경남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용접공 현우씨의 친구 다섯 명 가운데 결혼한 사람은 둘뿐이다. 그 둘은 모두 공무원이다. 현우씨 친구들은 "지역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이 많지 않다"며 "이미 자리를 잡은 여성은 불확실한 비정규직 남성을 결혼 상대로 잘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좁은 지역 사회의 소문도 만남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 한 기혼 여성은 "조심스럽게 만났는데도 어디서 손을 잡고 지나갔다는 소문이 금세 돌더라"고 했다.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청년도 적지 않다. 한 전문가는 "일자리가 없어 캥거루족이 되는데, 지방은 버티기는 쉬워도 위로 올라가기는 어려운 토양"이라고 짚었다. 자녀의 연애를 채근하는 부모도 있다. 현우씨의 어머니는 "돈도 안 쓰는데 어떻게 사람이 붙느냐"며 노력을 주문했다. 마흔을 앞둔 자녀를 둔 다른 부모는 "벌써 놓쳤다고 하기엔 아직 너무 젊지 않으냐"고 되뇌었다.
지방자치단체는 해마다 예산을 들여 단체 미팅을 연다. 창원의 한 행사에는 미혼남녀 26명이 모였다. 교사와 교직원이 일곱 명,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 열 명으로 안정적인 직업군에 쏠렸다. 지원자 성비는 약 3대 1로 남성이 많았다. 주최 측은 "청년층 성비 불균형 탓에 여성 지원자를 모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네 커플이 맺어졌다. 직업, 성별, 연령대의 미스매치는 늘 숙제로 남는다.
연애의 자격을 따지는 시선은 갈수록 노골적이다. 얼굴과 전신 사진을 내고 SNS 검증까지 거쳐야 입장할 수 있는 '외모 승인제' 파티가 대표적이다. 한 참가자는 "일단 외모가 돼야 성격을 본다"며 "외모가 한 70%는 차지한다. 서류 합격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직업은 따지지 않는다지만 정보가 공개되자 남녀 모두 고소득 전문직과 안정된 화이트칼라가 상당수였다. 업체 측은 "외모 검증 시스템을 만들었더니 어느 정도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고 전했다.
데이팅앱은 조건을 숫자로 옮겼다. 여성은 사진 심사로 가입이 갈린다. 남성은 소득과 자산, 거주지 주소, 학벌을 검증받는다. 고소득·전문직·명문대·강남 거주 같은 배지를 붙여야 한다. 가입 통과율은 30% 정도다. 용접공이자 작가인 현우씨도 한 앱에 가입을 시도했다. 소득과 자산, 학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이내 '탈락' 통보를 받았다. 그는 "앱에서까지 사람을 이렇게 가른다는 걸 확인하니 힘이 빠진다"고 했다.
가치관의 벽도 높아졌다. 한 20대 여성은 "돈보다 정치적 이념이나 결혼·임신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면 못 만날 것 같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은 "갈등을 부를 만한 주제는 연애할 때 아예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는 "여성의 삶은 다양한 역할로 존중받게 바뀐 반면, 남성상은 여전히 취직과 연애, 결혼이라는 한 갈래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비교의 심리도 작동한다. 한 여성은 "위에 연애를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나 혼자 누군가를 위해 포기하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유나씨는 "혼자 있을 때보다 같이 있을 때 더 얻는 행복이 있어야 그 수고를 감수하고 만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주말 재즈 클럽을 찾은 이들은 "옆의 커플이 보기 좋아도 굳이 부럽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취업 걱정이 남 일 같아 보이는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모솔과 장기 솔로를 합치면 주변의 30% 안팎"이라고 입을 모았다. 좋은 학교를 다녀도 취업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쏟아지는 환경은 연애를 더 뒤로 밀어낸다.
아동·청소년기부터 경쟁에 시달려 온 청년들은 취업과 자기계발, 경제적 안정에 매달리기에도 하루가 벅차다고 말한다. 한 서울대생은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생각하지만, 그게 꼭 지금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방송은 "이 외로운 청년들을 우리가 과연 비난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남기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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